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증후군’ 날려버리는 원불교 ‘합동차례’

    원불교는 2015년 100주년을 맞았다. 사진은 원불교 교무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설날 아침 일찍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원불교 여의도교당으로 달려가 설 명절 합동차례를 지냈다. 그리고 곧이어 한 도반(道伴)의 모친상에 문상(問喪)을 겸해 고인의 명복(冥福)을 비는 독경식(讀經式)에 참여하고 돌아왔다. 또 독경식에 참여한 도반들과 ‘덕산재’에서 가정독경을 했다. 그랬더니 너무 피곤하여 가뜩이나 저하된 컨디션이 영 엉망이 되고 말았다.

아마 이것도 일종의 ‘명절증후군’(名節症候群)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명절증후군이란 명절 기간에 스트레스를 받아 생기는 육체적, 정신적 증상을 일컫는다. 부담감과 스트레스, 육체적 피로 등이 주요 원인으로 두통과 소화불량 등 다양한 신체적 증상을 동반한다.

명절증후군의 증상은 다양한데 심한 피로감을 느끼며 두통, 소화불량, 위장장애, 심장 두근거림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사람에 따라 얼굴이나 손발의 감각이 이상해지거나 며칠 동안 몸살을 앓을 수 있다. 정신적으로는 우울감과 무기력증, 조절하기 어려운 분노나 불안감 등을 느낄 수도 있다.

명절증후군의 일차적 원인은 육체적 피로다. 명절 때 장거리 운전을 하거나 장시간 차량에 탑승하는 경우, 음식 장만과 같은 노동으로 인한 피로가 대표적이다. 직장인이라면 명절 연휴 후 휴식 부족으로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면서 업무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명절증후군의 또 다른 요인은 한국 특유의 명절문화도 있다. 오래 전 핵가족화 된 구성원들이 갑작스레 전통적인 가족군(家族群)에 들어가면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다. 평소에 떨어져 있던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이면서 드러나지 않았던 갈등이 증폭되거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관계가 좋지 않은 가족이라면 오히려 명절을 계기로 갈등이 커질 수 있다.

그런데 명절증후군을 가장 심하게 겪는 사람은 대개 여성들이다. 아직도 명절 때 일의 대부분이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기혼 여성이라면 가부장적인 전통적 ‘며느리 상(像)’을 요구하는 윗세대와 갈등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이유로 오랫동안 명절증후군은 기혼 여성이 겪는 대표적인 증상으로 알려졌다.

명절증후군을 겪는 대상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 명절 때 여러 친척이 모여 근황을 묻는 과정에서 지나친 관심과 질문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늘었다. 학생이라면 성적이나 대학 진학, 대학생이라면 취업 여부 등 부담스러운 질문을 받은 후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느낄 수 있다. 미혼자의 경우 결혼에 대한 질문에 열을 받기도 한다.

한편, 노인세대의 경우에는 명절이 끝나고 자식세대가 떠난 후 상실감으로 인해 외로움이나 공허감을 느끼는 형태로 명절증후군을 겪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오래 전부터 명절 때는 원불교 여의도교당으로 달려가 합동차례를 올린다. 그러면 명절증후군도 막을 수 있다. 아내의 건강이 음식 장만을 감당할 만큼 좋지 않은 것도 원인이다.

우리가 올리는 차례는 원래 음력 매달 초하루와 보름, 또는 명절날, 조상이 열반하신 날이나 생일 등에 지내는 제사다. 그러나 지금은 설날과 추석에 지내는 것만을 의미한다. 차례는 말 그대로 차(茶)를 올리는 간편 예절이었다. 그것이 상차림과 효(孝)가 비례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점차 성대하게 차리게 됐다.

통계청 발표를 보면 이러한 효가 ‘명절증후군’을 넘어 명절을 지낸 후 이혼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명절 이혼’을 낳고 있다고 한다. 명절 스트레스의 한 축을 담당하는 차례는 상을 차리는 비용에서부터가 스트레스의 원천이 된다.

4인 가족의 차례상 비용은 올해 24만6422원으로 조사됐다. 전통시장은 19만1905원, 백화점은 38만1621원이나 된다. 이래서 등장한 것이 가정간편식(HMR)으로 2010년 7700억원 규모에서 올해는 3조원대로 커졌다고 한다. 여기서 또 다른 스트레스는 간편식으로 차리면 조상에게 죄송하고, 백화점은 경제가 허락하지 않아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이 스트레스를 해결 방법은 없을까? 있다. 아예 나처럼 모든 자손들이 원불교 교당(敎堂)으로 달려가 합동차례를 지내는 것이다. 교당에서는 정신과 실질에 중심을 두어 모든 제사에 음식진설을 철폐하고, 위패(位牌)와 꽃으로 장식하여 절차를 간소화했다. 이미 원불교에서는 100년 전에 오늘의 ‘명절증후군’에 착안하여 허례(虛禮)를 철폐한 것은 가히 혁명적이다.

교당에서 합동으로 향례를 모시는 것은 많은 대중의 공동 추모(追慕)와 선지식(善知識)의 합동 축원(祝願)을 받게 되므로 그만큼 공덕이 큰 것이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조상에게 도문(道門)에 인연을 맺게 하기도 하고, 헌공을 바쳐서 공사(公事)에 도움이 있으면 조상의 명복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특히 교당에서의 합동차례는 한때의 행사뿐 아니라 관계자가 그 조상을 위하여 많은 공익사업을 하고, 모든 선행을 닦으며, 수도 문중(修道門中)에 도력을 얻은 자손이 있다면, 그 음덕(陰德)이 또한 그 조상에 미쳐 갈 수 있으니 얼마나 큰 공덕인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당 합동차례의 공덕은 여성들로 하여금 차례상을 차리는 스트레스에서 해방시켜 명절증후군을 확실히 날려 보내는 것이다. 또 가족 화목을 추구하여 이혼율을 낮추는 데도 탁월한 효험이 있다.

제사(祭祀)는 열반인(涅槃人)에 대하여 추모의 정성을 바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의식 가운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청정한 마음으로 진리 전에 발원(發願)하여 숙세(宿世)의 업장(業障)을 녹이고, 도문에 인연을 깊게 하며, 헌공금(獻供金)으로 공도사업에 활용하여 그 미래의 명복을 증진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열반인의 재세(在世) 당시에 끼친 바 공덕을 추모하며 자손대대에 그 근본을 찾게 하여 보본(報本)사상을 권장하는 것이다.

올 추석부터 정갈하고 엄숙한 합동차례를 지내 명절증후군을 싹 없애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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