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썬과 마약범죄②] 때늦은 마약과의 전쟁, 두테르테처럼 그래도 해야한다

[아시아엔=김중겸 전 경찰청 수사국장] 영국은 중국대륙에 아편 팔았다. 목적은 對중국무역의 적자 메우기였다. 식민지 인도의 싼 아편 가져다가 청나라 사람들에게 팔았다. 그러다 청 당국이 단속하자 군함 갖다 대고 함포사격 해댔다. “해병대 돌격!” 이게 무슨 전쟁인가? 아편 못 팔게 한다고 일으킨 아편전쟁이다.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에서 신사도는 국내용이다. 다른 인종이나 민족에게는 불량한 양심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니들은 아편 먹고 해롱해롱 해도 오케이!”

일본에서 시작된 히로뽕은 피로를 한 방에 뽕 가게 만든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디에 쓰였겠는가. 대일본제약에서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군수물자 만드는 공장 노동자에게 줬다. “자! 이걸로 피로 뽕 풀어! 탄약 많이 만들어!”

중산층에서 모든 계층으로

1960년대 미국. 월남전이 한창일 때 반전운동에 참여한 젊은이들 가운데 잘 사는 집 도련님이 많았다. 데모하다 섹스 하고, 마약에 손대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살려라!” 중남미 원산의 마약이 미 남부와 서해안 국경 통하여 밀수됐다. 유통망도 차츰 정비됐다. 마피아와 갱들이 장악했다.

1981년부터 1989년까지 레이건 정권, 1979년부터 1990년까지의 영국 대처 정권. 이들 가진 자를 위한 보수정부는 돈이 돈 버는 자유주의정책을 폈다.

최저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사회안전망을 축소시켰다. 노조도 붕괴시켰다. 빈부격차 확대됐다. 먹고 살기 힘든 가정이 양산되며 중산층이 무너져 내렸다.

때마침 1980년대 중반, Crack Cocaine이 미국과 캐나다 시장에 나왔다. 사용방법이 간단해 빈곤층과 젊은 세대에게 급속히 퍼져나갔다.

뒤늦은 마약과의 전쟁

서해안에서 남부로, 다시 동부지역으로 마약수요가 늘어났다. 공급자들은 떼돈 벌면서 마약을 댔다. 고등학교 때 마리화나 안 핀 학생 없었다. 대학 다니며 코카인이나 헤로인 멀리 한 학생 없었다. 마약 손 안댄 월남전 참전병사 드물었다.

CIA나 FBI 요원 그리고 경찰관 뽑으려고 해도 적격자 구하기 어려웠다. 적격자? 마약 안 먹은 사람이다. 그러니 찾기가 정말 힘들었다. 할 수 없이 자격요건 낮췄다. 고등학교 때 핀 거야 면죄부, 최근 몇 년간 끊었으면 오케이. 이런 형편이었다.

부랴부랴 The War on Drugs(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1988년 레이건 대통령 당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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