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중첩(superposition)…”모순은 문제이기보다 신비입니다”

출애굽기 9장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무엇이지만, 신비는 다함이 없고 무한합니다. 사람이 문제에 갇히면 자기 스스로에게도 갇히고 말지만, 신비에 둘러싸이면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자유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출 9:12)

하나님이 파라오의 마음을 조종하신 것일까요?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파라오의 마음이 완악해졌다면, 그의 악행에 대한 책임을 파라오에게 물을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 앞에서 우리의 이성이라는 나침반의 바늘은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머리에 지진이 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결정되었다면 우리의 자유와 선택은 무슨 의미를 지니며, 내가 죄를 짓는 것조차 하나님의 뜻 안에 포함된 것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내 책임이라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논리적으로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한편, 100여 년 전 과학계에서는 과학자들의 머리에 지진을 일으킨 발견이 있었습니다. 양자역학입니다. 과학자들은 빛이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고전 과학의 논리에서 입자와 파동은 공존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쉽게 말해서, 고양이는 죽었거나 살았거나 반드시 둘 중 하나의 상태만을 가질 수 있지만, 양자역학에 의하면 살아 있고 죽어 있는 상태가 동시에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야기입니다.

양자역학은 이 모순적인 상태를 ‘중첩’(superposi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모순된 두 상태가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이 아닙니다. 자연에서 관찰되는 경험적 사실입니다. 모순된 상태의 중첩을 인간이 이해하든 말든, 자연은 지금까지 그렇게 존재해 왔고 지금도 그렇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움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도 그러한 관계가 아닐까요? 모순되지만 자연스럽게 중첩(superposition)되어 있습니다. 역사란 하나님의 절대적 계획과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이 중첩되어 있는 현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파악하려는 순간, 우리에게는 하나의 확정된 상태로 관찰될 뿐입니다.

파라오의 완악함에 대해 성경은 어떤 곳에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어떤 곳에서는 파라오의 의지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두 가지 진술을 모두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순은 문제이기보다 신비입니다.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무엇이지만, 신비는 다함이 없고 무한합니다. 사람이 문제에 갇히면 자기 스스로에게도 갇히고 말지만, 신비에 둘러싸이면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자유를 경험합니다.

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