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대구청년 김학봉⑧] 설 연휴 끝 엄동설한, 그래도 웃지요

서 있는 이가 김학봉 청년

소한(1월 6일)  대한(1월 20일) 다 지나
입춘(2월4일) 앞두고 한반도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한반도의 기후변화도 심각할 정도입니다.

대구는 화분 형태를 닮아 분지(盆地)라 불렀고
여름엔 폭염, 겨울엔 엄동으로 유명했지요.
그래서 한랭한 곳의 과일인 사과의 고장이었는데
이제는 청송 영주 등 높은 곳으로 떠나갔습니다.

나는 1953년부터 대구에서 살았습니다.
70년 세월이 되었는데요.
첫눈이 펑펑 내리면 괜히 눈을 맞으며
강아지처럼 거리를 쏘다니고
수성못 주변의 들판에서 마구 뒹굴던
그런 기억이 아련한 파노라마로 떠오릅니다.

방금 내린 눈을 먹기도 했고,
눈밭 위의 토끼 발자국을 쫓기도 했지요.
1930년대 후반의 대구는
첫눈이 더욱 빨랐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사진 속 대구 청년 김학봉은 첫눈 내리던 날,
친구와 더불어 가까운 산등성이에 올라
희희낙락 환희와 감격의 시간을 즐깁니다.
온 천지에 백설이 덮이게 되면
왠지 세상이 더욱 고즈넉해지면서
사람들의 표정도 한결 푸근해지곤 했습니다.

평소 지저분하던 것들이 모조리
흰색으로 바뀌게 되니 그런 변환효과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눈이 녹으면 다시 어둡고 우울한
식민지 현실의 민낯으로 되돌아 왔을 것입니다.

백석 시를 보면 섣달 그믐날의 눈을 함지에 떠다가
녹은 물을 유리병에 담아놓고
이듬해 여름 배앓이를 할 때 약으로 마셨답니다.
이를 ‘내빌눈'(臘月에 내리는 눈)이라 했지요.
눈밭에 엎드린 청년이나 그 뒤에 선 청년도
표정이 밝고 환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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