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류:시가 있는 풍경] 남녘바다 일기 – 그 바닷가

아직 겨울의 절기가 한창인 날
그 바닷가에 앉아
봄은 바다에서 태어난다는 내 오랜 미련을 놓지 못한 체
바람 속에서 봄의 냄새를 맡고자 했다
섬을 마주하고 있지만
바다에 서지 않고선 만의 안쪽을 볼 수 없는
내밀한 이 바닷가는
마치 당신의 깊은 자궁 속 같아서
어느 곳보다 봄이 먼저 찾아와
그 속에 또아리 틀고
봄 싹 움 틔워 뭍으로 나누기에 맞춤한 자리였다
그 바닷가에선 동백보다 먼저 피어난 산다화가
동백보다 더 붉게 견디다가
더 서럽게 흩어져 내렸다
물결에 출렁이는 산다화를 그리다 보면
바람 속에선 비릿하고 향긋한 냄새가 났다
시리도록 푸른 그 동지(冬至)바다에 알몸을 담가 식히던 당신의 몸 내음과 비슷했다
목이 말랐다
봄을 기다리는 일은 열병을 앓는 일일까
언덕에 서면 해돋이와 해넘이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바다에서 돋아 바다 너머로 저무는 붉은 해
당신은 치맛자락을 열어 그 붉은 해를 받았다.
그 바닷가에 봄이 오르면
언덕에서 물길까지를 온통
노랗고 하얀 수선화의 별 밭 천지로 만들었다.
가쁜 호흡으로 잠 못 이루며 바라보던 히말 설산의그 쏟아지는 별 떨기 같은
당신도 그 별 밭에서 그리 피어 있었다 내가 봄을 이리 기다리는 것은
이 언덕의 수선화인가
그 수선화 속에 피어 있던 당신인가
이 언덕에 봄이 미리 앞질러 오는 까닭은
바닷물에 담갔던 당신의 푸른 그 알몸을
해마다 이 산다화 꽃그늘 아래서 푸는 때문임을
그 겨울 바닷가에서 나는 알았다
봄이 왜 바다에서 태어나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