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결과에 나타난 정치지형 변화…’토끼 경쟁’의 최종 승자는?
10년 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정치 무대에 처음 등장한 이후, 공화당과 민주당은 한 가지 정치적 트렌드에 대체로 동의했다. 그것은 바로 미국 정치 지형이 재편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단, 정치지형의 변화가 어느 정당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공화당에서는 전통적 민주당을 지지해온 블루칼라, 백인 남성들 사이에서 트럼프의 인기를 주목했다. 올해 미국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은 트럼프에 대한 지지가 히스패닉과 흑인을 포함한 비백인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확대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 민주당과 일부 반(反)트럼프 성향의 공화당원들은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하던 유권자들이 트럼프에 대한 비호감으로 인해 민주당으로 지지를 전환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특히 도시 교외에 거주하는 화이트칼라와 대졸 이상 고학력 유권자들 사이에서 공화당 지지율이 하락하는 현상에 주목했다. 2024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화이트칼라 백인 여성들이 정치적으로 이슈화되고 있는 낙태권 보호를 위해 민주당을 적극 지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양당 모두 최근의 선거 결과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먼저 공화당은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흑인과 히스패닉 남성들 사이에서 득표율을 높였다는 점에 고무되었다. 반면, 민주당은 2018년과 2022년 의회 선거에서 고학력, 고소득층 유권자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교외를 포함한 경합 지역구에서 선전한 결과에 만족했다. 미국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 척 슈머 상원의원은 “우리가 블루칼라 지지자 한 명을 잃더라도, 대신 과거 공화당 지지자 두 명을 새로 얻을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2024년 미국대선의 승패는, 한국식 예시를 사용하자면, 어느 정당이 ‘집토끼'(전통 지지층) 이탈을 최소화하고, ‘산토끼'(부동층, 상대정당 지지층) 확보를 최대화하는 것이 주 관건이었다. 이 경쟁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판정승을 거두었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흑인 남성, 히스패닉 남성, 노동조합 회원, 청년층, 무슬림과 같은 기존 민주당 성향 유권자들 사이에서 득표율을 크게 높였다. 특히, 공화당 입장에서는 인구 비중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비백인 유권자들 사이에서 트럼프의 득표율이 상승한 점이 매우 고무적인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민주당 대선 후보 카말라 해리스 역시 공화당 성향의 계층에서 지지를 확대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해리스는 고학력 백인 유권자, 65세 이상 유권자, 그리고 고소득층 유권자들 사이에서 2020년 대선 때보다 트럼프와의 격차를 더 벌렸다. 그러나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 잃은 표를 만회하기에는 불충분했다. 또한, 민주당 지지층의 전반적인 투표율 감소는 해리스 캠페인에 큰 악재로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해리스는 투표를 포기하거나 트럼프를 지지한 ‘집토끼’의 이탈을 만회할 만큼 ‘산토끼’ 유권자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 결과가 공화당에게 더 유리한 정치지형의 재편성을 이루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까?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대선을 더 깊이 분석할 필요가 있다.
첫째, 트럼프의 승리를 공화당 전체의 지지율 확대로 해석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트럼프는 중서부의 ‘러스트 벨트'(미시간, 위스콘신)와 남부 및 남서부의 ‘선 벨트'(애리조나, 네바다)와 같은 경합주들에서 승리했지만, 같은 지역에서 출마한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들은 여려 명 낙선했다. 출구조사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를 지지한 일부 유권자들이 의회선거에서는 기권하거나 다른 정당 후보를 선택하는 ‘교차투표’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공화당 후보들이 트럼프 지지 성향의 유권자들을 완전히 흡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며, 트럼프의 개인적인 지지율과 공화당의 정당 지지율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트럼프가 출마하지 않는 선거에서는 그가 유입한 지지자들을 공화당이 유지하는 데 고전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 정치 참여도가 높은 사회 계층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상승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 민주당 지지 성향이 상승하고 있는 고학력, 고소득층, 화이트칼라 유권자들은 선거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적극적 투표층’으로 분류된다. 반면, 트럼프의 지지 성향이 증가한 저학력, 저소득층, 블루칼라 유권자들은 대통령 선거를 제외한 선거에서는 기권할 가능성이 높은 ‘소극적 투표층’에 속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향후 의회 및 주 단위 선거에서는 선거 구도가 민주당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 대선에서는 민주당 지지층의 투표율 부진이 패배의 요인이 되었지만, 향후 선거에서는 공화당이 보다 더 지지층 투표 독려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에게 있어서 이번 대선이 경이로운 승리임은 부정할 수 없다. 지난 두 차례의 대선과는 달리, 트럼프는 선거인단 투표와 국민투표에서 모두 승리했다. 비록 기존 공화당 성향 지지자들을 일부 잃었지만, 새로운 지지층을 확보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전화위복을 이루어냈다. 한 미국 정치 전문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트럼프는 “공화당의 기존 지지기반을 분열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기반으로 재편성했다.”
이제 트럼프와 공화당에게 직면한 정치적 과제는 재편성된 지지기반을 견고히 하고, 특히 포스트 트럼프 시대에도 지지층의 정치참여 의지를 유지하는 것이다. 반면, 패배한 민주당에게 있어, 미국 민주주의의 장점은 4년 후, 다시 ‘토끼 경쟁’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