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대구청년 김학봉⑤] 팔공산 코스 개척해서 오르다

1937년 대구 청년의 등산 모습

옛부터 높은 산을 오르면
완등의 기쁨과 감격을 표시하지요.
어떤 이는 절규와 환호로
또 어떤 이는 눈물과 통곡으로
그간의 고통과 힘들었던 과정에 대한
사무치는 표현을 다양하게 합니다.
그것은 적어도 수천 미터의 험산일 테지요.

이 사진은 대도시 근교의 약 1000미터 정도의
그리 어렵지 않은 등산 코스일 것입니다.
하지만 1937년 무렵의 등산은 달랐겠지요.
제대로 발자국이 나 있는 길이라곤 없고
자주 만나는 바위너설, 구덩이, 낭떠러지,
길진 않지만 가파른 암벽, 미끄러운 이끼 지대,
느닷없이 나타나는 독사, 야생동물 등
이런 긴장과 집중의 시간을 거쳐서
비로소 정상에 오르는 환희를 누렸을 것입니다.
이것을 정복이라 일컫는 표현은
그리 탐탁치 않은 제국주의 발상입니다.

식민지시대 후반 대구 청년들은
이렇게 팔공산 코스를 개척해서 올랐습니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높은 바위 끝에서
등산지팡이 피켈을 들고 손을 맞잡고
아름다운 완등의 표시를 남겼습니다.
그 성취감은 대단했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자세로 그들의 삶을 살아갔겠지요.

주인공 김학봉 청년은 이후
대구의 유도계를 열어나갔다고 합니다.
사재를 기탁해서 협회를 조직하고
체육관을 짓는 등 공로가 많았다고 합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그런 교훈을 일찍부터 실천했던 독지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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