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의 추억···눈내리는 안동역 그리고 김원환 초대 경찰청장

눈 내리는 안동역

[아시아엔=김중겸 (사)치안발전포럼 이사장, 전 경찰청 수사국장] “사랑사랑 누가 말했나~. 사랑사랑 그 누가 말했나~아아~~.” 남궁옥분 목소리. 내용은 실연失戀. 옛 연인 생각이다. 그런데 흥겨웠다. 흥얼흥얼 따라 부른다.

제법 가사가 기억에 선연했다. 아직 치매기는 없구나. 노래 나오는 곳, 다름 아닌 목욕탕 때 미는 데다. 장소가 의외여선가. 노래 맛이 있었다.

장성해서 일가 이룬 아들 왈 “목욕탕 가셔서 때 함께 미시죠.” 그래서 같이 갔다. 한 1년 전인가. 그 당시에는 내가 아들에게 청했었다.

나도, 내 아들도 어리던 시절엔 아버님 따라 다녔었다. 父子팀 많았다. 여기서는 아버지가 아들 등 밀고, 저기서는 아들이 아버지 등 민다.

처음엔 노래 들리지 않았다. 탕에 들어가 때 불리고 때 밀려 하자 그때 내 귀에 울려 퍼졌다. “타는 가슴 남몰래 달레네.” 하더니 곡 바뀌었다.

안동역에서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구성지다. 따라 부른다. 목욕탕에서.

문득 ‘안동’ 소리에 그 어른 목소리가 배어 나온다. 경정 때 경무관 두 분에 총경 한 분 모시고 미국출장길에 나섰다. 성격 좋으신 분들이었다.

경무관 한 분은 내가 대전경찰서 경비과장 시절 충남도경 국장이셨다. 도시게릴라방어훈련 현장에 나오셨다. 아들처럼 지도해 주셨다. 정년 임박.

경무관 또 한 분은 막 경무관 되셨다. 총경은 한창 나이에 경무관 승진을 내다보고 있었다.

출발하는 날 김포공항 로비에서 만났다. 막 경무관 승진한 분 말씀하시길 “가방은 각자 듭시다.”

나는 상급자 가방 메고 끌고 다닐 각오했었다. 내 짐 줄여야 했다. 007 손가방 하나 달랑 들고 나갔다. 아, 그런데 각자 들자고 하니, 구세주다!

내가 총무다. 여권과 출장비 내 가방에 넣고 다녔다. 틈나면 지출명세를 수첩에 기록했다.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잘 때도 품고 잘 정도였다.

여행가방 주렁주렁 다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됐으니 출장길 즐거웠다. 짐꾼 일 내려놓았으니 심리적 짐이야 얼마나 가벼웠겠나. 그 고마움에 깍듯이 모셨다.

과연!

타고 다니던 링컨컨티넨탈 토론토 고속도로에서 휘발유 떨어졌다. 내가 내려 밀었다. 그 큰 차가 꿈적도 하지 않는다.

경무관 신참께서 팔 벗고 나섰다. 모두 밀었다. 시내초입 가서야 주유소 네온간판 보였다. 이튿날 시경방문 때 그 ‘무슨 병’ 걸린 사람들처럼 걸었다.

뉴욕. 오후에 NYPD 방문. 오전은 휴식. 아침 먹고 각자 쉬었다. 정오 점심시간 됐다. 인솔담당이 나니까 점호도 내가 한다.

신참 경무관 행방불명. 호텔 안팎 샅샅이 뒤졌다. 오리무중. 호텔 현관 앞에서 기다렸다. 아, 저기서 휘적휘적 걸어오는 양반. 바로 우리 경무관이었다.

헌데, 머리가 짧게 깎여 있었다. 이발 하셨어요? 응. 미국사람들 잘하더구먼.

어떻게 들어 가셨어요? 그거 있잖아. 우리나라 이발소 앞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거 말이야. 그거 보구 들어갔지.

그래서요? 영어 못한다구 하셨잖아요? 그렇긴 하지. 뭐. 어려울 거 있나. 손으로 내 머리 가리키며 “cut, cut, cut!” 했지. 알아듣더구먼.

사상 최악상태였던 뉴욕치안. 혼자 다니다가 강도당하곤 했다. 그런데, 번득 내 뇌리 치는 소리가 있었다. 이 양반! 치안총수 하시겠다!

그렇게 하시니 그렇게 되시지

미국출장 모시고 갔던 신참 경무관. 7년 후 초대 경찰청장 되셨다. 그 동안 한번도 같이 근무하거나 마주 친 기회 없었다.

8월 1일 임명받으셨다. 14일 총경 인사이동. 나를 기획과장에 앉혔다. 새 제도 생겼다. 대통령에게 한달에 한번 치안 상황과 전망을 보고 드렸다. 독대獨對다. 독대자료 작성담당이 기획과장.

독대하고 오셔서 부르셨다. 잘 했다고 하셨다. 대통령 지시사항 알려주셨다. A4로 타자해서 2배로 확대복사 한 독대자료 얼핏 보게 됐다.

청장님! 오늘 가지고 올라가셨던 독대자료 좀 보여 주시죠. 왜? 그냥 제가 좀 참고하게요. 그래? 보구 놓구 가. 예!

행마다 줄그어져 있었다. 연필로, 청색 볼펜으로, 적색볼펜으로, 흑색볼펜으로. 최소 네번을 정독했다는 증거다. 여백에는 깨알 같은 통계숫자.

머리가, 내 머리 속이, 하얗게 텅 비는 듯했다. 되고 나서도 이렇게 정성들이시는구나. 그러니 되기 전에야!

경찰청장 자리가 아무에게나 가는 게 아니다. 온 몸에 전류 흘렀다.

출필곡 반필면 出必告 反必面

청장께서 “김 과장! 미국 한번 다녀와.” 위로출장이다. 내가 단장. 직원 일곱과 함께 갔다. 예전의 신참 경무관께서 하던 그대로 했다. “우리 짐 각자 들자.”

일요일에 귀국했다. 바로 청장실로 갔다. 출타 중이셨다. 나는 내 사무실에서 대기했지만 귀청하지 않으셨다. 귀가.

이튿날 월요일. 청장실에 몇 번 올라갔다. 뵙지 못했다. 화요일. 구내식당에 점심 먹으러 내려갔다.

청장님. 좌정하고 계셨다. 부르셨다. 언제 왔어? 일요일입니다. 그런데 왜 귀국보고도 안했나.

‘출필곡 반필면’ 아느냐고 물으셨다. 네. 압니다. 나갈 때는 다녀온다는 말씀을 어른께 올리고, 돌아오면 돌아왔다고 어른께 말씀드리는 겁니다. 허. 허. 알기는 아는구먼.

마침 청장 수행비서가 대화 듣고는 말씀드렸다. 기획과장님이 귀국하는 날 일요일부터 뵈려고 왔었습니다. 어제도 몇 번 올라왔습니다. 그래? 이리와 여기 앉아. 내 옆에 앉아서 먹어.

중학교 때

전차나 버스로 통학했다. 차비가 둘 다 2원50전. 그 표가 현찰이었다. 그걸 내밀면 영양빵, 어른 손 만한 빵 하나 줬다. 그 재미에 대개 걷곤 했다.

깡패에게 걸리면 표 다 뜯겼다. 덜 뜯기려고 하루에 두 장만 갖고 다녔다.

어느 일요일 과외활동 하러 가느라 오랜 만에 버스 탔다. 손잡이 잡고 졸았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났다. 앞에 앉아계신 백발성성한 할아버지.

왼쪽 가슴의 이름표 가리키셨다. “어느 파 몇 대 손이신가?” 경파 75대 손인데요. “그럼, 춘부장께서는.” 돌림자가 영화 영 자이십니다. “허 허. 요즘두 이런 기특한 학생이 있나.”

기실 2학년 진학해서 아버님께 족보 배우고 있었다. 당시에는 그걸 배우는 집안 많았다. 뿌리알기의 기본이었다. 잘 외우면 간간이 상금 주셨다. 할아버지 말씀에 용돈 맛에 알아둬야 할 게 아니구나. 깨달았다.

出必告 反必面. 그 무렵 1960년에 배운 지식창고 속 재산이다. 31년 후 물어보신 분. 김원환 초대 경찰청장. 안동분이시다. 너무 일찍 물러나셨다. 너무 일찍 작고하셨다. 69세.

황혼의 길이가 자꾸 길어만 간다. 길어진 만큼 이끌어주고 밀어준 사람들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그 덕에 사는 듯하다.

그렇다. “내게도 사랑이, 사랑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그분들뿐이라오.” 내 진정이다. 요즘 더 깊어간다.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