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 칼럼]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이문열-김화영 대화를 중심으로

자신의 서가의 책을 가리키고 있는 필자 신정일 작가. 그는 늘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를 고민한다며 “지난 몇 년 사이 국어교과서에서 외국 문인들의 작품이 빠진 것이 무척 안타깝다”고 했다. 

“좋은 책은 거침없이 읽히되 읽다가 자꾸 덮게 되는 책이다. 양서란 거울처럼 자신을 제대로 보게 하고 정신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법정스님의 말이다.

“쓰는 것은 좋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은 더욱 좋다. 지혜로운 것은 좋다. 그러나 참는 것은 더욱 좋다.”(헤르만 헤세)

읽던 책을 자꾸 덮게 만드는 것은 사유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읽던 책을 덮고 조용히 앉아 자신을 들여다보는 정신의 여백을 만드는 순간이다.

1월 18일 ‘신정일의 서가’에서 ‘독서토론’을 진행한 카네기 리더스 독서클럽 회원들

18일 아침 ‘신정일의 서가’에서 카네기 리더스 독서클럽 회원들의 ‘독서토론’이 있었다. 책을 보다가 글을 쓰다가 하루를 보낸 겨울 아침에 글(책)에 대해서 생각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지극한 문장은 다 피눈물에서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유몽영>에 나오고, 프란츠 카프카는 “도끼로 두개골을 내려치듯 작용하는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였다. 니체는 <짜라투라는 이렇게 말하였다>에서 “피로 글을 써라. 그러면 피가 영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서광>에서는 “독자적으로 생각했던 사람들, 다시 말해서 스스로가 새로운 시작이었던 사람들의 글을 읽으라”고 말한다.

그러면 이 시대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까.?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에서 소설가 이문열과의 대담에서 김화영 교수가 말했다.

“프랑스의 쇠이유출판사에서 ‘좋은 한국작가를 소개하라’고 하자 김화영 교수는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작가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답니다. 그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작가’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보통 게으른 독자가 좋아하는 작가는 안도감을 주는 작가이고 내가 아는 걸 다시 멋있게 말해주는 사람, 그런데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내가 보지 못한 것, 지식이 문제가 아니라 내게 낯선 모습을 낯설게 말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방식을 불편하게 하는 작품, 그런 걸 말해요. 나는 보통 소설이란 이런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무슨 소설이 이렇지? 하고 의심하게 하는 것, 그러면서도 감히 보잘 것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무엇, 이상한 그 무엇을 드러내는 작품, 불편하게 한다는 것은 아마 이런 것이지 싶어도 그 불편함이란 건 쉽게 안 얻어져요. 그건 정말 벼랑에 선 사람이 얻는 게 아닐까요. 사실 불편함만으로 이루어지는 소설이 어디 있습니까? 결국 중심은 불편함인데, 그 나머지는 ‘아, 내 얘기를 쓴 것 같다.’ 싶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죠. 그러다가 번뜩번뜩 내 기대를 배반하는 거죠. 중간에, 그런가 하면 내가 나를 잘 모른 채,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내 모습일 수도 있어요. 나를 보는 방법을 엉뚱하게 가르치는 기이한 시선, 나는 우리 문학이 그런 쪽에도 좀 관심을 가졌으면 해요.“

김화영 교수의 말에 이문열씨가 한 마디 보탠다.
“그 불편함을 다른 말로 바꾸면 충격이겠죠. 특히 낯선 자신을 만나는 것 같은 충격.”

김화영 교수의 말미가 좋다.
“제일 좋아하는 형용사가 좋은 소설, 어떤 사물이 여기 있다고 서술하는 그런 소설이 좋은 작품이에요. 까뮈의 <이방인>이 좋은 예죠, 시도 좀 그렇지만 그런데 게으른 독자들이 좋아하는 건 그 조미료 같은 첨가물이죠. 사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사람은 그런 거 잘 안 쓰잖아요. 먼 길을 가는 사람이 그런 장식할 틈이 어디 있어요. 우선 다리부터 튼튼히 해서 가야 하는데.”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작품도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 자꾸만 독자에게 물음표를 던진다. 자꾸만 독서의 경향이… 경제 실용서적과 베스트셀러에만 치우치고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이를테면 미사여구가 많이 들어간 소설이나 시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어렵다고 여기거나 불편한 책들은 외면당하는 것이 오늘 이 시대인 듯 싶다. 하지만 고전음악이 많이 듣는 것 외에는 왕도가 없듯 책도 역시 역사, 철학, 문학, 자연과학 등을 골고루 읽다보면 스스로에게 맞는 책이 다가오고 스스로가 걸어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내 경우에는 언젠가 읽었던 피타고라스의 말이 나를 인도해주는 하나의 등불이었다.
“인간의 삶에서나 자연에서나 먼저 온 것이 나중에 온 것보다 우월하다. 동쪽은 서쪽보다 좋으며, 시작은 끝보다 좋다. 마찬가지로 탄생은 죽음보다 좋고, 원주민은 이주민보다 좋으며, 어른은 젊은이보다 좋다. 젊은이들은 어른들을 공경해야 한다.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생명을 준 분들이다. 자제할 욕구가 가장 왕성한 젊은 시절은 성품이 단련되는 시기다. 자제는 몸과 마음에 좋은, 모든 것을 줄 것이다. 자제는 건강을 지켜주고, 최상의 성취를 가능하게 한다. 트로이전쟁에서 양편의 군사들이 그토록 많은 휘생자를 냈던 것은 한 사람(파리스)의 자제력이 결여되어서였다. 공부하라. 최상의 지적능력을 갖길 원하면서 공부하는데 시간을 내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몸은 아껴보았자 사라진다. 공부를 하여 고매한 정신을 갖게 되면 죽어도 계속된다. 모든 뛰어난 지도자들은 어려서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다. 힘과 미모, 건강과 용기는 다른 이에게 물려받을 수 없지만 공부는 물려 받을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 공부다.”

피타고라스를 보기 위해 광장에 모여든 젊은이들에게 피타고라스가 한 연설이다.

현자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에게 피타고라스는 자신은 성자나 현인이 아니고,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가 사람들에게 요구한 덕목은 온화와 겸손, 그리고 과묵한 성품이었다.
지식은 인류사회 전체에 이득을 준다. 물질적 자산은 남에게 주는 순간 줄어들지만, 무형의 지적자산은 남에게 준다고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재산과 권력은 유한하지만 지식은 무한하다. 육체는 죽지만 지식은 영원하다. 지식의 기본은 타인을 배려하는 데 있다.

쉬고 싶어도 쉬지 않고 한결같이 연애를 하듯 부지런하게 책을 읽고 산천을 유람할 수 있었던 원동력, 피타고라스의 한 마디 말이었다. 이 겨울 당신의 가슴에 비수처럼 내려 꽂힐 몇 권의 책이 다가가기를 기원한다.

 

신정일

문화사학자, '신택리지' 저자, (사)우리땅걷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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