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찬 연재소설] 살아가는 방법-22회

강 전무는 각 부서장들로부터 개관 준비 절차의 최종 보고서를 받기 시작했다. 변형섭은 개관 기념행사와 예약 절차를 마무리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기준은 직접 현장을 찾아다니며 리조트 시설을 점검했다. 그는 피트니스센터 건물을 다시 돌아보면서 사고가 훨씬 커질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최종 마무리가 끝나기 전까지 1층과 2층 사이에 쳐놓은 안전망을 절대로 걷지 말라는 루앙의 조치가 있었기에 그나마 중상을 면한 것이었다. 그 외에도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루앙은 사고의 가능성에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있었다.

기준은 그제야 루앙이라는 존재 자체가 현지 직원들에게는 하나의 안전지대였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런데 현장 그 어디에도 루앙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코끼리는 쏭이 돌보고 있었고 공사를 끝낸 방갈로 주변에는 다른 인부들만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를 따르던 직원들은 모두 의기소침해 보였다. 루앙에 대해서 묻자 당분간 그를 만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당분간? 얼마나? 그들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가 자신들을 떠났다는 말을 하면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기는 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가 떠났다는 것.?

‘왜 떠났나?’ 얼마쯤 예감했으면서도 기준은 그가 떠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일차적으로는 루앙이 전기 담당 직원에게 돌아갈 피해를 대신 떠맡은 것이지만, 그런 선택을 하게 된 더 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기준의 생각은 바로 그 점에서 맴돌고 있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루앙의 존재감이 크게 다가왔다.

그 사이 안젤라는 총지배인을 돌보기 위해 리조트 부근의 원주민마을 임시 거처에 짐을 풀었다. 총지배인은 그녀의 온갖 설득에도 불구하고 병원 치료를 리조트 오픈 이후로 미루었다. 둘 사이에 몇 차례 언쟁이 오갔지만 끝내 총지배인을 이기지는 못했다. 걱정 속에서 안젤라는 리조트 오픈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총지배인의 건강문제가 모두에게 알려짐으로써 몰래 숨기다가 갑자기 사고를 당할 리스크는 상당히 줄어든 셈이다. 게다가 중년이라는 동변상련 때문인지 강 전무는 총지배인의 상태를 알고도 거의 내색을 하지 않음으로써 총지배인이 느낄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었다. 그것은 루앙의 퇴사를 알고도 총지배인이 강 전무에게 크게 불만을 제기하지 않은 것에 대한 반대급부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리조트의 지휘부는 모처럼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리조트 오픈을 위한 막바지 준비 작업은 강 전무의 치밀한 지휘를 받아 더 이상의 잡음 없이 진행되었다. 그동안의 격무와 스트레스로 인한 불만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개관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자 새로운 긴장감이 형성되고 작은 기대감마저 생겨났다. 그러나 기준은 직원들에게서 중요한 무엇이 빠져나간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격무에 시달려도 옆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을 줄 아는 그들이었지만 이제 그런 생기와 여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늘 그렇듯 부지런했지만 마치 태엽 감은 인형들처럼 자동적이라는 느낌이었다.

모든 행사와 영업 준비가 끝나고 드디어 오픈 전날 오전, 전 직원이 호텔 앞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가까스로 기력을 되찾은 총지배인과 강 전무가 중앙에 앉고 그 뒤로 기준과 변형섭 등 부서장들이 자리를 잡았다. 현지 직원들은 모두 그만그만한 무표정 얼굴로 뒷자리에 풍경을 만들었다. 기념촬영치고는 너무도 조용하고 싱거운 자리였다.
?????????
“루앙은 왜 떠난 걸까?”
오픈 행사에 참석할 원주민 원로들을 만나본다는 이유로 원주민 마을을 방문한 기준은 둘만 남은 자리에서 안젤라에게 말을 건넸다.?
“나하고 교대한 거예요. 마을을 비워둘 수 없으니까.”
그것도 이유 중 하나이긴 했다. 그러나 기준은 루앙의 행동에 더 깊은 의미가 있을 것만 같았다. 리조트 공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그가 총지배인의 병을 알면서까지, 그것도 개관을 앞둔 상태에서 훌쩍 떠난 것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루앙은 개관을 위한 리조트 공사가 사실상 마무리된 상태에서 자신이 더 필요한 곳으로 간 것인지도 모른다.????
“총지배인님 일……, 미안해. 안젤라한테까지 숨겨서.”
“그럴 수밖에 없었잖아요. 설령 내가 알았더라도 바뀐 건 없었을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건조했다.
“총지배인님이 바라는 리조트는 어떤 모습일까?”
“당신 뜻대로 부릴 수 있는 리조트겠죠.”
“설마.”
“농담이예요. 언젠가 삼촌이 그런 말씀을 하셨죠.”
무슨 말씀? 기준이 눈을 빛내며 안젤라를 마주보았다.
“라오스는 나에게 영원히 아름다운 별이야.” 안제라가 눈을 들어 하늘 저편으로 아주 희미하게 돋아나는 첫 별을 바라보며 말했다.?????
“별이라니, 무척 감상적으로 들리네. 강 전무님에게 그런 낭만적인 면이 있었군.”
“삼촌은 라오스를, 여기 리조트를 너무 사랑해서 탈이죠. 사랑이 너무 지나치면 병이 된다는 말도 있잖아요.” 안젤라의 눈에 살짝 안개가 서렸다.
“총지배인님이 라오스를 사랑한다. 루앙도 라오스를 사랑한다. 모두 라오스를 사랑한다.” 기준이 혼잣말을 반복했다.??????????
“그 말이 정답이네요. 그런데 기준 씨는 어떤 리조트를 꿈꾸세요?” 안젤라가 밝게 웃으며 물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직원들도 나도 꽤 혼란을 겪었지. 총지배인님 방식에 적응하다가 다시 부지배인 방식에 맞춰야 했고, 거기서 또 저항이 생기고……. 상황이 바뀌고 리더가 바뀔 때마다 이런 진통을 겪어야 한다면 리조트 오픈 이후에도 늘 혼란 속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우려가 되고.”
기준은 그간의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강 전무와 총지배인, 그리고 직원들과의 갈등까지 하나하나 되짚어가다 보니 속이 시원하기조차 했다. 왠지 마음이 편해진 기준은 주절주절 말이 길어졌다. 바로 그때였다.
“참 기준 씨답지 않네요.”
안젤라의 단호한 말투에 기준이 멈칫했다. 그녀가 길게 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일하기 좋은 환경, 맘에 맞는 상관, 친절하고 말 잘 듣는 직원들……, 그렇게 진수성찬이 차려지기만 기다리는 것 같아요.”
기준은 순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누나 몰래 숨겨두었던 사탕을 꺼내보다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내 서운하다는 감정이 밀물처럼 몰려들어 부끄러움을 덮어버렸다.?
“말했잖아요, 적응하는 과정이었다고. 더디지만 내 역할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자기도 모르게 말이 더듬거려졌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기준 씨 역할, 그건 벌써부터 알고 있잖아요. 안 그래요?”????
어색함을 깨고 안젤라의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 한 마디의 말이 기준의 마음을 어루만지자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안젤라의 목소리, 맑은 샘물 같은 그 목소리는 상처받은 기준에게 언제나 위안이 된다. 그렇다. 기준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다. 그는 지금 끊임없이 최적의 방법을 찾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라오스는 기준씨에게도 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다시 한 번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별?”
“저기 그려진 별처럼 환하게 빛나는 별이요.”
안젤라가 마을 입구 벽에 그려진 하얀 별을 가리켰다. 거기엔 커다란 별이 그려져 있었다. 원주민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오가던 길인데 왜 보지 못했을까.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오늘에야 비로소 발견한 라오스의 별, 기준은 그 별을 가슴에 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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