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혁명최후의 날, 리비아와 북한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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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가다피는 사망했고 리비아 혁명은 성공했다. 그리고 서구언론은 그들의 성공을 또 한번의 민주주의의 성공으로 보도했다. 문제는 이같이 낭만적인 보도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리비아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가 북한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지만 향후 북한의 모습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게 해 주는 단초가 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의 권력자들이 리비아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었는지부터 시작해 보자. 그들은 아마도 리비아 사태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화적인 핵 해결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북한에서는 서구의 농간 때문에 가다피가 몰락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2003년에 리비아의 독재자는 북한의 독재자가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일을 하나 포기했다. 서방과의 관계개선을 조건으로 핵 프로그램을 중단한 것인데 한동안 이 거래는 대단히 성공적으로 보였다. 다수의 서방 외교관들과 정치인들이 김정일은 가다피를 본받아야 한다고 열심히들 이야기했는데 볼튼 대사 같은 경우 여러 차례 기사도 쓰고 칼럼도 쓰면서 가다피를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처음 의도대로 거래가 계속 진행된 것은 아니다. 리비아 국민들이 가다피정권에 대항해서 일어났을 때(리비아 국민 전체는 아닐지라도 상당수 국민들이 대항한) ?서방국가들이 개입했는데 이들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시민군은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가다피가 시민군을 몰살하고 계속 권좌에 앉아 있었을 수도 있다. 혹은 그의 아들 중 하나에게 권력을 이양했을 수도 있다. ?나토의 공습은 리비아 내전을 빨리 끝내는데 중요한 수준을 넘어서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그 과정에서 가다피와 그 가족들은 처참하게 죽었다. 북한의 권력자들에게는 이 사실이 전혀 새로울 게 없을 것이다. 그들은 항상 서구는 물론 모든 외국인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북한이 완벽한 무기이자 주요 외교수단으로 여기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리비아에서 일어난 일은 북한의 생각을 더욱 공고히 해주었고 핵을 가지고 거래를 한다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여기까지는 북한이 얻었을 교훈이며 우리는 과연 리비아혁명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자. 외세의 개입이 리비아 사태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괴상한 행동을 일삼는 독재자에게 신물이 났던 리비아 국민들이다.

먼 미래에 북한에서도 내부 봉기가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당장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국민 전체를 감시하고 감독하는 데에 차츰 한계가 오고 있으며 바깥 세상으로부터 유입되는 정보 또한 북한정권에게 짐만 되고 있다. 만약 시민혁명이 북한에서도 일어난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모습은 결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상당히 폭력적인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큰데 중앙 정부가 무너지면서 여기저기서 세력 다툼이 일어날 것이다. 리비아 경우를 보면, 독재자는 끝까지 싸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국의 지원이 없더라도 내부의 지역적 기반을 발판 삼아 모든 지지자와 함께 최후까지 가는 것이다. 가다피는 무엇보다도 그의 고향 지지세력의 끈끈한 정에 호소했는데 북한의 경우 역시 대부분의 국민들이 정권을 증오하는 가운데서도 김정일 일가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몇몇 집단이 있기는 한 것 같다.

분단국가라는 북한의 특수한 상황은 북한정권이 무너지면 피폐한 북한이 풍족한 남한으로 흡수되는 것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큰 데 이때 가장 타격을 받는 것은 북한의 엘리트계층일 것이다. 북한 중앙당 소속 간부에서부터 일개 비밀경찰 조직원에 이르기까지 정권이 붕괴되면 모든 권력과 혜택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물론 그 동안의 악행으로 처형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시 말해서, 통일 후의 한국에서 그들의 미래란 없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그들이 대단히 폭력적으로 갈 확률이 높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의 북한 개입에 기대하는 바가 클 수도 있다.

중국은 북한정권이 무너질 경우 충분히 개입할 수 있겠다는 예측이 많다. 중국으로서는 국경지역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이유도 있겠지만 북한을 독립적으로 분리해 둠으로써 ?전략적 요충지를 보호하는 완충지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정부가 북한이 위기에 빠졌을 때 실제로 개입할지는 의문이다. 개입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작용을 수반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정부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개입해서 북한에 꼭두각시 정부를 세울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것이야말로 북한의 엘리트들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 엘리트들이 중국을 좋아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만약 그들더러 중국 괴뢰정부를 수립하는 것과 남한으로의 흡수 중 택일하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친중국 정부가 들어선다면 북한 엘리트들은 계속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통일이 된다면 김정일 일가에게 충성했던 사람들은 모두 다 처형되는 대학살이 일어나겠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북한에 위기상황이 닥친다면 상당수 엘리트들이 저항할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 옳다.

북한의 엘리트는 소수이지만 그냥 소수가 아니라 힘 있는 소수다. 전체 숫자를 100만명 이상, 최대 200만명에 이를 것이다. 이들은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훈련을 잘 받고, 무기사용법도 알고 있다. 게다가 패배란 굴욕을 넘어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정리하자면, 북한정권의 몰락은 곧 폭력으로 이어질 것이며 그 유혈의 규모는 최근 리비아 사태를 능가하고도 남을 것이다. 내가 틀렸으면 좋겠다. 그러나 북한문제가 평화적이고도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핵 관련시설과 플루토늄 비축은 북한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고 있다.

나쁜 소식뿐인데 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위기에 대비하는 비상계획을 만들고 어떻게 하면 부정적 결과를 최소화할 수 있는지 연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리비아사태와 같이 폭력적이고도 극적인 변화가 지구상의 다른 곳에서 다시 한번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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