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찬 연재소설] 살아가는 방법-32회


일주일 후 정례적인 간부 회의가 소집되고 기준이 기업 연수단 유치에 관한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자 곧이어 강 전무의 반응이 이어졌다.
“한 마디로 기업 연수, 세미나 유치로 이른바 복합기능을 지닌 리조트를 지향한다는 말인데, 이거 장기적으로 봤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 같나?”
그는 기준이 발표하는 동안 줄곧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기준은 최대한 차분한 자세를 유지하려 애를 쓰며 대답했다.
“단체 유치로 인해 객실 수율이 낮아지는 것은 피할 수 없겠지만 비수기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됩니다. 아시다시피 라오스의 비수기는 일반적으로 국내 여행업계의 성수기와 시기가 겹칩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앞으로 비수기 대책에 있어 효과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그걸 묻는 게 아닐세. 빈번한 단체 행사의 유치는 우리 리조트의 전체적인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는 얘기지. 자네는 경험이 없어서 실감하지 못할 테지만 단체객들은 일반 이용객에 비해 두세 배의 관리가 뒤따라야 하네. 쉽게 말해서 시설 파손 가능성이 크다는 걸세. 뿐만 아니라 단체 행사의 특성상 일반 이용객들에게 불편을 초래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부대시설 이용률은 현저하게 떨어지지.”
대꾸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었지만 기준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사실 그는 강 전무가 그렇게까지 반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오픈 이후 저조한 객실 판매율로 인해 의기소침해 하던 그를 생각한다면 의외의 반응이었다. 한편으로는 리조트에 대한 강 전무의 구상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곳을 라스베이거스 호텔처럼 만들겠다는 말처럼 그는 현재의 리조트를 고품격 휴양 공간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기준이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 강 전무의 발언이 계속 이어졌다. 그는 경쟁사인 무사오 리조트의 사례까지 들어가며 고급화 전략의 성공 가능성을 역설했고,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섣부른 단체 유치보다는 안팎으로 서비스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강 전무의 발언이 중단되었다. 자료를 보며 내내 침묵을 지키고 있던 총지배인이 손을 들어 강 전무를 막은 것이다.
“봉사활동 프로그램에 기업 연수라……, 전에 자네가 진행하던 프로젝트와 유사하군. 서번트투어를 다시 하자는 이야기인가?”
“물론 서번트투어를 그대로 다시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 정신은 살리되 지금 여기 리조트의 상황에 맞게 완전히 새롭게 응용하는 것입니다. 본사 마케팅 부서와 여행 기획팀,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여행 컨설턴트 회사와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진다면 성사될 가능성이 꽤 높다고 판단됩니다.” 기준이 입안에서 맴돌던 말을 토해내듯이 대답했다.
“일단 검토해볼 가치는 있는 것 같은데요?” 총지배인이 회의실 안의 참석자들을 죽 둘러보더니 강 전무를 향해 동의를 구했다.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토 자체를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고, 다만 장단기적인 전략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죠.” 강 전무가 헛기침을 하며 의견을 말했다. 틈을 두지 않고 기준이 다시 설명을 덧붙였다.
“네, 시도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업계의 사례를 보면 호텔이나 리조트의 경우 국빈을 맞이하거나 심포지엄과 같은 큰 행사를 통해서 직원 교육의 효과가 극대화되곤 했습니다. 직원 교육, 리조트 홍보, 사회 공헌, 비수기 전략 등 여러 측면의 성과를 예상해 볼 때 보다 적극적으로 기회를 창출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총지배인의 표정은 그다지 부정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말을 아끼는 듯 주저하고 있었다. 강 전무를 비롯한 여러 참석자들이 자연스레 총 지배인의 다음 행동에 주목했다.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자료를 살피던 총지배인이 불쑥 물었다.
“링크빌리지? 여긴 어떤 마을인가? 왜 이 마을이 봉사 활동의 대상 지역이 돼야 하지? 우리 리조트와는 거리도 상당히 떨어져 있는 곳인데?”
“우리 리조트가 발전하려면 우선 왕위앙이란 지역적 고립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러자면 루앙프라방과 왕위앙 사이의 공간적 거리감을 좁혀야 한다고 말씀드렸지요. 관광 자원으로서 라오스 지역의 최대 문제는 조각난 관광지라는 점입니다.”
“모두들 잘 알고 있는 걸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고, 간략히 좀 말해보세요.” 강 전무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듯 기준을 다그쳤다.
“따로 따로 떨어진 조각들을 제대로 연결시킨다면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질 겁니다. 링크빌리지라는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마을은 왕위왕과 루앙프라방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는데요, 그러한 지역적 특징은 우리 리조트와 루앙프라방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링크빌리지는 우리 리조트가 고립에서 연결로 전환되는 포스트가 될 것입니다. 첨부된 도면 자료를 다시 한 번 봐주십시오.”
“고립을 벗어나는 지역적 포스트라….” 도면 자료에 머리를 파묻고 살펴보던 몇 사람이 중얼거렸고, 또 다른 몇몇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관심을 보였다.
“마을 주민은 어떤 사람들이지요?”
총지배인이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기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대부분 이주민들입니다. 새로이 정착한 마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더 활기치고 의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주민이요? 어느 지역에서 어디로 이주했다는 것이죠? 왜 이주한 것이죠?”
기준의 설명에 관심을 보이던 몇몇 간부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 여기 살던 주민들이 현재는 그곳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한 순간 총지배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회의실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자네 그런 것까지 조사하고 있었나?”
강 전무가 침묵을 깼다.
“일부러 조사를 한 것은 아닙니다. 안젤라 선생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링크빌리지……, 안젤라 선생이 일하는 곳이니까요.”
기준의 대답에 총지배인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철거민들이 모여 살고 있다면 그 마을의 주민들은 우리 리조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강 전무 옆자리에 앉은 인사관리 파트 부서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 점이 선뜻 이해가 잘 안되었는데, 그들 대부분은 이곳 리조트가 잘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살던 고향이 멋진 휴양지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마도 안젤라 선생이나 미스터 루앙이 중간에서 역할을 잘 해주고 있어서 그렇지 않은가 합니다.”
“루앙이라고? 여기 일하던 루앙말인가?” 강 전무의 목소리 톤이 올라가더니 건넌 편에 앉은 변 차장에게 물었다.
“네, 맞습니다. 리조트에서 일하던 루앙입니다.” 변 차장이 주춤하는데 기준이 먼저 쐐기를 박듯 분명하게 대답했다. 그 말에 사람들이 다시 수군거렸다.
“사실 김 차장이 말씀 드렸다시피 그 마을은 여기 살던 주민들이 옮겨간 것인데, 루앙 역시 이 지역 출신이니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은 특별히 이상하게 볼 일은 아니지요.” 잠시 후 변 차장이 기준에게 빼앗긴 대답 기회를 만회하려는 듯이 의견을 피력했다.
“그렇지 않아도 검토가 쉽지 않은 사안인데, 링크빌리지라는 생각지도 못한 변수까지 끼어드니? ……”
“달리 생각해보면, 우리 리조트와 링크빌리지가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우리 리조트의 오랜 숙제를 해결하는 셈이지요.”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너무 이상적인 생각입니다.”
“김 차장의 의욕은 이해하지만 아무래도 공연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 아닌가 우려됩니다.”
한 동안 회의실은 설왕설래로 소란해졌다.
“그 기업 연수 말이오. 그걸 앞으로도 쭉 고정적으로 유치하느냐 마느냐는 지금 결정할 사항이 아닌 것 같소.”
총지배인의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 군데로 모아졌다.
“다만 우리의 수용 능력을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인다면 어떻겠소? 다 같이 힘을 합쳐 한 번 치러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런 뒤에 내부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들을 검토해가면서 점점 성숙해지는 것 아니겠소?”
또 다시 침묵이 흘렀다. 이번에는 강 전무의 반응이 궁금해졌는지 모두들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김 차장의 제안은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특히 링크빌리지와의 연관은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강 전무의 마른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그렇지요. 강 전무님이 우려하는 바를 저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역으로 궁즉통의 기회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총지배인이 곡진하게 말을 이었다.
“김기준 차장, 단체객들을 유치할 경우 어떤 점들을 고려해야 할 지, 그리고 실무적으로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기고 그 대처방법은 어때야 하는지, 그런 점들을 중점적으로 체크하도록 하게. 아마 좋은 공부가 될 테니. 전무님, 김 차장에게 추진 팀을 구성해보도록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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