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사도'(三思圖)···우리 인생 일깨우는 세 마리 백로

[아시아엔=심형철 <아시아엔> 편집위원, <지금은 중국을 읽을 시간> <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등 저자]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림은 종합예술이다. 그림에는 시대의 가치관과 사람들의 소망, 그리고 삶의 목적이 녹아있다.

삼사도

그래서 그림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특히 전통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고 한다.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생의 지향점을 알려주는 한 폭의 그림을 소개한다. 이 그림이 전달하는 묵직함에 삶의 무게가 조금은 버겁게 느껴지더라도 함께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앞으로 닥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삼사도’(三思圖)를 소개한다. 그림의 주인공은 세 마리 새다. 세 마리 새가 공동 주연이고, 버드나무가 조연, 엑스트라는 참새다. 주인공은 무슨 새일까? 정답부터 공개하면 백로(白鷺)다.

고려의 충신 정몽주의 어머니가 지었다는 시조,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에 등장하는 하얀 새 백로다. 시조에서의 백로는 고고함, 깨끗함, 충직함의 상징이다. 그럼 그림 속의 백로는 어떤 의미일까?

앞서 말한 대로 전통그림은 보지 않고 읽는다고 했는데, 그림을 읽는다는 것은 그림의 속뜻을 이해한다는 뜻일 터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전통그림을 읽는 방법 중 하나가 그림의 전고(典故)를 이해하는 것이다. 전고의 사전적 의미는 “전례(典例)와 고사(故事)를 아울러 이르는 말”, “따라 지켜야 할 규범의 근거가 될 만한 옛일”이다. 쉽게 풀이하면 ‘이야기나 문헌을 통해 전해오는 것 중에 모범이 될 만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전고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림 속에 우의(寓意)를 숨겨 놓기 위해 작가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더구나 한자의 발음이 우연히 일치하는 서로 다른 뜻의 한자를 교묘하게 연결시키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림 실력 못지않게 고문(古文)에 정통해야 한다.

그럼 삼사도(三思圖)의 문을 하나씩 열고 들어가 보자. 백로는 한자로 로사(鷺鷥)라고도 한다. 이때 로사의 ‘사’(鷥)는 생각할 ‘사’(思)와 발음이 같다. 물론 중국어 발음으로도 사(鷥, sī)와 사(思, sī)는 발음이 같다. 따라서 ‘백로’는 ‘생각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즉, “백로를 그리고 생각하다”로 읽는 것이다. 그런데 백로는 왜 하필 세 마리일까? 대개 그림 속의 새들은 짝을 이루는 것이 일반적인데 뭔가 이상하다. 그림 속 백로는 그냥 새가 아니다. 이미 그림의 제목 삼사도(三思圖)에서 알 수 있듯이 ‘세 가지를 생각하다’이니 백로는 세 마리여야 한다. 만약 다섯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그린다면 백로는 다섯 마리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세 가지를 생각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 해답은 <순자>(荀子) ‘법행’(法行)에서 찾을 수 있다.

孔子曰:君子有三思,而不可不思也。少而不学,长無能也;老而不教,死無思也;有而不施,穷無与也。是故君子少思长,则学;老思死,则教;有思穷,则施也。

역시 한자는 어렵고 머리 아프다. 한자가 뜻글자인데다 고대에 쓰인 한자어는 매우 함축적이라 의미를 정확하게 옮기는 것은 매우 어렵다. 행간의 의미를 살려 번역하면 이러하다.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세 가지를 꼭 생각해야 한다. 어릴 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커서 무능해지고, 어른이 되어 후세를 교육하지 않으면 죽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고, (재물이) 있을 때 베풀지 않으면 궁할 때 도와주는 이가 없다. 때문에 군자는 어른이 된 후를 생각해서 배워야 하고, 사후의 일을 생각하여 가르쳐야 하며, 궁할 때를 생각하여 베풀어야 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꼭 해야 할 세 가지, 즉 학업정진, 후학양성, 봉사와 기부를 콕 집어 정리한 것이다. 물론 시대와 사람에 따라 꼭 해야 할 목표가 다를 수 있겠지만, 이 세 가지가 개인과 사회에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다.

이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삼사도’다. 백로 세 마리가 주는 의미의 무게가 참 무겁다. 백로는 우리가 흔히 보는 참새나 까치보다는 훨씬 크고 묵직한 새다. 생태학적으로 백로는 버드나무 가지에 앉기 어렵다. 낭창낭창한 버드나무 가지에 덩치가 큰 백로가 앉아 중심을 잡는다는 것은 그네타기의 묘기 수준이 아닐까? 다행히 이 그림의 백로 중 두 마리는 버드나무 둥치에 앉아 있어 안정감이 있지만, 한 마리는 가지에 앉아 조금 불안해 보인다.

실제 백로는 무성한 숲, 튼실한 나무위에 집을 짓고 산다. 그렇다면 그림에서 백로는 실제 잘 앉지도 앉는 버드나무에 왜 앉아 있는 걸까? 이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도 역시 한자어다. 버드나무 류(柳)는 “머무르다, 변하지 않다”는 뜻의 ‘류’(留)와 발음이 같다. 중국어 발음으로는 높낮이만 조금 다를 뿐이다. 따라서 버드나무를 그리고 “잊지 않다”고 읽는 것이다.

삼사도의 ‘세 마리 백로’는 ‘꼭 생각해야 할 세 가지’, 그리고 ‘버드나무’는 “잊지 말고 늘 기억하라”로 치환할 수 있다. 그래서 “학업정진, 후학양성, 봉사와 기부를 잊지 말고 실천하라”는 뜻으로 읽는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로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다음에 어떤 바이러스나 사건사고들이 나타나 우리를 힘들게 할지라도 우리는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하고, 가르치고, 서로 도와야만 한다. 그림의 무게, 그 묵직한 울림이 더 크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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