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교도소 포교 박삼중 스님 열반 넉달…”큰빛으로 다시 오소서”

박삼중 스님이 보내주신 성천 유달영 선생의 서예 작품과 삼중 스님

“인간은 만남으로 자랍니다!”

[아시아엔=문일석 <브레이크뉴스>  발행인]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한다는 말이다. 만나면, 떠나게 돼있다는 말이다. 필자를 아껴주었던 박삼중 스님이 작년 열반에 드셨다. 경주 자비사에 주석해오던 스님이 2024년 9월 20일 세수 83세, 법랍 66세로 원적에 드셨다. 넉달이 다가온다. 

“스님, 큰빛으로 다시 오소서!”

경주 자비사측은 열반하신 삼중 스님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삼중스님은 1942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17세에 해인사에서 경산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화엄사, 용연사, 자비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스님은 사회에서 소외된 어려운 이들의 삶의 현장에 적극 동참하는 동사섭(同事攝) 수행을 평생 해오셨는데, 특히 약 6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재소자 교화 활동을 펼쳐 ‘사형수들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또한 한국인 차별에 항거하여 야쿠자를 사살하고 형무소에서 무기수로 복역하고 있던 재일동포 김희로씨 석방운동을 펼쳐 그의 석방과 귀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언제나 어려운 이들과 함께 해온 공적으로 조계종 종정 표창, 대한적십자사 박애장 금장, 대통령 표창, 국민훈장 목련장 등을 수훈했다.“

박삼중 스님(오른쪽)이 필자 회사를 방문했을 때의 모습.

필자는 젊은 시절 <주간종교>에서 대한불교 조계종의 출입기자(1979-1981년)를 했다. 이때 불교에 관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큰스님들, 김탄허-송월주-박삼중 스님 등과 ‘취재원과 기자’라는 인맥도 쌓을 수 있었다.

특히 교도소 포교에 앞장섰던 박삼중 스님과는 가까운 사이가 됐다. 삼중 스님의 교도소 포교 관련 기사를 자주 써왔다.

202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필자는 이날 큰 스님으로부터 특이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게 됐다.

성천 유달영(1911-2004) 선생은 독립운동가, 농학자, 사회운동가였다.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성천은 서예가이기도 했다. 그런데 삼중 스님으로부터 “오랜 동안 소장해오던 성천 유달영의 ‘인간은 만남으로 자란다’는 서예작품을 선물로 주겠다“는 전화 연락이 왔다.

스님은 서울 중림동, 서울 자비사에 주석하실 때 이 글씨를 사무실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글씨를 내게 주셔서 사무실에 걸어두었다. 선물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유달영 선생은 무교회주의자 김교신의 애제자였다. 이 글씨를 받던 그날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필자는 대학(강남대 신학과)에서 졸업 논문으로 ‘김교신의 무교회주의’를 썼다. 유달영은 김교신이 아꼈던 제자였다는 것 때문에 더더욱 기뻤다. 스님이 주신 기분 좋은 성탄절 선물이었다. 그 해의 산타크라스는 박삼중 스님이셨다.

삼중 스님은 “보살이란, 지옥 밑창에 있는 모든 사람을 극락으로 보낸 이후 극락에 가겠다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삼중 스님, 그는 진정코 보살이셨다.

박삼중 스님이 선물로 준 탄허 스님이 쓴 부유만덕(부자는 만가지 덕을 갖추어야 한다) 편액

한 가지 더 공개하면, 삼중 스님은 열반에 드시기 얼마 전에 김탄허 스님이 쓴 ‘부유만덕'(富有萬德, 부자는 만가지 덕을 갖추어야 한다)이라는 편액을 제자 편에 내게 보내주셨다.

”인간은 만남으로 자랍니다!”

 

편집국

The AsiaN 편집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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