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의 포토차이나] 산산진달래 촌촌열사비

진달래가 만발한 왕청현 신흥촌

4월이 되면 중국 동북지방에도 매서운 추위가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하면서 봄의 전령인 진달래꽃이 피어난다. 산악지방이 많은 연변의 봄은 어디에서나 붉은 진달래가 병풍을 두른 듯 피어나 마을이 화사하고 훈훈한 느낌이 들어 평안해 보인다. 그리고 곳곳에서 진달래꽃을 관광상품화한?축제가 열린다.?자연스레?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진달래 군락지 보호에 심혈을?기울이고 있다.

진달래의 꽃말은 ‘첫사랑’, ‘사랑의 기쁨’ 등이다.?두견새가 피를 토하면서 절규한다는 의미로 ‘두견화’라 부르기도 한다. 김소월 시로?더욱 유명해진 이 꽃은 4월 초 한국의 산하 어디에서나 꽃망울을 터트려?모두에게 친숙한 꽃이기도 하지만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는 주화(州花), 연길시에서는 시화(市花)로서?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것은 진달래에 얽힌 한 시인의 노래가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엔 연변을 개척한 선열들에 대한?숭배와 존경의 뜻이 담겨 있다.

연길시 혁명열사능원의 기념비

연길을 대표하는 음식은 냉면이다. 연길 시민들이 축제나 명절 등에 즐겨 찾는 냉면집 중 가장 유명한 곳은 ‘진달래반점’-‘반점’은 중국에서 호텔이나 아주 큰 음식점을 지칭할 때 사용한다-으로 그들에게는 고향의 음식점같은 곳이다. 그들이 타향에서 향수를 느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진달래반점의 냉면이라고 한다.

중국 공산당은 당 건설초기인 1922년 7월 당 제2차 전국대표회의의 선언에서 “각 민족의 자주 권리를 존중한다”고 결의했다. 그러한 토대 위에서 중국 동북지방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은 소수민족을 포용하는 공산당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항일전쟁에서부터 중국을 통일하는 해방전쟁까지 공산당과 고난을 함께하며 한 덩어리가 되어 투쟁하였고 그 과정에서 많은 피를 흘렸다.

안도현 명월진의 산마루에 세워진 혁명열사 기념비

조선족의 그러한 사실을 기념하여 연변 지역에는 523개의 혁명열사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986년 8월 중국의 대시인이며 당시 문화부장관이던 하경지(賀敬之, Hejingzhi)는 연변을 돌아보고 “산산금달래(山山金??) 촌촌렬사비(村村烈士碑) 홍심진쌍익(?心振?翼) 연변정기비(延?正起?)”라는 불후의 명구를 남겼다. 그것은 “산마다 피어있는 진달래꽃은 마을마다 서있는 열사들의 영전에 바치는 화한이다. 붉은 마음이 나래를 펴니 연변의 정기는 드높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백초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세워진 혁명열사비

도문시 일광산록에 있는 혁명열사기념비에는 “항일전쟁부터 6.25 전쟁을 의미하는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까지, 그리고 건국 이래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 중에 회생된 혁명 열사들을 추모하여 이 비석을 세운다”는 명문과 도문시에서 참군하여 희생된 열사 1,042명의 명단이 새겨져 있는데 그중 982명이 조선족, 32명이 한족으로 명시돼 있다.

대황구 훈춘공상당교 교육기지에 있는 13열사능

용정시에는 5,370명의 열사 중 조선족이 96%라고 한다. 길림성의 여성혁명열사는 392명인데 그 중에 조선족이 390명에 이른다. 그리고 동북지방의 여성혁명열사중 90%가 조선족이라고 기록돼 있다. 필자는 조선족을 연구하면서 들르는 마을마다 열사비를 보았고 이와 비슷한 명문이나 같은 의미의 글과 함께 열사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는 것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용정시 교외의 혁명열사 기념비

왜 이렇게 많은 수의 조선인들이 피를 흘렸을까??그들이 망국의 노예로 살기보다는 새로운 땅에서 자유인으로 정착하기 위한 몸부림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중국의 조선인들은 이 같은 공적으로?이주 민족이면서도 토지개혁과 해방전쟁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 공민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았고 신중국을 건설하는 핵심민족이 됐다. 1949년에는 소수민족 첫 민족대학으로 종합대학인 연변대학을 설립했으며, 1953년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를 건설했고, 지금까지 민족의 정체성을 간직하며 살아오고 있다.

흑룡강성 영안시 와룡조선족향 영산촌에 있는 항일영웅 박영산의 묘지의 비석

소월의 진달래꽃과는 또 다른 의미의 진달래꽃에 담긴 사연을 새기면서 희망찬 새봄을 맞이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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