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촌철] “의뢰인들은 돈을 주면 변호사가 거짓말을 대행해 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변호사가 되어서 제일 힘든 게 거짓말과의 전쟁이었다. 법정은 죄인들과 변호사들의 거짓말 대회장이었다. 의뢰인들은 돈을 주면 변호사가 거짓말을 대행해 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현실에서 그런 경우를 많이 봤다.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입만 열면 거짓말들을 했다”. (본문 가운데) 영화 <변호인> 포스터.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산다는 게 얼마나 편한지 이제 나는 조금 알 것 같다”

변호사가 되어서 제일 힘든 게 거짓말과의 전쟁이었다. 의뢰인들은 돈을 주면 변호사가 거짓말을 대행해 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열 다섯 살무렵이었다. 아버지가 일제 탁상시계를 사다 주었다. 구석에 붙은 작은 단추를 옆으로 돌리면 ‘오르골’의 맑고 투명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친구가 방으로 놀러와 계속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신기해했다. 내 보물이 고장날까 걱정됐지만 친구에게 말하기가 어려웠다. ​

“그 소리 백 번만 들으면 그 다음부터 안 나와.”​

나의 궁색한 거짓말이었다. 그 친구는 움찔하면서 장난을 멈췄다. 친구가 나의 거짓말을 알아채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이후 어른이 되어서도 그 친구는 나를 보면 “백번만”이라고 놀렸다. 나의 거짓말의 색깔은 하양일까 노랑일까 아니면 파랑 거짓말이었을까. 거짓말에도 색깔이 있다는 걸 어떤 글에서 읽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딸이 내게 ‘호돌이 공원’이 생겼다고 우겼다. 딸아이 상상 속의 공원인 것 같았다.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엄마한테 와서 “나 반장 됐어. 선생님이 교실 청소에 필요한 비품 사가지고 오래”라고 말했다. 아내가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와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담임선생님이 아주 미안해하면서 아니래요. 반장선거에서 떨어졌대요.”​

그 거짓말은 아들의 상상이었을까? 천진한 아이들의 거짓말을 그 색깔이 노랑이라고 했다.

소년 시절 나도 거짓말쟁이였다. 가난했던 나는 상상 속에서 또 다른 나의 모습을 그리곤 했다. 학교 친구들과 말을 할 때면 초라한 현실의 내가 아니라 점차 상상 속의 나를 묘사하기 시작했다. 거짓말이 점차 부풀고 정교해졌다. 친구들에게 거짓이 발각되지 않기 위해 전체의 구성과 내가 한 부분 부분의 거짓말들을 암기했다. 거짓말을 반복하다 보니까 어느새 진짜의 나는 없어지고 거짓의 나만 남았다.

아마 고등학교 3학년 때였을 것이다. 리더십이 있고 신중한 성격의 친구가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너한테 이 말을 해야 하나 하고 정말 고민했는데 해야겠어. 네가 하는 말이 대부분 과장이고 거짓말이야. 우리가 친구가 되려면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 순간 나는 방망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부끄러움으로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러나 이미 병이 되어 버린 거짓말 같았다. 그 후에도 농도는 옅어졌지만 허풍은 계속됐다.

결혼 초 어느 날 아내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당신 말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어. 정직해줬으면 좋겠어. 그러면 뭐든지 다 용서하고 이해할게.”​

겉으로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내면의 호수에는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던져져 큰 물결이 이는 것 같았다.​

어쭙잖은 허세에서 나온 거짓말을 ‘파란 거짓말’이라고 했다. 그런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앞으로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실행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버릇이 나와버릴 때가 있었다. 그때 바로 거짓말이었다고 시정하거나 과장이라고 상대방에게 고백하고 시정했다. 드러내니까 허언병이 조금씩 고쳐지는 것 같았다.

공직에 있을 때였다. 오후 2시에 외부에서 일이 있었고 다음번 임무는 5시에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 사이 시간이 남았다. 사무실에 돌아갔다가 나와야 하는데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절대권을 가지고 있는 상관이었다. 그의 명령이 언제 떨어질까 몰라 고위직 검사들이 숨죽이고 대기할 정도의 지위에 있는 분이었다.​

“뭐하고 있나?”​

속으로 아차 했다. 일을 한 것에 대해 중간보고를 했어야 했다. 거짓말로 둘러대야 하나 하고 순간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지금 사우나에 있습니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상관의 심기를 상하게 한 게 틀림없었다. ​

“그럼 사우나 잘하고 들어오게.”​

상관의 대답이었다. 거짓말하는 병이 어느 정도 고쳐진 것 같았다.

변호사가 되어서 제일 힘든 게 거짓말과의 전쟁이었다. 법정은 죄인들과 변호사들의 거짓말 대회장이었다. 의뢰인들은 돈을 주면 변호사가 거짓말을 대행해 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현실에서 그런 경우를 많이 봤다.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입만 열면 거짓말들을 했다. ​

정치권 최악의 프레임인 거짓이 법정으로 들어와 법을 오염시키기도 했다. 거짓이 사회와 법정에 먼지를 날리고 진흙투성이가 되게 했다. 그런 거짓의 색깔은 새빨갛다고 했다.

거짓말 공해 속에서 판사들은 강물의 오염으로 등이 비틀린 물고기가 생기듯 불신병에 걸려 있는 것 같았다. 판사들은 내가 진실을 말해도 믿지 않았다.

그런 속에서 하얀 거짓말을 보기도 했었다. 독재정권 시절 한 변호사가 민주화투사를 위해 허위로 자백하고 대신 징역을 살아준 사실을 안 적이 있다. 타인을 위해 선의로 하는 그런 하얀 거짓말은 위대했다.

발가벗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살려고 애썼다. 말도 글도 위선과 거짓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거짓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진실이 어색해질 때가 있다.

한 방송에 초청받아 나갔을 때였다. 진행자가 사생활의 은밀한 부분에 대해 질문했다.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되물었다.​

“정말 진실을 듣기 원하십니까? 이 자리에서 말해도 되겠습니까?”​

진행자와 피디가 의외로 당황해하는 모습이었다.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산다는 게 얼마나 편한지 이제 나는 조금 알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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