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코로나상스’ 시대를 맞이하며

<사진=EPA/연합뉴스>

[아시아엔=닐리마 마터 인도 작가, PD, 레이크사이드 독 페스티벌 디렉터] “비록 내가 살 수 있는 것이 없을지라도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소크라테스

흑사병 이후 인류와 지구는 함께 눈물을 펑펑 흘린 후에야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현 인류가 만든 제도들은 너무 거대해졌고 자본주의는 끝없이 확대됐다. 인간은 무한히 개발하고 생산하도록 내몰렸다. 유엔의 지속가능개발목표와 새천년개발목표는 온데간데 없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으로 드넓은 땅은 사라져 버렸다. 화석연료는 고갈됐고, 해수면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징후에도 인류는 여전히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여전히 부와 권력, 그리고 명성을 차지하려고 분주히 움직인다. 끝 모를 욕망과 탐욕, 허영과 과시욕이 이를 부채질한다. 가진 자들은 밀실에서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해 부정하고 부패한 행동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등장했다. 코로나는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들었다. 바이러스의 보이지 않는 맹습으로부터 살아남으려는 간절함 속에서, 공동체정신이 조용히 확대되고 있다. ‘나’(I)가 ‘우리’(We)로 바뀌고 있다. 그동안 인간의 마음 속 가득 차 있던 ‘오만’이 꼬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을까? 르네상스 이전의 중세 유럽은 종교·철학 그리고 십자군원정으로 상징됐다. 학자들은 새로운 가치 체계를 찾기 위해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헌을 파고들었다. 출판과 예술 분야의 혁신은 인쇄술 발달로 이어졌다. 글을 읽고 뜻을 푸는데 더 이상 사제들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됐다. 르네상스 부흥에 가장 영향을 준 것은 흑사병이었다. 그때의 ‘놀라운 수치’는 코로나19와 비슷한 면이 있다. ‘거대한 전염병’은 유럽과 아시아의 드넓은 지역으로 끊임없이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전염병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 몰라 혼비백산했다. 유럽의 부와 권력의 지형은 완전히 바뀌었지만, 시대는 르네상스를 향해 걸어나갔다.

그후 600년, 우리는 ‘코로나상스’(코로나+르네상스)를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중요 포인트들을 살펴보자. 사회-경제-문화-인류학-과학의 다양한 이론이 상호 연결되어 교류를 맺고 있다. 특히 인터넷 발달은 정보의 대확장을 가져왔다. 스마트폰은 정보의 이동과 속도를 가속화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보를 언제, 어디서,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약 10년 후 찾아온 코로나 바이러스. 막강한 재력을 지닌 부자와 권력을 장악한 정치인들에서 가난하고 힘 없는 이들까지 그 누구도 바이러스의 방향을 예측할 수는 없었다. 죽음은 때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르네상스 이후 인류에게 싹튼 휴머니즘(인본주의)은 다시금 꽃필 수 있을까? 1970년대 중반 첫 출판된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보면 코로나19의 시사점들을 상당부분 이해할 수 있다. 거대시장과 막강한 정치제도는 인간의 본성을 빼앗아갔다. 인간은 본연의 모습을 잃은 채 막다른 길로 내몰렸다. 인간이 설 자리는 ‘이윤’이 차지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이 얘기하듯이, 인간은 본래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작디 작은’ 것에서 기쁨과 만족을 얻곤 했다. 소비와 무자비한 경쟁으로 얼룩진 자본주의의 탐욕이 이를 왜곡하기 이전까지는···.

“인간의 행복은 물질적인 부를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을 중심에 둘 때 비로소 그것은 비로서 인간 곁으로 되돌아 온다.”– 에른스트 슈마허

공자가 말했듯, 우리는 급한 일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정작 중요한 일을 할 시간이 없던 것은 아닐까?

One comment

  1. 세계역사 변하지 않음. 세계 최초의 대학 중국 태학.국자감(베이징대로 계승),서유럽의 볼로냐.파리대, 한국사 성균관(성균관대).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하느님,공자숭배),서유럽 세계종교 로마가톨릭(하느님, 예수숭배. 서유럽에서 중남미.필리핀에 걸쳐 더 광범위한 세계종교로 확장). 세계4대 발명품 중국의 종이,화약,나침판,인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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