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전 한글로 번역하는데 100년 더 걸려”

이동환 고전번역원장 “인재·예산 부족··· 대학원대학 필요”

고전번역은 조상들과의 소통··· 상호번역으로 亞 발전해야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28개 나라에서 번역되고 15국에서 출간돼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바 있다. 한국어로 집필된 이 소설이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번역의 힘이다.

이처럼 같은 시대 사람들은 언어가 다르더라도 각기 다른 언어로 된 책을 번역해 나눠 읽는다. 그렇다면 다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교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역시 번역으로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한글이 창제되면서 그동안 사용해 온 한자를 버린 것이 아니라 한글과 한자를 함께 사용해 왔다. 더욱이 당시 거의 모든 책들은 한글이 아닌 한문으로 쓰였다. 지금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는 조상들의 생각과 문화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여기에 한국고전번역원의 역할이 있다. 고전번역원은 우리의 정신문화가 담겨 있는 옛 글, 즉 고전을 모아 한글로 번역해 널리 알린다. 2000년간 한문으로 구축된 문화 자체를 한글문화로 전환시킨다는 대역사에 해당한다. 국가 출연기관이 고전을 번역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AsiaN은 이동환 원장을 만나 시대를 넘나들며 언어를 옮기는 일의 의미에 대해 얘기했다.

한국고전번역원 이동환 원장 <사진=한국고전번역원 제공>

이 원장은 “고전을 번역한다는 것은 옛 사람들과 현재 사람들이 소통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조상들의 생각과 감정과 삶의 모습들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유가 생겨날 수 있고 얻는 것이 있다고 했다.

분야는 문학, 철학, 사학, 천문역법, 자연과학 등 학술분야 뿐 아니라 개인 문집, 경서 해석 등 모든 옛 글이 해당한다. 번역여부를 결정하는 가치는 부여하기 나름이다.

조선왕조실록 국역에 163명이 26년 걸려··· 오류 많아 재번역

무한 방대할 것 같은 우리 고전은 얼마나 존재하며, 얼마나 번역돼 읽히고 있는 걸까?

이 원장은 “고전번역은 1965년에 시작됐는데, 지금까지 신라부터 조선말까지의 문집은 2000여 종류의 책을 480권으로 묶었다. 1년에 20책 정도씩 묶을 수 있다. 승정원일기나 일성록, 조선왕조실록 등을 포함하면 1198책이 나왔다”고 했다.

지금 모아둔 고전을 모두 번역하려면 지금 세대에서는 끝을 볼 수 없다. 적어도 100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 이제까지 번역한 책 일부만으로도 이 원장 집무실의 한 쪽 벽면이 가득 채워졌다. 일단은 3000여 종의 책 번역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전을 펴보면 한자가 빽빽하게 메워져 있다. 한자를 안다고 해도 한문의 뜻을 해석하기는 어렵다. 고전번역원에서는 우선 이런 한문을 읽기 좋도록 구두점을 찍고 단락을 지어 정리해 놓는다. 또 문집마다 간략한 해제를 붙여서 별도의 책으로도 만든다.

번역의 속도를 더 낼 수는 없는 걸까?

번역에만 3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승정원일기>는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에 해당하는 승정원에서 기록한 정무일지이다.

이동환 원장은 “인조반정 때 승정원일기가 불에 타 버렸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인조부터 고종때까지다. 조선왕조실록이 우리 문화의 콘텐츠 관련 사업에 많은 도움을 줬는데 승정원일기는 그 실록의 원사료에 해당한다. 승정원일기의 번역이 완성되면 조선후기 역사 연구 뿐 아니라 조선을 토대로 한 소설, 영화, 게임 등 각종 문화콘텐츠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왕조실록>의 경우 지난 1993년까지 26년간에 걸쳐 이미 번역이 끝났지만 오류가 많이 발생해 재번역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 원장은 “번역은 짧은 기간에 소수의 사람들이 번역해야 통일성을 확보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163명의 역자가 참여해서 난맥상을 면할 수가 없었다. 문장도 현대하고 잘 맞지가 않는다. 올해 무작위로 5% 표본을 예비 조사한 바로는 4만여 건의 오류가 발견됐다. 앞으로 6~7년간 문제 있는 문장을 중점적으로 수정 보완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예산 있어도 번역 속도 못내··· 혼자 1권 번역에 1년”

그러나 인력과 예산이 문제다. 승정원은 40명의 외부 역자를 두고 번역이 이뤄진다. 이들이 1년에 번역할 수 있는 양은 1명이 평균 1책에 불과하다. 원고료도 전문가로 대우 받을만큼 충분치는 않다.

이 원장은 “월급도 열악한 수준이지만 예산을 늘려준다고 해도 번역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한자를 되도록 쓰지 않는 교육 정책인데다 생활 속에서 한자를 접할 기회도 없으니 번역자 한 명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고 성토했다.

고전번역원에서는 연수원을 둬서 번역자를 키우고 있고, 전국 6개 대학에서 고전번역협동과정을 지원하고 있지만 크게 부족하다. “궁극적으로는 대학원대학이 있어야 한다. 한문에도 능하고 문학, 사학, 철학 등 전공 역량도 우수한 사람들이 고전 번역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은 영어라면 열 일 제치고 나서는 반면 한자 배우는 일에는 소홀하기 그지없다. 좀 쉽게 가르치고 배우는 방법은 없을까?

“맹자 다 알면 한문 70~80%는 이해 가능”

이 원장은 “옛날 조상들이 한 것처럼 훌륭한 문장을 외우는 것이 제일 좋다. 특히 <맹자>가 문장도 훌륭하고 문체가 다양하다. 이 한권만 다 외워도 한문의 70~80%는 다 알 수 있을 거다. 우리 고전 중에는 <동몽선습>이나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 등도 좋다”고 추천했다.

아시아에서 한자를 사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베트남, 대만 등이 있다. 한자 문명권에 속하는 나라들의 문화 교류에 한자와 한문만 한 것은 없다. 그 중 우리나라에서 한자로 된 고전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는 “중국 말고는 우리나라가 한문으로 된 고전이 제일 많다. 중국은 한자가 자국어이므로 말도 변화돼 왔는데 우리나라 고전의 한자음은 당시 문화를 그대로 담고 있다. 즉 ‘문화의 통조림 현상’을 볼 수 있다. 동아시아의 공통 음운이던 당시 한자를 우리 고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번역은 아시아적 시각을 찾아 나가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동환 원장은 “아시아 각국의 시각이 상호소통과 이해를 통해 통합하고 상호침투하는 변증법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아시아의 실체와 정체성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호 번역만한 것이 없다. 아시아 각국의 우수한 책들을 서로 번역해 공유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서구의 시각에 젖어 서구의 언어로 서구의 사고만을 좇아온 것은 아닌지. 그걸 넘어서는 도구 중 하나가 바로 번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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