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도 바쁜데···10년전 떠난 중국집 배달원 김우수씨는 왜?”

김우수씨 영정이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다. 뒤에 장례를 집례한 최불암 선생 모습이 보인다. <연합뉴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나눔의 실천을 ‘보시공덕(布施功德)’이라 한니다. 물론 나눔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먹고 살기에도 바쁜데 나눌 것이 있어야지” 라고 하면서···.

아름다운 나눔의 이야기는 결코 재력 있는 사람만의 몫이 아니다. 나눔이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재물이 있으면 재물로, 재물이 없으면 몸으로, 그것도 못하는 사람은 마음으로라도 남 잘 되기를 빌어 주면 그것이 바로 ‘보시공덕’이다.

사랑은 나눔의 실천이다. 내가 잘하는 것, 내가 가진 것을 나눔은 또 다른 기쁨이 배가 되어 내가 필요로 할 때, 적재적소에 큰 사랑으로 메아리친다.

여기 나눔을 실천한 사람이 있다. 10년 전, 50대 남성으로 가정이 없다. 결혼도 하지 않아 독신으로 자녀도, 부모도, 친척도 없다.

공부도 하지 못 하였다. 중국집에 취직하여 오토바이를 타고 자장면 배달하는 배달원이다. 한달에 70만원 받는 것이 전부, 겨우 한명 누우면 꽉 차는 쪽방에서 혼자 잠만 자고 있다.

김우수씨

그를 계절로 말하면 봄일까? 여름일까? 가을일까? 겨울이다! 말할 것도 없이 겨울이다. 인생의 겨울이다. 그의 이름은 ‘김우수’. 2011년 9월 23일 중국집에서 자장면 우동을 배달하던 중 승용차와 충돌하여 병원에 실려 갔다. 그리고 25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가 조문을 갔다. 당시 정계 거물들이 그의 장례에 참석하였다. 그의 죽음이 왜 온 국민의 관심을 끌었을까?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살면서도 매월 5만원~10만원을 어린이재단을 통하여 소년소녀 가장을 도왔다.

2006년부터 멈추지 않았다. 보험도 4000만원 짜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가 죽으면 그 돈을 타서 어린이를 돕도록 하였다. 어린이재단 후원회장 최불암씨가 상주 역할을 맡아 장례를 집례하였다. 그의 영정 앞에는 그에게 도움을 받은 아이들의 애도하는 편지가 쌓였다.

대통령 영부인 김윤옥 여사는 “희망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라고 항상 격려하여 주시던 아저씨를 가슴에 묻고 평생 살아가겠습니다”라고 영정 앞에서 말했다.

“기부나 봉사는 돈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잘 보살펴 드리십시다.” 이명박 대통령도 고인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인은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그것이 더욱 커지고,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진정한 나눔의 삶을 실천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어린이재단 홈페이지에는 기부가 꼬리를 이었다.

인생의 겨울에 이렇게 많은 씨를 꾸준히 뿌리고 나니 아름다운 마침이 되었다. 김우수님은 겨울에도 씨를 뿌리는 사람이었다. 토마스 풀러는 “진정한 친구를 가졌다면 당신은 가장 귀중한 것을 가진 셈이다”라고 했다.

나는 누구에게 진정한 친구로 남아있는지 생각해 본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보시공덕’을 얼마나 쌓았는지 되새긴다.

받는 것은 ‘부채’, 주는 것은 ‘기쁨’이라 한다. 이렇게 나누는 삶은 행복하고, 나눔의 실천을 뒷받침하는 사회는 건강하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사회는 기부문화와 보시공덕이 보편화 되지 못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나눔 문화를 많이 배우고, 실천하며 체득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정과 학교에서 남을 배려하고 봉사하는 문화가 몸에 배어야 사회가 한결 낙원으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아는 만큼, 깨달은 만큼’ 나눌 수 있다. 나눔의 실천은 소유가 아니라 소통이다.

부처님은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보시공덕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범상한 사람 백을 공양하는 것이 착한 사람 하나를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착한 사람 천을 공양하는 것이 다섯 가지 계행 지키는 사람 하나를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다섯 가지 계행 지키는 사람 만(萬)을 공양하는 것이 수다원 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중략) 아나함 일억만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아라한 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아라한 십억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벽지불 한 분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벽지불 백억 분을 공양하는 것이 부처님 한 분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부처님 천억 분을 공양하는 것이 생사고락의 모든 차별을 초월하여 닦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는 자성을 깨침만 같지 못하느니라.”

자성(自性)을 깨우쳐 정신, 육신, 물질로 보시공덕을 많이 쌓아야 내생에 무루(無漏)의 복덕을 얻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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