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 발달 가져온 전염병과 전쟁, 그리고 현미경

해부학은 기초과목이자 인기과목이었다. <이미지 연합뉴스>

[아시아엔=김중겸 전 경찰청 수사국장, 치안발전포럼 이사장] 망원경과 현미경은 안경과 똑같은 핵심부품 렌즈를 사용한다. 고대부터 시력 약한 사람 위해 만들었다. 인간의 눈을 보완해 불편 완화했다.

내 눈앞 물체 확대해서 들여다 볼 기구는 없을까? 1590년대 네덜란드에서 macro가 아니라 micro를 보는, 작은 물체 드러내는 현미경(顯微鏡, microscope)을 제작했다. 해부학 발전에 기여했다.

탐구력은 저 멀리 떨어진 별로 향했다. 대체 누가 사는가? 1608년 네덜란드에서 tele 멀리+보는 scope 망원경 개발, 천문학의 지평 넓혔다. 1611년 갈릴레오도 제작해 천공(天空)을 올려다봤다.

가까이 또는 멀리 보는 도구는 렌즈를 얼마나 정교하게 만드느냐에 따라 성능이 좌우됐다. 16세기 후반기와 17세기 초반 네덜란드에 모여든 안경제작자들이 그 기술을 발전시켰다.

전염병과 전쟁

전염병과 전쟁, 이 두 현상은 존재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 좋다. 그러나 인간과 세상이 부재(不在)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는 또한 발전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역병이 창궐하면 세균연구자와 약학자 수요가 많아진다. 싸우게 되면 부상자 발생해 팔다리 자르고 이어붙이는 외과의사가 부족해진다. 학생들이 몰려들어 약학대학과 의학대학이 즐거운 비명 질러댄다. 교육과 연구가 활성화된다. 현미경은 필수품으로 구비한다.

현미경

의학 교과과정에 해부가 들어간다. 인체 해부와 그 지식은 인류가 병에 시달리면서부터 생겨나고 축적됐다.

해부학

옛날 철학자들에게 인문학은 기본이었다. 과학에도 밝아야했다. 두루두루 만물박사다. 당연히 해부도 대상이었다. 16세기 유럽 명문 이탈리아의 파도바(Padova) 대학의 베살리우스(Vesalius)가 해부학 체계를 잡았다.

17세기 그의 후계자들을 중심으로 깊고 넓게 천착해 나갔다. 그 공로로 그들 이름이 사람 몸 여러 장기의 명칭으로 자리잡았다.

19세기 초 유럽에선 의학이 크게 발전했다. 의과대학이 융성했다. 해부학도 제자리 잡았다. 이 시대 인체해부학은 전통의 파도바대학이 그 자리 여전히 지키고 있었다.

여기에 네덜란드의 레이던(Leiden) 대학,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대학이 가세했다. 해부학교실 3두체제로 불릴만한 형세였다.

해부학은 기초과목이자 인기과목이었다. 너도나도 수강하려고 했다. 강의횟수 늘리면서 문제가 생겼다. 신체 절단하고 장기 적출할 시체가 부족했다.

그렇다고 산 채로 실험해서는 안 된다. 나치와 일본제국 군대, 그리고 미 중앙정보부는 생체실험 자행했다. 살인행위다. 독일은 그 사실 인정하고 사죄했다. 일본과 CIA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렇다면, 이 부족현상 어떻게 해소했는가? 방법 생겨났다. 교활한 지혜다. 영국은 대부분의 사형판결 처형 후 의과대학에서의 해부를 병과(竝課)했다. 이 시체를 인체해부에 썼다. 연구재료의 유일한 공급처였다. 공개해부를 명하기도 했다. 일반인의 유료관람을 허용했다. 다른 유럽국가도 대동소이한 상태였다.

18세기 10살도 채 안된 어린이가 손수건 한 장 훔쳐도 목 매 달았다. ‘피에 젖은 형법’(blood code) 시대였다. 매년 수백명 사형, 해부학 강의에 어려움 없었다.

19세기 계몽주의사상이 풍미했다. 인간의 행동에 이성의 빛을 갖다 댔다. 죽인다고 범죄 줄어드는가? 비판 높아졌다. 이 영향으로 사형은 연평균 56명으로 줄었다. 해부에는 한해 5백명 정도의 시체가 필요했다.

시체도둑 극성

수요 500에 공급 50~60으로 갭 너무 컸다. 그렇다고 해부학교실 문 닫는다? 한창 발전해 나가는 중인데 그만둔다? 숨통 뚫어주는 악마의 대리인 나타났다. 최근 매장한 무덤에서 시체 꺼내다 파는 시체도둑(body snatcher) 성행했다. 법의 맹점이 이를 조장했다. 보석 등과 같은 부장품을 훔치면 절도, 중죄로 사형감이다.

하지만 시신은 재물(財物)이 아니었다. 절도죄로 처벌 불가한 경범일 뿐이었다. 구류 살거나 벌금으로 끝났다. 경찰은 나 몰라라 하고 법원은 뒷짐 졌다. 돈 있는 유족은 무덤 지키기에 나섰다. 감시탑(watch tower) 세웠다. 경비원을 고용해 순찰 돌렸다. 분묘에 쇠로 된 격자형 우리(mort safe) 씌웠다. 시체 훔치기 힘들어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다? 산 사람을 시체 만들어 팔았다.

2 comments

  1. 김중겸교수님!
    모두에게 항상 모범이 되어주시는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로 엄중한 시기에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2. 3월경
    충수염(맹장염) 수술했는데
    개복수술이 아닌 복강경으로 하여
    3일만에 퇴원했습니다.
    의술의 발달에 감탄했습니다.
    김중겸교수님!
    귀한 자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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