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4일] 1949년 북대서양조약기구 창립

2009년 OECD 조세 피난처 블랙리스트 지정

2009년 4월4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필리핀과 코스타리카, 라부안, 말레이시아를 조세 피난처(Tax Haven, 租稅避難處) 블랙리스트 국가로 지정했다.

조세 피난처는 세금이 면제되거나 현저히 경감되는 국가나 지역을 의미한다. 보통 해당 국가 등이 기업투자 유치 등을 목적으로 세금을 낮추거나 면제한다.

하지만 조세회피지역은 단속이 어려운 점을 이용해 특정기업 등이 해당 국가에 서류상 회사(Paper Company)를 설립하고 자금의 돈세탁, 본국에서의 조세 회피(탈세) 등을 위해 이용한다.

2009년 미국, 원격조정 무인비행기로 파키스탄 공격

2009년 4월4일 미국이 원격조정 비행기 미사일로 파키스탄 북부 와지리스탄을 폭격, 13명 이상이 숨졌다.

북 와지리스탄은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따라 있는 파키스탄 부족민 거주지 7개 구역 중 하나로, 아프가니스탄 반군활동을 부추기고 있는 파키스탄 무장단체 ‘하카니 네트워크’와 다른 반군단체들의 근거지로 알려져 있다.

와지리스탄에서 탈레반의 존재는 아프간전쟁 발발 이후 테러와의 전쟁 이래 국제적인 우려였다. 미군이 축출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잔당들이 이 지역으로 도망쳐 들어와 지역 추장과 부족장들에게 외국군대를 축출하기 위한 성전을 촉구했다.

탈레반은 이 과정에서 200명이 넘는 와지리스탄 부족장들을 암살했다. 현재 파키스탄과 미국은 이 지역의 급격한 탈레반화를 막기 위해 많은 병력을 투입하고 있고 탈레반과의 교전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CIA는 이 지역을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지목한 바 있다.

2011년 10월15일에도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 지대에 미국 무인 전투기가 공습을 벌여 4명의 테러 조직원들이 숨지고 여러 명이 다쳤다. 파키스탄 정보 당국은 당시 와지리스탄 남부 지역 무장 조직 탈레반 주둔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이 집중됐다고 밝혔다.

2012년 3월14일(현지 시각)에도 미군 소속으로 추정되는 무인항공기 공격으로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한 파키스탄 부족 지역에서 반군 5명이 사망했다.

미국 정부는 파키스탄에서 무인 전투기의 사용을 공식 인정한 바 없다. 하지만 국제사회에는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미군의 이 같은 공격이 자주권을 훼손하는 일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1979년 파키스탄 전 총리 부토 처형

1979년 4월4일 파키스탄 군부는 전 총리 줄피카르 알리 부토(Bhutto, Zulfikar Ali)를 교수형에 처했다. 부토는 모하마드 아유브 칸 정권 시절 각료직을 두루 거쳤으나 정부의 독재 성향을 비판해 투옥됐다.

파키스탄 국민당 창설 뒤 1970년 총선에서 서파키스탄 지역의 높은 지지율을 얻었으나 동파키스탄 분리자치를 내세운 ‘아와미 동맹’에게 패배했다. 부토는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독립하면서 모하마드 야히아 칸으로부터 서파키스탄의 정권을 인수받아 개혁을 단행했다.

1973년 신헌법을 채택했고, 1977년 다시 총선을 실시해 국민들의 신임을 얻었다. 하지만 야당의 선거부정 시비가 일면서 육군 참모총장 모하마드 지아 울 하크 장군이 쿠데타에 성공하자 부토는 정적 암살을 배후조종한 혐의로 검거돼 사형을 선고받았다.

1966년 2차 대전 불 지핀 나우요크스 사망

1966년 4월4일 나치 독일의 장교로 폴란드 침공 공작을 성공리에 이끌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직접적인 계기를 만들었던 나우요크스가 심장 발작으로 함부르크에서 사망했다.

1939년 8월31일 오후 8시 폴란드군이 독일 영토 내의 ‘글라이비츠’ 방송국을 습격해 직원들을 감금하고 대독(對獨) 선전포고 방송을 내보냈다. 그러나 이는 폴란드 침공 명분을 만들기 위한 나치의 계략이었다. 방송국을 공격한 폴란드군은 친위대(SS) 내 보안기관인 SD(보안방첩대) 요원이었고 선전포고문은 SD 우두머리 하이드리히가 작성한 것이었다.

‘몸통’은 히틀러였다. 1939년 5월 전군 최고 지휘관을 소집한 자리에서 폴란드 공격을 결심한 히틀러는 전쟁의 명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친위대(SS) 장관 하인리히 힘러에게 공작을 지시했다. 폴란드 군복과 신분증, 무기 등은 독일군 정보부에서 마련했고, 이 작전을 수행할 책임은 친위대 소령 알프레드 나우요크스에게 맡겨진 것이다.

방송국 건물 안에 있던 직원들과 경비원을 꽁꽁 묶고 방송을 통해 ‘폴란드가 독일에 전쟁을 선포한다, 폴란드인이여 궐기하라!’는 내용의 폴란드어 선언문을 낭독했다. 요란한 총성과 함께 이들이 사라지고 난 뒤 방송국 건물 앞에는 사살된 폴란드 군인 시체 한 구가 발견됐다. 같은 날 밤 11시, 베를린에서는 선전장관 괴벨스가 국내외 기자들을 모아 놓고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런 식의 테러는 용납할 수 없으며 독일 민족의 사기는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폴란드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다음날 새벽 독일군은 폴란드 국경을 넘었다. 6년간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2차 세계대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공작에 투입됐던 SD요원 모두 숙청될 만큼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던 이 음모는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그의 증언으로 실체가 드러났다.

나우요크스는 1911년 군항 키일에서 태어났다. 1931년 하이드리히와 알게 되면서 SS에 입대한 후 SD로 옮겨 첩보원을 위한 각종 위조 신분증을 만드는 조직을 이끌었다. 글라이비츠 방송국 습격 이후 하이드리히와의 불화로 1943년 서부전선으로 보내져 벨기에에서 경제감독관으로 재직하다가 1944년 미군에 투항했다. 전후 사업가로 변신해 ‘전쟁을 시작한 남자’라는 자신의 이야기를 대중매체에 팔기도 했다.

1949년 북대서양조약 조인

1949년 4월4일 워싱턴에서 북대서양조약이 조인되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발족됐다. NATO의 목적은 유럽에서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 동맹국의 공산주의세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서방 연합국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 있었다.

NATO군에 참여한 미국은 서독에 핵무기를 배치했으며, NATO와 바르샤바 조약국 사이의 냉전상태는 계속됐다. 1980년대 말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동유럽 공산주의 정부의 붕괴, 독일의 통일 등 국제 정세가 변화함에 따라 군사기구로서 NATO의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후 NATO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평화유지 작전에 참가하는 등 정치적 성격의 기구로 변화했다. 1999년 동유럽 국가인 체크·폴란드·헝가리가 가입, 회원국은 그리스·네덜란드·노르웨이·덴마크·독일·룩셈부르크·미국·벨기에·스페인·아이슬란드·영국·이탈리아·캐나다·터키·포르투갈·프랑스 등을 포함해 19개국이 됐다.

미얀마 장수 와레루 한타와디 왕국 건국(1287)

1287년 4월4일 미얀마의 선조들이 세웠던 버간 왕조시대의 무장 와레루가 한타와디 왕국을 세웠다.

미얀마는 현재의 다수 민족인 버마족 외에 몬족, 쀼족 등 여러 민족이 얽혀 살며 오랜 역사를 거쳐왔다. 초기에는 몬족과 쀼족의 소왕국들이 산재하다가 버마족의 버간 왕조가 등장, 11세기 중반 무렵 현재의 버마 전체로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러나 중국의 원나라가 240년 넘게 지속돼온 버간 왕조를 멸망시켰다. 그 뒤 1287년 와레루가 한타와디 왕국(~1552)을 세운 것이다.

와레루는 1253년 샨족 아버지와 몬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장해서 태국 수코타이 왕국의 람캄행 왕 휘하로 가 그의 호위대장이자 사위가 됐다. 그러나 그는 아내와 재물을 빼돌려 버마의 마르타반으로 달아난 뒤 그 지역 수장을 제거하고 자리를 잡았다. 원나라 군대가 더위를 견디지 못해 돌아가자 와레루는 뛰어난 외교술과 강한 전투력으로 인근 왕국들과 다투며 버마 전체를 정복했다.

와레루는 1307년에 54살의 나이로 손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당시 그의 죽음을 접한 한타와디 백성들은 기뻐했다. 와레루는 한타와디를 몬족의 국가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다수의 백성들은 그러나 와레루가 샨족 출신의 강탈자라고 여겼다.

한편 와레루가 정비한 관습 법전은 버마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법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버마는 한타와디 왕국 이후 따웅우 왕조(1531~1752), 꼰바웅 왕조(1752~1885)로 이어지다 영국 식민지 시대(1886-1948)를 거쳐 미얀마 시대에 이르렀다.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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