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교수의 냥이 ‘단비’와 함께 한 10년

2024년 12월 23일 박유하 교수와 단비. 박 교수는 그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단비는 종양이 꽤 커서 마음이 아팠지만 아직은 건강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기대수명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보내도록 해야 할지 정해야 한다. 인간이라면 스스로 정할 수 있을 텐데 그게 아니라 더 가슴이 아프다. 그럼에도, 병과 사고는 어쩌면 비일상이 아닌 일상으로 받아들일 때 그 시간을 가장 잘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 문득 생각한다.”  그리고 22일 후인 2025년 1월 14일 단비는 하늘로 갔다. 

12살 고양이 ‘단비’, 그 가운데 10년 이상을 함께 하다 엊그제 하늘로 떠난 노묘老猫 ‘단비’를 그리워하는 글이 페이스북에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는 지난 1월 14일 단비의 죽음을 처음 알린 후 이튿날 애도에 동참해준 페친들께 감사인사를 전했습니다. <아시아엔>은 박유하 교수가 지난 2015년 이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 몇 편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박 교수는 “단비는 <제국의 위안부>로 재판을 받는 지난 10년간 가장 가까운 곁에서 함께 했다”고 전했습니다. 글의 순서와 사진 배열은 아시아엔이 정했음을 알려둡니다. <편집자>

단잠을 자는 단비. 그는 마지막 순간도 이런 모습으로 가지 않았을까? 

함께 시간을 보냈던 고양이가 떠났다는 포스팅에 마음으로 위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은 어제 상태가 안 좋다는 전화를 받았었고,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습니다. 단비는 아들이 데려와 키우다가, 유학 가면서 저에게 맡기고 간 고양이입니다. ‘개파’였던 저에게 온 첫 고양이었죠. 이후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미소짓게 해주고 부드러운 위로를 주었던 아이였습니다. “사랑해” 하면 꼭 소리 내어 답하고, 누워 있으면 가슴을 사뿐히 밟고 지나가면서 존재를 상기시키고, “자자”라고 말하면 뛰어와 머리맡에 누워 잘 준비를 하던 아이였습니다.

박유하 교수의 팔베개 베고 자는 것도 좋아하는 단비는 어느 날 제 팔을 베고 잠이 들었다. 

팔 베개를 하거나 가슴 위에 올라와 앉아 있는 걸 좋아했고, 부르면 얼굴은 이쪽을 향하지 않아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답하던 고양이였습니다. 사진 찍기 좋아하는 저의 만만한 모델이기도 해서, 시도해 본 적 없는 ‘음악 입힌 영상’을 만들어 볼 야심찬 계획까지 세웠는데, 사진을 미처 다 고르기 전에 떠나고 말았습니다.

https://www.facebook.com/share/v/1QkXvyp8hb/?mibextid=wwXIfr

제가 작년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하면서 아들에게 데려다 주었던 지라 마지막 시간을 함께 못해 더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단비는 원래 집사에게 돌아간 이후도 만족스러운 노년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은 물론 꼬마들이 매일매일 “예쁘다” “귀엽다” 해주었으니, 마지막 일년을 왁자지껄 생활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생각합니다. 일본이 마침 연휴기간이어서 아들이 내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고르기라도 한듯 떠난 건, 오래 전에 키웠던 개가 떠났을 때와 똑같아 그 마음이 손에 잡힐 듯 안쓰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의 따뜻한 마음을 과분하도록 받았으니 별나라로 잘 떠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깊은 감사드립니다. 잘 보내 줘야 하니, 저도 기운 내도록 하겠습니다.(2025.1.15)

박유하 교수의 페친이자 성우인 윤소라씨가 그린 단비

<제국의 위안부> 집필 마지막 무렵에 내게 와서 무죄 판결 때까지 10년 이상을 내 옆에 있었던, 아들과 나의 고양이. 11년을 저와 함께 한 고양이 단비가 오늘 새벽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번 더 보러 갈 생각이었는데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어 마음이 미어집니다. 착하고 다정하고, 작지만 위엄조차 느껴지는 아이였습니다. 그래선지 마지막 순간까지 아프다는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할 때도, 음악을 들을 때도, 잘 때도 제 곁에 있던 아이입니다. 명복을 빌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2025.1.14)

2022년 9월 송곳니가 부러져 넥카라를 두른 단비.

“모든 분들께 빛이 가득하기를” 하고 기도한 날, 우리 단비한테 액시던트가 있었다. 다른 일 있어 병원에 데려갔더니 그 부분은 문제 없었고 대신 송곳니 하나가 부러진 것이다. 의사 얘기로는 케이지에서 빼내다가 두꺼운 가죽 장갑을 낀 자신의 손을 물어서 그렇게 됐다는데, 솔직히 금방은 이해가 가지 않았던 사태다. 아무튼 발치를 해야 한다고 해서 어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마음을 졸였다. 발치를 위해서는 전신마취를 해야 하고 그 전에 전신마취 가능한지 여러 가지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뭔가 문제가 있으면 수술을 못 한다고 했다. 벌써 10살이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였다. 결국은 무사히 발치했지만 송곳니가 하나 없는 아이가 되었다. 인간도 이빨 한두 개쯤 없는 사람 수두룩한 상황에 “고양이 이빨 하나쯤이야” 할 분도 계시겠지만, 고양이에게 송곳니가 없다는 건 뭔가 치명적인 사태인 듯한 기분이 들어 우울하다. 링거 때문에 한쪽 발이 퉁퉁 붓고 넥카라를 한 단비는 집에 와선 내 가슴 위로 올라왔고, 내가 위로하자 꾸룩꾸룩하고 울었다. 하소연과 신음과 응석이 섞인 목소리다. 밥 먹을 때 카라가 밥그릇을 밀어내기 때문에 계속 잡아주면서 아픈 생명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던 저녁. 이제까지 한 번도 새벽배송이니 제트배송이라는 거 이용해본 적이 없는데, 불편해 보이는 넥카라에서 하루라도 빨리 해방시켜 주기 위해 내일 도착한다는 상품을 처음 주문했다. 하여 이번 추석은 아픈 아이 돌보면서 조용히 집과 연구실에 쌓아둔 책정리 하면서 보내게 될 듯하다. 모든 분들, 사고 없이 편안한 연휴 되시길 다시 빕니다.(2022.9)

2024년 1월 익숙한 사람들만 있는 공간에서 활개 편 단비.

1976년 이후 동해바다를 수없이 오갔지만, 동물과 함께 건넌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되고 느낀 것이 있다. 김포공항엔 손짐용 작은 카트가 없다. 탑승구까지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극도로 피곤한 상태였으므로 작은 고양이 무게도 들고 걷기엔 부담스러워 두리번거리고 물어본 결과 알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출국때 카트를 이용한 적은 없었던 거 같다. 하네다에서 돌아올 땐 과자 등 선물을 사기 때문에 꼭 필요로 했고 당연한 듯 거기엔 있었다. 카트가 필요할 만큼 김포공항 여객들은 선물을 안 산다는 얘기일까. 그래서 요구가 없었던 걸까. 하네다에선 비행기에서 내려서 상당히 많이 걸었지만 카트가 있어 힘들지 않았다. 입국 수속 중에 어느새 펫 이동장을 든 나를 알아봤는지 내가 서있는 라인 바로 앞쪽에서 한 여성직원이 강아지와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패널을 들고 서있었다. 그리고 다시 카트에 태워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서 검역수속을 마쳤다. 그리고 세관을 통과할 때 다시 다른 여성이 안내했다. 그런데 이 여성이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라인쪽으로 거의 뛰듯 하면서 안내해 주었다. ‘맡은 바 일을 최선을 다해 수행하는 일본’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었다. 단비는 실은 아들이 키우던 고양이다. 아들이 유학 가게 되어 맡았는데 이제 안정되어 아들이 다시 키우기로 한 것이다. 내가 긴 여행 마친 후에 어떻게 할지는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밤마다 내 머리맡에서 자곤 했던지라 서로의 부재에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이 걸릴 듯. 하여 나는 이번에 다른 곳에서 숙박하지만 낯선 곳에서 긴장할 단비를 위해 어젯밤은 아들네서 잤다. 며느리도 출근하고 아이들도 학교와 어린이집 가고 난 집에서 재택근무하는 아들과 단비와 셋이 하루종일 햇살 쪼이며 느긋하게 보냈다. 일본은 영상 8도. 1월의 도쿄는 따뜻해서 언제나 봄맞이하러 온 기분이 든다. (2024.1)

일본이 오늘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했다고 해서 한국정부가 주한 일본대사관 공사를 불러 항의한 모양이다. 그런데 시마네현에서 무슨 행사를 하는지 몰라도 도쿄에선 전혀 그런 분위기가 없다. 오히려 2월 22일은 일본에선 ‘고양이의 날’로 더 부각되고 있는 듯하다. 가보진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축제도 하고 페스티벌도 하고 사진전시회도 한다니 전국의 고양이 집사(일본에선 ‘머슴’下僕으로 표현)들에게 기쁜 날이다. 한 위성채널에서 하루종일 고양이 관련 방송을 한다 해서 봤더니 CM에까지 고양이가 나왔다. 심지어 이시바 국회의원이 방송에 나와 “정치는 고양이를 소중히 여깁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길 것, 오늘은 그것을 약속하는 날이었으면 합니다!”고 공약처럼 다짐하기까지 했다. 동물에겐 국경도, 국적도 없다. 독도의 날이니 다케시마의 날이니 만들어 싸우지 말고, 고양이의 날과 개의 날을 만들자. 그 편이 동물에게는 물론 인간에게도 이롭다.(2020.2.22)

단비, 어디를 응시하는 걸까? 

귀국 후 한달반여, 태어나 처음 경험한 ‘정静’의 시간 동안 일도 많이 했지만 운동도 열심히 했다. 그게 이 기간 동안 가장 잘한 일이다. 해뜨기를 기다려 사람 없는 남산에 갔고 심지어 돌아오는 길엔 달리기를 시도했다. 수십년만에 시도한 일이니 분명 코로나시대는 나한테도 영향을 미친 셈이다. 덕분에 이 봄의 꽃들도 빠뜨리지 않고 봤다. 아무튼 그래선지 ‘안팎 블루’의 와중에도 컨디션은 꽤 좋다. 두통과 미열을 달고 살았던 예전을 생각하면 거의 회춘 중이다. 요즘 식후 디저트로 한 페친이 재배하고 만든 곶감을 하나씩 먹는데, 그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고양이 단비가 발바닥을 다쳐서 동물병원에 여러 번 다녔던 것도 이 기간 동안 일어난 일이다. 하루 세번 아까찡키(!)를 발라주면서 그 옛날 아들 키울 때 생각이 많이 났다. 코로나 때문에 힘든 이들도 많은데, 수도승 같은 생활에 익숙해진 김에 수십 년 친했던 음주가무 생활과 절연할까도 생각 중이다. 어젯 밤엔 일본학자들과 Zoom회의. 연구회로는 두 번째 참여였는데 여러 가지가 너무 충분해서, 이참에 전 세계 ‘이동’을 획기적으로 줄이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피해를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동안 모든 것에서 너무 과하고 넘쳤다는 생각이다. 그런 돈과 에너지를 줄여 이번 코로나 사태로 확연히 드러난 약자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는 없을까. 동시에 새로운 연대로 이어지는 시스템 말이다. 과식이 몸에 안 좋은 것처럼, 수많은 ‘과다’가 세상을 나쁘게 만들고 있는 건 분명하다. 뜬금없이 90세까지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장수하고 싶어서라기보다 남은 인생에 계획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동시에 3년 혹은 3개월 살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볼까 싶다. 물론 자주 잊어버리겠지만.(20.4.26)

아마도 이런 모습에 사람들은 고양이를 이뻐하는 것 아닐까? 단비 역시 그랬다고 한다. 

“냥이처럼 살면 고민은 없다.”
일본인들은 고양이한테서도 지혜를 얻는다. 나도 단비와 재회한 기념으로 사진 대방출했다. 신뢰와 교감만큼 행복을 주는 건 없다. 사람이건 짐승이건.(2016.4)

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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