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마음 불편한 분들, 북평 오일장에 와보세요”

나는 5일마다 열리는 장날이면 장터로 간다. 북평장터는 흘러간 시대를 재현한 영화 세트장 같이 여러 시대의 건물들이 겹쳐져 있다. 일제시대 지은 것 같은 낡은 목조주택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빨갛게 녹슨 양철 지붕 아래 집을 힘겹게 떠받치고 있는 가느다란 나무 기둥은 곧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아직도 버티고 있다.
뒷골목으로 가면 시간이 정지된 듯 내가 어린 시절 살던 동네 모습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다만 다른 건 사람들의 소리가 사라지고 공허만 가득 찬 빈집들이 많다. 무너진 담 안쪽의 빈터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다.
그런 동네에서도 장날이면 사람 냄새가 물씬 피어오른다. ‘뻥’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기계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튀긴 옥수수가 강냉이가 되어 쏟아져 나오는 모습에서 어린 시절의 질감을 느낀다. 거기서 강냉이와 강정을 산다.
나는 사람이 북적이는 시골장을 어슬렁거린다. 대장간에서 만든 무쇠 농기구와 둔탁해 보이는 식칼이 길바닥에 나란히 누워있기도 하다. 커다란 차일을 친 안에 군복무늬 작업복부터 해서 여러 가지 옷들이 걸려 있다. 그걸 보니까 기억 먼 기슭에 숨어있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내가 열살 무렵 방학이면 강원도 깊은 산골에 있는 할머니의 초가집에서 묵곤 했다. 할머니는 보따리 장사였다. 보따리 안에는 서울의 평화시장에서 떼온 ‘난닝구’나 나이롱으로 만든 싸구려 옷가지들과 빨래비누 같은 생필품이 들어있었다. 할머니는 장날이면 장바닥의 한 구석에 돗자리 한 장을 깔고 거기에 파는 물건들을 놓고 손님을 기다렸다. 할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울 때면 내가 대신 물건을 팔았다. 옆에 쳐진 커다란 차일 안의 많은 옷들을 보면 부러웠다. 차일 안에서 옷을 파는 여자들이 참 예뻤다. 옷 파는 장꾼들은 트럭에 잔뜩 옷을 싣고 홍천 노천 서석 횡성의 오일장을 돌아다닌다고 했다. 나도 다음에 크면 그렇게 큰 장사꾼이 되고 싶었다. 그때 공기 중에 섞여 있던 한여름의 달짝지근한 참외 냄새와 아이스케키 냄새가 먼 추억으로 남아있다.

내가 북평장을 천천히 걷다가 땅콩을 볶아서 파는 리어커 옆을 지나갈 때였다. 그 앞에 서 있는 영감의 모습이 낯이 익었다. 지난해 실버타운에 있을 때 보았던 노인이었다. 보면 가벼운 인사 정도 하는 사이였다. 성격이 거칠다는 소문이 돌던 영감이다. 화가 나면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오고 주먹 다툼을 하려는 다혈질이라고 했다. 그에게 욕을 먹은 한 할머니가 내게 와서 하소연 한 적이 있다. 칠십 중반까지 살아오면서 그 영감에게 ‘년’이라는 욕을 처음 들었다고 했다. 남편이 따지니까 한판 붙자고 달려들더라는 것이다. 곤혹을 치른 노부부는 다른 실버타운으로 옮긴다고 내게 말했었다. 그 욕쟁이 영감이 나를 보면서 활짝 웃고 있는 것이다. 그는 뭔가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자기 보따리 속에서 플라스틱 팩에 든 딸기 한 상자를 꺼내 건네주었다. 인정이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걸 받으면 되갚을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얼른 내가 산 강정이 든 검은 비닐봉지를 그에게 주었다. 그가 ‘뭐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 보었다.
“물물교환”
내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걸 받았다. 그는 좋은 사람 같았다. 인간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웃으면서 대하면 웃음이 오고 정이 흐른다. 절대 좋은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나쁜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상대적인 게 아닐까.
나는 다시 장터의 붐비는 길을 가다가 화목난로와 고기를 굽는 쇠판이 바닥에 나란히 놓여있는 걸 발견했다. 파격적인 싼 가격이었다.
“왜 이렇게 싸요?”
내가 뒤에 서 있는 장사꾼 남자에게 물었다.
“내가 작업장에서 직접 만든 물건들인데 불량이 난 것들이에요. 쓰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을 거예요.”
나는 고기 굽는 쇠판을 샀다. 그걸 들고 걷기 시작했는데 너무 무거웠다. 그때 바로 앞에 한 영감이 낡은 자전거를 끌고 가고 있었다. 안장 뒤의 짐 받침대가 비어 있었다. 나는 한편으로 장난기가 솟았다. 내가 들고 있던 고기 굽는 쇠판을 자전거 뒤의 짐 받침대 위에 슬며시 올려 놓았다. 자전거 핸들을 잡고 앞으로 가던 영감이 느낌이 달라지자 고개를 뒤로 돌리고 받침대 위에 있는 쇠판과 그걸 잡고 있는 나를 보았다.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무거워서 못 들고 가겠어. 신세 좀 집시다.”
그 영감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조금 큰 길에 나왔을 때였다. 가는 방향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저쪽으로 가요 고마워요.”
내가 인사했다.
“아니예요 어딘지 내가 끝까지 가져다 줄게요.”
그 영감의 말이었다.
“아니에요 이만해도 정말 고마워요.”
나는 장터에서 물씬 풍기는 사람 냄새를 맡았다. 사람들이 서로 정을 나누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뉴스를 보니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가 있자 성난 지지자들이 법원을 때려 부쉈다는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법원 간판이 바닥에 떨어져 능욕을 당하고 박살 난 법원 유리창이 화면 가득 비치고 있었다. 서로 털을 곤두세우고 손톱을 내밀고 으르렁거리는 그 사람들이 북평 오일장으로 와서 호떡 하나라도 사 먹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