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속으로] 산다는 것은 발끝에 있다

캠프나비 박상설(85) 호스트의 ‘자연속으로’ 칼럼을?연재합니다. 산과 들에서 느끼는 시원의 감정을 85세 경륜에 녹여 독자들에게 삶의 통찰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박상설 호스트는 우리나라 캠핑 문화의 선구자입니다. 아웃도어레포츠가 생소하던 1990년대 초부터 오토캠핑을 시작해 지금은 캠핑 강사와 캠프나비 호스트로 자유를 갈망하는 많은 이들을 자연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동아일보와 백병원이 주관한 제1회 투병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1948년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공병 장교와 대기업의 중역을 역임했습니다. <편집자주>


‘역사’는 호사가들이 지난 사건을 권력지향으로 기록한 것이다. 자기 삶을 위한 유용한 가치로 역사를 도구화해야 한다.? 자신의 몸으로 부대껴 고통을 겪는 체험이 ‘역사’여야 한다. 그 과정의 고난은 지옥이지만 그 지옥이 유일한 ‘주적(主敵)’이다. 인간의 고통은 눈에 보이지 않고 원스톱으로 설명이 안 된다. 각 개인이 뼈를 깎는 순간순간의 아픔을 각인한 것이 역사이다.

역사는 타인이나 사회, 권력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줄이다. 마라톤은 한 발 한 발 칼로 족문(足紋)을 새기는 자학의 극치이다. 사실을 ‘고지(高志) 곧대로’ 우직하게 행동한 자취가 역사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결여’와의 전쟁이 삶이고 역사이다. 허나 다행인 것은 불안해지는 순간부터 인간은 용맹한 전사가 된다.

걷기···발을 빌려 몸으로 자연을 읽다

이런 연유로 걷는 것이다. 걷다 죽을 거다. 잠시라도 세상을 뒤로 하고 후미진 곳을 느릿하게 걷는다. 굽이굽이 산길 따라 발길을 옮길 때마다 만나는 들풀과 나무와 숲. 이제 마음은 숲에 머물러 나를 본다. 모든 것을 접고 또 걷는다. 목가적 언덕에서 ‘앤솔러지(anthology, 명시선)’에 몰두하며 혼자서 아름답다.

걷기는 발을 빌려 몸으로 자연과 세상을 읽는 운동이다. 가장 원시적인 문화 읽기이며 앞서가는 모던이다. 걷기는 쓰기 위한 워밍업이다. ‘일+여행+레저+감성+인식’을 걷기로 완성한다. 몸을 ‘펜대’ 삼아 자연과 모든 것을 땅에 새기고 써내는 것이다. 글은 몸으로 밀어붙인 존재확인이며 나심(裸心)의 갤러리이다.

각본 없이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행위예술이며 사유의 극치이다. 자연의 ‘속 알’을 부둥켜안고 치열하게 몸을 던져 동화한다. 몸을 ‘욕망’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열망’으로 소진한다. 고유한 개별성을 갈망하고 현재와 미래 두 ‘장르’에 몰입한다. ‘인생훈련’을 ‘스파르탄(spartan)’보다 더 모질게 스스로를 담금질한다.

나는 매일 ‘자연’ 속으로 출근한다

힘들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라 마냥 내 자신이 부럽다. 이런 짓을 왜 안하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 민들레 홀씨처럼 어디론가 떠돌며 숨겨진 기막힌 곳에 숨어든다. 혼자 무릎 치며 이 기쁨 누가 엿듣고 알까 조아린다. 이렇게 가슴 뛰는 일, 세상에 들킬까 생각하니 유쾌하다. 마음의 짐을 내리고 티끌만한 연민도 자연풍경에 맡겨 놓는다. 이제 근심걱정 자연에 방기하고 손을 턴다.

산다는 것은 ‘발끝’에 있다. 걷고 뛰고 발이 닳아 문드러져야 세상이 보인다. 호기와 탐험으로 쏘다니며 출근을 ‘지구’로 ‘자연’으로 하는 것이다. 모든 사연을, 사람을 넘어, 들풀과 흙에 맺는다. 여한 없다. 이대로 좋다. 마음껏 살았다. 이제 노향목(老香木)은 흙에게 당부한다. 내 ‘잎새’ 다하여 땅에 사뿐히 지는 날 못 본 체 해다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이제 됐다. 모든 것은 욕심이였다. 꼭 이렇게 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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