[편지] 대한산악연맹 이인정 회장님께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의 그릇된 행동을 질타하는 댓글들이 아시아엔 이상현 기자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잇따라 게시되고 있다.

이인정 회장님께

안녕하세요. 아시아엔(The AsiaN)?이상현 기자입니다.

먼저 사과의 말씀부터 드립니다. 처음 동료기자가 회장님 관련 기사를 썼을 때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다스리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회장님께 무례한 표현으로 댓글을 달았습니다.

평소 네팔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 친구들을 자주 만나면서 한국인들이 다른 아시아 국가의 국민들을 대하는 태도가 아주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서구 선진국 사람들에게는 지나치게 저자세이면서,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 사람들에게는 무례하고 심지어 몰인격적인 태도를 자주 보이는 게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많습니다.

시토울라씨는 두어 번 면식이 있지만, 아는 사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제가 몇 번 이메일을 보냈지만 그는 답장하지 않았으니까요. 그가 회장님으로부터 “이 새끼”라는 폭언을 듣고 손으로 뒤통수를 맞았다는 기사를 읽고도 그 상황이 심각한 폭력상황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직책과 회장님의 직책입니다. 그는 주한네팔인협회 회장입니다. 회장님은 산악등반과 관련해 국제사회에서 교섭력을 갖는 명실상부한 한국의 산악인 체육단체 ‘대한산악연맹’의 회장이시고요.

가상으로 역할을 바꿔보죠. 회장님께서 네팔에 살면서 ‘주네팔한국인협회’ 회장을 맡고 계신데, 네팔산악연맹 회장이라는 자가 “야 이 새끼야 일을 뭐 이따위로 해”라는 말과 함께 뒤통수를 때렸다면 어떨까요? 그것도 한국인들이 여럿 지켜보는 가운데 말입니다. 두 분이 ‘10년 지기’ 사이고, 가족처럼 허물없이 지내왔다는 이유로 ‘껄껄껄’ 웃고 넘어 갔을까요? 현장에 있던 네팔 기자가 네팔산악연맹 회장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면 또 어떨까요?

아무리 상상의 나래를 펼쳐도 이런 광경은 현실화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다른 사람도 당하기 싫을 것입니다. 같은 나라, 다른 나라 문제도 아닙니다.

분명히 시토울라씨는 회장님을 화나게 했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니 잘 이해합니다. 하지만 사적인 관계가 공식적인 자리에서까지 표출돼선 곤란한 것입니다.

제가 회장님께 사과부터 드린 것은 저 역시 회장님과 똑같은 실수를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모욕적인 언사로, 그것도 공개적으로 회장님을 비난하는 것은 저의 분명한 잘못이니까요. 저와 몇몇 다른 사람들이 회장님께 어떤 비난을 했는지 기사 말미에 달린 댓글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회장님께 적잖은 상처를 드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래서 회장님께서 시토울라씨에게 사과를 하시는 즉시 이 삭막하기 그지없는 댓글들을 삭제하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함께 삭제에 동의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날 회장님께서 여러 사람 앞에서 손찌검과 함께 나무란 사람은 회장님의 조카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지인이 아닙니다. 그는 한국에 와 있는 네팔사람들의 대표입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 중에는 치욕감으로 입술을 깨문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진정어린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한국사회와 한국인들은 장차 국제사회에서 손가락질 받거나 심지어 큰 비극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지난 2007년 4월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를 난사해 수십명의 미국인들을 죽인 조승희가 한국에서도 이미 자라나고 있지 않다고 누가 얘기할 수 있습니까?

최근 제가 만난 동남아 출신의 한 여대생은 “한국 생활 3년이 다 돼 가는데 한국인 친구가 없다. 가장 친한 친구는 고사하고 흔한 의미의 친구(한국인)조차 없다. 오로지 외국인 친구들 뿐이다. 똑같은 시기에 함께 동아시아로 건너와 일본으로 유학 간 친구는 요즘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일본인이라고 했다. 좋아 보이더라. 내 잘못인가?”라고 되물었습니다. 한때 자신의 나라를 식민통치했던 나라의 또래집단과 별다른 편견 없이 지내지만, 동병상련의 식민지 처지를 겪었던 한국의 또래집단에서는 동남아 학생들이 천시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회장님이 시토울라와 갖는 관계가 이런 얘기와 무관하리라 믿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장님은 아주 어렵지 않게 사과를 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회장님은 다소 특별한 집단성을 갖는 사람들의 대표자를 집단 구성원들이 보는 앞에서 모욕을 준 것입니다. 그것을 사과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그냥 속으로 삭이면서 마음속에 묻어 두고 넘어가지 않도록 해 주시라는 말입니다. 단체장이 다른 단체장을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거나 해당 단체 사람들이 모욕감을 느끼게 해놓고 사과를 하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겠지요?

부디 주한네팔인협회 소속 네팔인들이 모욕감이나 불쾌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려 노력하지 마십시오. 일이 점점 더 커질 뿐입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이미 일이 커졌다는 소식(시토울라씨가 대한산악연맹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이 조작됐다는)을 듣습니다.

더 늦기 전에 툭툭 털고 가면 될 일을 괜한 아집으로 눈덩이처럼 키우고 계신 게 아닌가요??지극히 순수한 친분관계로 격의 없이 취한 행동이라면 당연히 그 해결책도 지극히 상식적이고 거리낌 없이 찾으실 수 있다고 봅니다.

그 동남아 여대생에게 용기를 주려고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한국인들 좀 재수 없지요? 거들먹거리지요? 일본보다 성형수술 많이 하면서 유별나게 이쁜 척 하고. 지구촌 상위기업이 된 ‘삼성’을 욕하면서도 외국인을 만나면 자신이 지구촌 최고기업, 한류스타가 된 듯 오만하게 행동합니다. 사실 외국과 외국인들을 잘 몰라서 두려움 때문에 나타나는 ‘공격성’일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지구촌 역사를 거슬러 볼 때 한국이 이럴 수 있는 기간이 얼마나 될까요? 곧 스스로 깨닫고 자중할 것입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저마다 흥망성쇠가 있고, 영욕의 시대,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우는 시대가 있게 마련입니다. 자신이 잘 나갈 때 주변사람들과 웃음을 나누고 겸손한 사람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진정한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월감은 똑같은 크기의 열등감이 있을 때 생겨납니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회장님을 뵙지 못한 제가 회장님께 무슨 개인적 원망이 있겠습니까. 하룻밤 자고 나니 저의 용렬한 행동에 후회가 되고 회장님께서 곧바로 받아들여 주시지 않더라도 진심 어린 사과를 드려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이렇게 두서없이 편지를 띄웁니다. 진정성을 담은 저의 사과를 받아 주십시오.

저의 진심과 무관하게, 회장님께서는 아마도 한동안 기사와 댓글로 인한 모욕감과 분노를 쉽게 가라앉히기 어려우실 것입니다. 한편으로 회장님 때문에 마음 한구석에 모욕감과 분노를 쌓아두고 있을 사람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 역시 한동안 그럴 것입니다.

저나 회장님이나, 그들이나 똑같이 그런 앙금을 가급적 빨리 풀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선일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공감하신다면, 부덕하고 경박한 저의 사과도 흔쾌히 받아주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2개의 태풍이 다 물러가면 가을 햇살을 보게 되겠군요. 가을 햇살처럼 해맑은 웃음을 기다립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누군가를 미워하고 욕을 하는 일은 정말 괴롭고 힘든 일입니다.

늘 사랑과 행복이 넘치시길 기원합니다. 건강하세요.

2012년 8월30일

아시아엔 이상현 기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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