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한국전쟁 일본군 참전 사실 밝혀낸 육사 34기 이종판 박사

이종판 박사, 그는 매거진N 창간호를 힘있고 읽을 만한 매체로 만들어 주었다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매거진N> 창간호 ‘발굴특종’으로 “6·25전쟁에 일본군 참전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2013년 당시 한국미래문재연구원 이종판(66·육사 34기) 연구기획실장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었다.

이종판 박사는 ‘한국전쟁 당시 일본의 역할’(박사학위 논문, 2007년 한양대)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이 박사는 이후 <아시아엔>과 <매거진N>에 일본 현대사 관련 칼럼을 이따금 썼다. 그리곤 2~3년 전부터 소식이 끊겼다.

그러다가 문득 지난 7월초 그의 생일을 맞아 카톡을 보냈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이 박사님 늘 건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이상기 드림” 그의 소식이 궁금하던 차였다.

곧바로 답이 왔다. “고맙습니다. 폰교체 후에 단톡에서 뜨지않네요. 다시 초대 바랍니다. 한일戰이 걱정입니다. 이 위기를 잘 극복해야 할 텐데. 무더운 날씨인데 아이스크림같은 기사는 없을까요. 몸이 회복되면 찾아뵐께요.
이종판배”

이종판 페북에 실린 소나무

그리고 두달 지나 9월 18일 아시아기자협회가 주최한 ‘21세기 3번째 10년 어떻게 맞을까’ 토크에 초청하기 위해 다시 문자를 보냈다. “박사님 시간이 빠릅니다. 댁에서 고기 구워먹던 때도 엊그제 같은데···. “추석 잘 보내셨지요? 가을 한가운데입니다. 소중한 자리에 귀한 분들을 모십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실 분들만 모십니다. 부득이 한 경우가 아니면 중간에 뜨지 않고 끝까지 경청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참석·불참 여부를 알려주시면 준비와 진행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이상기 드림”

이튿날 답이 왔다. “이회장님. 늘 남다른 德性으로 리더하시는 모습을 현장에서 배웁니다. 저는 양평에서 힐링하고 있습니다. 몸이 成치 안해서입니다. 다음에 修身 끝나면 참여토록 하겠습니다. 성공을 기원합니다”

이종판 박사가 9월 19일 필자에게 보내온 사진

이종판 박사는 자신이 최근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 4장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어제(9월 29일) 밤 페이스북에서 이종판 박사의 별세 소식을 알았다. 정말 우연히도···.

그의 육사 동기생 김관영 중부대 교수가 쓴 것이다.

아까운 벗을 잃었다. 육사 34기 동기생 이종판.
생도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마음 나누고 뜻 같이 하여 벗으로 지냈는데 지병으로 시달리던 그를 어저께 보냈다.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중환자실에 누운 그에게 나는 ‘최선 다해 살아나라고 정말 어렵겠다면 하늘나라가 있고 그곳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것이니 슬퍼하지 말자’ 했는데, 그는 가냘픈 손 꼭 쥐어 내 말에 답했고 눈빛에 또렷한 힘 더하여 한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나는 끝내 견디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양평에서 요양중인 이종판 박사가 찍은 사진

벗이든 가족이든 언제나 곁 지키던 강아지이든 떨어지기 시작하는 나뭇잎이든 떠나가는 모든 것들은 슬픔과 비탄 가져오게 마련인데, 사나이가 그 모두에 지나치게 마음 움직여서는 아니 될 것이지만,

나는 오늘 같은 날 만큼은 굳이 억지로 참아가며 기개 떨치려 애쓰는 것보다 차라리 흐르는 눈물 감추지 않고 일그러진 얼굴에 새로운 눈물 보태는 것 막아내지 않으며, 그저 감정의 흐름 따라 흔들려 가는 것 또한 의리와 인연에 맺어진 사나이다운 행동이라 생각하여 이제 외딴 산골에 머무르던 내 걸음을 빈소가 차려진 보훈병원으로 향하려 한다.

아아, 먼저 떠났거나 떠나는 그리운 이들 다시 만날 때까지 오늘 같은 걸음이 몇번이나 내게 되풀이 될까.

어느새 강 건너 골짜기에 산그림자 드리우기 시작했다.
퇴고 마친 이전의 글 드리며, 간구 드리고 싶다.

“모든 것을 안고 계신 자비로우신 [ ]님, 이 길 끝나고서 저희들 당신 품에 영원히 안겨 있게 하소서.”(2019년 9월 29일 김관영)

필자는 이종판 박사의 페이스북에 쓴 글과 사진들을 찾아읽었다.

자신의 몇개 안되는 페이스북 글에 아시아엔을 언급한 글이 두 개, 그림이 한 개 눈에 띄었다.

이종판 그림

“진실이 통하면 싸움이 없습니다. 폴트라인이 심한 아시아에 왜곡을 지우는데 아시아N이 역할하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2017년 5월17일)

“직관이 종이를 철할 정도로 현재 분석과 미래안이 뛰어난 TheAsiaN 발전을 기원합니다”(2015년 11월15일)

경남 고성이 고향인 이종판 박사, 그가 남기고 간 건 정녕 아름다움이리라. 

그는 페이스북에 정호승 시인의 ‘빈손의 의미’란 시도 올렸다. 

내가 누구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손이어야 한다. 내 손에 너무 많은 것을 올려놓거나 너무 많은 것을 움켜쥐지 말아야 한다.
내 손에 다른 무엇이 가득 들어 있는 한 남의 손을 잡을 수는 없다
소유의 손은 반드시 상처를 입으나 텅 빈손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
그 동안 내가 빈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얼마만큼 잡았는지 참으로 부끄럽다
어둠이 몰고 오는 조용함의 위압감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공허한 침묵 속으로 나를 몰아넣고 오만과 욕심만 가득 찬 나를 묶어버린다
어차피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인생인 걸 무엇을 욕심내고 무엇이 못마땅한가
오만과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내 손을 잡아 줄리 없고 용서와 배려를 모르는 한 어느 누구에게도 손 내밀 수 없다
얼만큼 비우고 비워야 빈손이 될 수 있을까
이종판 박사가 찍은 사진

 

 

2 comments

  1. 아버지의 업적에 대해서 좋은 말씀 하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차남 이세윤이 아버지의 연구 정신을 이어받아서 미국에서 학문으로 대성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세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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