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세상을 향해 떠나는 이들에게

나에게는 자랑하고픈 오빠가 한 분 계시다. 촌수를 따져보지 않아서 얼마나 멀고 가까운 관계인지 모르지만, 나의 삶 마디마디에는 항상 계셨다. 학교를 졸업하고 출판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오빠 덕분이고, 결혼식장에서 내 손을 신랑에게 넘긴 사람도 오빠이다. 30년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 일선에서 한참 바삐 움직이실 때는 너무 ‘큰사람’인지라 눈이 부셔서 차마 바라보기도 힘들었다. 어린 마음에 가볍게 풍기는 오드콜로뉴의 향은 별개의 세계로 느껴졌다.

이제는 나도 오빠와 세상 이야기를 나눌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오빠는 지금도 아침마다 논어를 암송하신다. 논어는 읽기만 하는 것보다 소리 내어 외우면 훨씬 감동적이고 시처럼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그 무궁한 풍류의 세계를 쫓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도 좋다. 그냥 가까이 계시는 것만으로도 좋다. 매주 월요일 아침 뉴시스아이즈 칼럼에서 오빠의 글을 찾아보는 것도 기쁨의 하나이다.

며칠 전, CD를 한 장 주셨다. 나를 위해서 직접 구우신 모양이다. 일본 가수 사다 마사시(さだまさし)의 <가카시(허수아비)>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젊음이 외롭고 아팠던 날 카세트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들었던 그 노래다. 오빠는 딸아이를 유학 보냈을 당시 많이 들었던 노래라고 하셨다.

<그림=박은정>

사다 마사시의 노래

양 갈래로 닳은 머리가 촌스러웠던 고등학생 때, 친구가 놓고 간 LPG판을 통해서 사다 마사시의 노래를 처음 들었다. 딸을 유독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아버지의 가장 긴 하루>라는 곡을 듣고, 왜 그리 서럽게 울었던지.

‘고등학교 2학년 가을, 여동생의 첫사랑은 짝사랑으로 끝나고 / 남자친구 하나 없다니 한심하다고 아버지는 항상 놀려댔지만 / 가끔 걸려오는 전화에 가장 신경 쓰는 사람은 바로 아버지’ 아름다운 멜로디에 싸인 노랫말 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리움이 내 가슴까지 촉촉이 적셨다. 이후 그의 노래는 내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사다 마사시는 일본에서 콘서트를 가장 많이 하는 가수이다. 데뷔 이후 3500회를 넘겼다고 하니 한해 100회 이상 콘서트를 실시한 셈이다. 그의 곡은 모두 그가 직접 만든 것들인데, 그는 ‘작사’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작시(作詩)’라고 한다. 그러니 그를 가수라고만 소개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는 시인이자 이야기꾼이다. 그는 아름다운 멜로디에 세상 이야기를 따뜻하게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재밌게 담는다. <연애증후군> <연절사(緣切寺)> <꿈> <찬스> <행복에 대해서> <주인공> <기적>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멍~해지는 곡들이 나의 추억 속에 가득하다.

가카시, 외롭지는 않니

‘가카시(案山子)’는 겉은 훌륭하나 속이 보잘 것 없는 굴퉁이라는 뜻도 있는데, 여기서는 허수아비를 가리키는 것 같다. 이 노래는 도회지에서 혼자 생활을 하고 있는 동생에게 고향에 있는 형이 보내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는데, 멀리 떨어져 있는 피붙이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다.

가카시

몸은 아프지 않니, 그 곳 생활은 어떠니
친구는 좀 생겼니, 혼자라 외롭지는 않니
쓸 돈은 아직 남았니, 다음엔 언제 집에 오니

눈이 녹으면 네가 이 마을을 떠나고 처음 맞이하는 봄
편지 쓰기가 힘들다면 전화라도 하기 바란다
“돈 보내줘” 그런 말이라도 좋다
너의 웃는 얼굴을 애타게 기다리는 어머니께 목소리라도 들려다오

은빛 담요를 덮은 논에 우두커니
버려진 채 눈을 덮어쓴 허수아비 하나

너도 도회지의 설경 속에서
저 허수아비처럼 외롭지는 않은지
어디 아픈 데는 없니

언젠가 미키유천이 일본 TV에서 이 노래를 부른 적이 있는데, ‘쓸 돈은 아직 남았니’라는 구절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해서 모두를 웃게 했다.

많은 친구들이 그러했듯이 나도 대학생이 되면서 집을 떠났다. 혼자서도 잘 살고 있다고 고개를 쳐들고 씩씩하게 걷고 있었지만 가슴은 외로움이 가득했던 그 시절, 이 노래를 듣고 얼마나 많은 위안을 받았던가. 한 구절 한 구절이 사랑의 메시지였다. 조카가 유학을 간 것은 그 후의 이야기다. 오빠는 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대신한다고 생각하셨을까.

1977년 일본에서 발표된 이 노래는 1980년대 서울에서 객지생활을 하는 한 여대생의 마음을 위로했고, 1990년대 딸을 파리로 유학 보낸 아버지의 마음을 대신했다. 그뿐일까. 고향을 떠난 얼마나 많은 허수아비들이 이 노래를 흥얼거렸을까. 그리고 2012년 오빠는 나에게 이 노래를 선물했다. 나에게는 곧 내 품을 떠날 준비를 하는 아들이 있다. 일본은 4월에 학기가 시작된다. 때 아닌 눈이 내리는 날 나는 다시 이 노래를 듣는다. 따뜻한 노랫말은 시대를 초월하고 마음을 감싸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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