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사람] 1986년 서울대 일반논리학 이상철 강사의 ‘총각總角’과 ‘원만圓滿’

시간이 흐를수록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특히 요즘처럼 시국이 어수선하고 명절 등과 겹칠 때 ‘그분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실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내 인생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셈이다.

이상철 선생님, 보다 정확히 말하면 1986년 가을학기 서울대 철학과 소속으로 일반논리학 시간강사다. 졸업을 앞두고 나는 교양과목 3학점이 부족한 걸 확인하고 ‘일반논리학’을 신청했다. 1986년은 전년도 2.12총선에서의 야당돌풍으로 겉으로는 다소 ‘유화국면’에 접어든 듯했지만, 이듬해인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4.13 호선조치–>6월 항쟁 등을 앞두고 대학가는 폭풍전야와 같았다. 중간고사 거부운동도 그해 가을 벌어진 일이었다.

총각과 원만

1986년 12월 마지막 수업일, 이상철 선생님은 평소처럼 일반논리학 강의를 마친 후 칠판에 한자로 總角총각을 커다랗게 쓴 후 이번에는 역시 한자로 圓滿원만 두 단어를 썼다. 그는 당시 조선일보에 인기리에 연재되던 ‘장총각'(張總角)이란 연재소설 얘기를 잠시 하다가, 이 선생님은 뿔을 칠판에 그리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러분, 총각은 전체 총 자에 뿔 각 자, 여기도 뿔 저기도 뿔이 달려있는 겁니다. 그래서 총각은 말 그대로 이것도 들이받고, 저것도 들이받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들이받기만 하면 되겠어요? 나이 들면 원만하게 살아가게 돼요. 아니 그게 맞아요.”

잠시 뜸을 들인 그는 이렇게 이어갔다. “그런데 ‘원만’해지는 것엔 두가지가 있어요. 뿔을 그대로 간직한 채 원만해지는 것과 뿔을 모두 분질러 버리고 원만해지는 것, 그 두가지에요.” 이상철 선생님은 앞서 그려놓은 뿔에 외접원과 내접원을 그린 후 말을 이었다.

“그런데 후자로 사는 게 훨씬 쉬워요. 무얼 고민할 필요도 없이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그동안 내려온 대로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 지문은 다 닳아 없어져 있을 겁니다. 윗사람, 힘센 사람들한테 잘 보이려고 자기 생각과 주장은 다 내려놓고 사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죠.” 이미지는 뿔과 외접원, 내접원

“그런데 후자로 사는 게 훨씬 쉬워요. 무얼 고민할 필요도 없이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그동안 내려온 대로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 지문은 다 닳아 없어져 있을 겁니다. 윗사람, 힘센 사람들한테 잘 보이려고 자기 생각과 주장은 다 내려놓고 사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죠.”

그의 다음 말은 이랬다. “총각 시절의 뿔을 간직한 채 원만해지느냐, 뿔은 다 잘라내고 원만한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냐는 전적으로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말을 남긴 채 강의실을 떠났다. “여러분 재미도 없는 논리학 듣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근데, 그거 다 잊어버리더라도 지금 이 얘긴 꼭 기억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표표히 떠나는 강의실 밖으로 나가던 그 모습이 40년 다 된 지금까지 생생하다. 총각에서 원만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 나는 과연 어떻게 그 강을 제대로 건넌 걸까? 

*후기=나는 그후 이상철 선생님의 근황이 종종 궁금했다. 작년 10월 그의 철학과 후배인 방송사 간부한테서 “이상철 선배한테 기호학을 배웠는데, 그 선배의 그후 소식은 나도 듣지 못했다”는 얘기만 들었다. 어디에선가 이상철 선생님이 내 글을 읽는다면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 수업에 하신 ‘총각에서 원만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가슴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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