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관장님, 대한민국과 진짜 자수작가 명예를 돌아보십시오”

자수공예는 선조들의 지혜를 한땀 한땀 정성 어린 노력으로 복원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사진은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60대 후반 여류 자수작가가 있다. 그는 이화여대에서 자수를 전공했다. 그는 강남의 아파트에 박물관을 차려놓고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그의 박물관은 한때 국내외 인사들이 줄을 잇는 강남의 명소로 제법 이름을 날린 적도 있다.

6~7년 전에는 프랑스의 유력인사들이 자주 들러 언론에도 종종 보도됐다. 내로라 하는 신문의 문화면·인물면과 지상파 및 아리랑티비에도 뉴스시간·프라임타임에 방영되기도 했다. 특히 그의 ‘예술’을 지원하기 위해 후원회와 재단법인도 설립됐다. 거기에는 꽤 알려진 대학총장, 변호사, 병원장, 사업가들이 앞다퉈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한땀 한땀 직접 수를 놓았다. 내 작품들은 모두 국가에 기증할 것”이라는 그의 말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그가 자신의 대학선배에게 70억원 이상의 현금을 받고 자신의 작품을 팔아 사기혐의로 고소당했다. 그의 대학선배는 그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것이 너무 부끄럽다고 했다.

그의 대학선배는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법원에 재정신청과 함께 민사소송을 해놓은 상태다.

그는 자신의 박물관을 찾는 이들에게 늘상 “10살 때부터 자수를 직접 한땀 한땀 앉아서 수십년을 했다. 작품 중에 단 한 작품도 제3자에게 판 적이 없다. 작품을 국가에 헌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작품이라고, 한땀 한땀 직접 수를 놓았다는 작품이 그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많은 분량을 혼자서 감당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하는데서 의심을 사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작업하는 것을 본 사람이 없다. 10년 넘게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도 그가 작업하는 것을 본 사람이 없었다. 작업실을 방문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작품은 계속 쏟아져 나왔다. 총괄자수사는 10년 전에 죽었다고 했지만 최근까지도 ‘새로운 작품’은 계속 나왔다.

도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그가 설립한 재단의 초기 임원을 지낸 K씨는 “15년 동안 그를 알고 지내면서 단 한 순간도 그가 작품활동을 하면서 협업을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단 한 작품도 제3자에게 처분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K씨는 “그를 한때 예술가로 존경한 것도, 작품을 하면서 세상을 잊고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가는 그 정성에 감복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그를 존경할 이유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너무 슬프고 화가 난다”고 했다.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K씨를 비롯해 초기 멤버들은 지금 그를 떠났다. K씨처럼 그를 떠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속았다”고 말했다.

후원회 가운데 하나는 지난해 해산됐다. 또 초기 재단에 이사로 참여한 사람들은 그의 직계가족을 빼고 모두 사직하고 그를 떠났다. 재단 이사장은 유수한 대학 총장을 지낸 분이 맡고 있다. 이를 두고 초기부터 물적·심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은 “대학총장까지 지낸 분이 그에 대한 진실을 몰라서 그런가, 아니면 무슨 거래관계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그는 2015년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기메박물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그는 오는 9월 스위스 제네바 ‘극동박물관’에서 ‘흙과 실크’를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 프랑스의 마리 게리에라는 작가와 함께 하는 전시회다.

재단 설립에 앞장서 그의 지원에 발벗고 나서며 지인들까지 후원자로 참여시켰던 K씨. 그는 최근 사건 전말을 알고나서 재단에서 손을 완전히 뗐다. K씨의 말이다. “프랑스 기메박물관측이 그의 행태를 알고나 있었을까? 만일 몰랐다면 참으로 무책임한 일이다. 알고도 그랬다면 스스로 권위를 무너뜨린 일이다. 그가 또다시 제네바에서 전시회를 연다고? 그는 더이상 대한민국과 진짜 자수 예술인들의 명예를 더렵혀선 안된다”고 했다.

그의 이름은 ‘손인숙’, 그를 후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재단은 예원실그림문화재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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