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라와 전순옥의 닮은 행복, 격한 자유

아시아엔은?11월11일 창간 3돌을 맞아 독자들께서 보내주신 성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시아엔은 창간 1년만에 네이버와 검색제휴를 맺었습니다. 하지만 제휴 이전 기사는 검색되지 않고 있어, 그 이전에 발행된 아시아엔 콘텐츠 가운데 일부를 다시 내기로 했습니다.?독자 여러분께 좋은 정보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편집자>?

한국의 국회의원 전순옥은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1번으로 19대 국회에 입성한 여성 정치인이다. 정치 얘기가 지겨운 사람이 얼핏 보기에도 엄청난 중량감의 자리다.

‘일’이 열어주는 자유, ‘일’로 영글어지는 행복?

전순옥 의원이 11일 만난 사람은 2012년 만해(실천)대상 수상자로 이날 귀국한 캄보디아의 평화운동가 아키라(Aki Ra)였다. 아키라는 캄보디아의 24개 주(州) 중에서 10개 주에 묻힌 5만 개의 지뢰(Landmines)를 찾아 제거하는데 앞장서온 사람. 미국 방송사 CNN은 그를 ‘2010 올해의 영웅’으로 선정했다.

아시아기자협회(AJA)와?아시아엔(The AsiaN)?홍보대사로 임명된?아키라(왼쪽)가 아시아엔 이상기 대표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민경찬 기자>

아시아의 중량감 있는 두 명의 명사를 한 자리에서 만나는 행운이 마침 11일 저녁에 주어졌다. 아시아기자협회(AJA)가 산악인 엄홍길 대장과 올림픽 축구대표 감독 홍명보, 시린에바디(이란 인권운동가, 노벨평화상 수상자) 등에 이어 아키라를 홍보대사로 영입하기로?했고, 그걸 공고화 하려는 11일 만찬자리에 전순옥 의원을 초대해 대담 형식의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작전은 적중했다. 두 VIP는 기자가 설정해 놓은 프레임에 처음엔 어리둥절해 했다. ‘자유’와 ‘평화’, 그리고 ‘행복’이라는 프레임이었기 때문이다.

전순옥의 자유

전순옥 의원

전순옥 의원은 ‘자유’ 얘기를 유독 많이 한다. ‘노동’이라는 한국사회의 엄숙한 거대서사의 의제에 갇혀 살아왔던 그녀가 ‘자유’를 주창한다고? 맞다. 분명 그랬다. 기자는 납득이 간다. 그녀의 가족들이 어디 보통 사람들인가. 한국의 노동운동, 나아가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송두리째 진보시킨 분들이다. 가족의 명예는 항상 그 명예에 수반된 고통과 함께 상속되는 법이다.

오빠가 자신의 몸에 시너를 붓고 그예 라이터 불을 댕긴 사건이 16살짜리 중학생에게 어떤 트라우마로 남아 있겠는가. 그녀가 짊어진 ‘역사적 소명의식’은 마냥 숭고하거나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그리고 즐거이 떠안고 살아갈 수 있으리만치 녹록한 게 아니었다.

그런 그녀에게 ‘자유’는 단어가 주는 그 어감만으로도 황홀한 개념이었으리라.

기자의 추측이 맞는지 전순옥 의원에게 물었다. 전의원은 “자유를 많이 추구했고, 강조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존엄성을 갖고 태어났는데, 사회적 제도적으로 제약을 받게 되면서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는 것”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자유론’에 그치나 싶더니, 기자가 의도했던 얘기가 나왔다.

“‘전순옥이 너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그런 류의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저는 과감하게 제 길을 갔습니다. 전순옥으로 살았던 거죠. 저 자신을 사랑했으니까요.”

빙고! 전의원은 ‘노동’이라는 추상적 거대담론을 내려놓고 ‘일’이라는 구체적 작은 서사에 착목한 것이다. 하고 싶어서 즐겁게 하는 일이 시장 수요와 만나 부가가치를 낳고, 더불어 일 한 사람들과 그 부가가치를 나눠 가짐으로써 내일 또 일할 수 있는 힘도 비축하고 일하고 싶은 의욕도 충전하는 상태. 이런 상태를 ‘노동해방’이라고 부른다면 아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아키라의 자유

아키라가 입고 있는 흰색 면티에는 CNN HEROES, 즉 CNN이 선정한 '올해의 영웅'이라는 문구가 새겨 있다.

전체 인구 1430만 명(2011년 기준)인 캄보디아에서 인구 290명 중 1명이 다리가 없거나 불구인 장애인들이다. 지뢰 때문이다.

다섯 살 때 부모님을 여읜 소년 아키라는?크메르 루즈군에 의해 강제로 마을을 떠났고 들판에서 노동을 했다. 얼마 뒤 캄보디아를 침공한 베트남 괴뢰국 캄푸치아 인민공화국에 소년병으로 강제 징집돼 여러 군데에 지뢰를 매설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지뢰전문가가 됐다.

1989년 페레스트로이카의 영향으로 베트남이 물러났지만 예정했듯 캄보디아 내 3대 저항 세력간 다툼으로 캄보디아는 내전에 휩싸인다. 1991년 모든 전쟁이 끝났지만 캄보디아는 개인이든 공동체든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지뢰가 무서워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길은 절대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아주 확실히 검증된 길도 큰 비가 오고 난 뒤에는 또 얘기가 달라진다. 인류가 겪고 있는 이동성(mobility)의 제약 중에서도 가장 고약하고 잔인한 것이다.

20년 전에 이미 끝난 전쟁이 주는 후유증은 150년을 간다고 한다. 그 시간이 지나면 캄보디아 국민들이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까. 아키라와 같은 지뢰 전문가들이 수 천명이 더 있어야 가능한 게 아닐까.

아키라의 평생 동료로, 연중 11개월을 캄보디아에서 지내며 그의 지뢰제거작업과 지뢰박물관 후원, 교육사업에 매진하고 있는 미국인 평화운동가 윌리엄 모스(William W.Morse)는 자신과 아키라가 하는 일이 ‘자유에 대한 억압’을 대물림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한다.

둘은 어느 날 지뢰밭이 에두른 한 학교 학부모들로부터 지뢰제거 요청을 받지만, 미화 3500달러가 없어 눈물을 머금고 거절하기로 했다. 서로 거절의사를 말하라고 미루는 사이에 100여 명의 학생들이 둘을 둘러쌌고, 똘망똘망한 200여개의 눈망울이 가하는 무언의 압력 때문에 결국 거절을 못했다는 일화다.

아키라는 이밖에 전기와 물, 화장실이 없는 등 인간 기본권을 누릴 수 없는 참혹한 ‘자유의 사각지대’와 농사를 돕거나 관광객들에게 구걸 또는 기념품을 파는 아이들, 심지어 어린 나이에 성매매로 내몰린 아이들의 ‘몰자유’를 말했다. 지뢰 하나를 제거할 때마다 ‘자유’가 한 웅큼씩 자란다는 말로 풀이됐다.

전순옥 의원과 아키라가 같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키라의 손에는 아시아기자협회와 아시아엔 홍보대사 명함이 들려 있다. <사진=민경찬 기자>

평화

평화 얘기는 비즈니스 비슷한 사업얘기로 점철됐다. 기자가 “전의원께서 의류디자인과 패션산업 전문가이시므로, 다리가 절단된 혹은 불구인 캄보디아 지뢰 피해 장애인들을 위한 옷을 디자인해서 제공하는 것은 어떨까요?”라고 묻자 전순옥 의원이 반색을 하면서 얘기가 길어졌다.

전의원은 과거 실제로 신체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옷을 개발하고 디자인해 제공한 사례가 있고, 더 큰 계획도 있었지만 재정 문제로 유보된 프로젝트도 있다고 말했다. 팔다리가 없는 사람들이 입고 벗기 편한 옷, 목발이나 휠체어를 타고도 더 맵시 있게, 가급적 멋있게 보이는 옷을 만드는 일을 실제로 추진했고 성과도 있었다는 전의원의 말에 행사장이 일순간 술렁였다.

전의원은 캄보디아에 기업을 앞세운 의류산업 진출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신 기술교육을 통해 스스로 선진화된 한국의 의류산업 기술이 뿌리를 내리고, 이를 통해 캄보디아 국민들의 삶의 질과 연관산업도 발전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아울러 우크라이나 등지에 섬유와 의류 관련 기술교육 사례를 말해주면서 캄보디아와도 기술교육을 당장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 청계천변 ‘평화’시장에는 전 의원 오빠의 이름을 딴 ‘전태일 거리’가 있다. 아키라는 자신의 ‘일’과 ‘평화’의 관계를 말했다. 과거 전쟁과 내전 당시 소년병들끼리 적대시했던 사람들이 종전 뒤 이제는 국경에 구애 없이 사이좋게 지낸다고 한다. 지뢰를 제거하는 일도 함께 협력한다고 한다. 자신의 ‘일’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그에게 ‘평화’는 얼마나 소중한가.

전순옥 의원(왼쪽)과 아키라가 대담을 하고 있다. 아시아엔 인턴 임현정 양(오른쪽)이 통역을 맡았다.

행복

“일터, 그러니까 지뢰밭으로 집을 나섭니다. 밥과 물이 든 도시락과 낮잠 잘 때 필요한 해먹, 작업용 장비를 둘러메고 숲길을 걸어갑니다. 새 소리, 바람소리, 싱그러운 공기가 얼굴을 감싸죠. 일을 끝내고 돌아와 아이들과 함께 장난감을 갖고 놉니다. 이런 게 나의 행복입니다.”

아키라가 이 얘기를 하는 동안 아주 잠깐 눈을 지그시 감고 웃음 가득한 얼굴 표정을 지어보인 직후 그를 지켜보던 사람 대부분도 그를 따라 아주 잠깐씩 눈을 지그시 감았다. 출퇴근, 퇴근 후 자녀들과의 소꿉놀이 정도의 광경을 그런 표정으로 묘사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창신동에 돌아왔을 때 유학가기 전 함께 일했던 바로 그 아주머니들이 그대로 거기서 하루 13~14시간 일하고 있더라고요. 너무 마음이 편했어요. 자기 기술을 갖고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갖는 것. 박사가 봉제공장으로 되돌아간 것은 희생도 좋은 일도 아니었죠. 그게 행복하니까 그런 거죠.”

전순옥 의원 역시 행복한 표정으로 자신의 ‘행복론’을 얘기했다. 아키라와 전 의원의 행복론에서 겹치는 키워드가 또렷했다.

‘일’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건 할 줄 아는 ‘일’이건, 그걸 하면서 뭔가 좀 더 자아를 살찌우고 주변 사람들과 그 결실을 나누는 쏠쏠한 재미, 그게 ‘행복’이라는 데 중지를 모은 셈이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일터에서 ‘행복’하게 할 수만 있다면 ‘일중독’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불현듯 두 사람이 부러워졌다. 위대하고 존경받아서가 아니다. 기자보다 더 ‘행복’해 보여서다.

아키라(앞줄 오른쪽)와 전순옥 의원(앞줄 왼쪽)의 대담 자리에는 아시아엔 직원과 인턴들을 비롯해 아시아엔과 아자 멤버로 활동하는 내외국인들도 참석했다. 장소를 제공한 '청미래' 뷔페 민형기 대표는 가운데 하늘색 옷을 입고 같이 기념촬영에 응했다. 빨간색 옷은 이상기 회장. 왼쪽부터 프라카스(네팔 유학생), 김남주 기자, 정현 경영팀장, 뒷줄에 얼굴은 안보이지만 임옥희님과 이시형 인턴(목동고 2년)이 있다. 계속해서 이선주 한국봉제아카데미 대표, 임현정 인턴, 노음 속비차이(캄보디아 유학생), 대담을 진행한 이상현 기자가 있다. 앞줄 가운데 미국인은 빌모스로 아키라와 함께 지뢰제거작업을 하고 있다. 뒷줄 가운데부터 정성원 인턴, 김수찬 간사, 박소혜 편집장, 삭다봉(라오스 교환학생), 위라원(앞줄, 캄보디아 유학생), 알파고 시나씨 지한통신사 한국특파원(터키), 여홍일 기자, 김미래 인턴(서울대 2년)이 함께 했다. <사진=민경찬 기자>

2 comments

  1. 아키라와 전순옥 의원님을 처음 만난 그날은 제게도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부족해서 기사에 담지 못한 마음이 많습니다. 캄보디아든, 한국이든 그날 나눴던 의미있는 얘기들이 삭을 틔우길 소망합니다. 이 기사 이후로도 저는 캄보디아에 여러 일로 다녀왔습니다. 몇몇 개발원조형 비즈니스를 위해 현지 대사님을 포함해 프놈펜의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봉제공장 노동자 사망 사건 등을 자세히 봤고요. 언제든 다시 뵙길 소망합니다

  2. 캄보디아의평화주의자 아카리씨를 만났던것은 행운이었다 아주인상적인 청년의용기와 헌신은 많은사람의 생명을 구하옇다 이상기회장님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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