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살 박상설 기자의 ‘죽음에 관하여’ 그리고 유언장

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왼쪽)가 이장무 전 서울대총장과 대화를 하고 있다.

[아시아엔=주영훈 인턴기자] 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는 올해 만 91세로 <아시아엔> 최고령 기자다. 외국은 몰라도 한국에서 그 연세까지 기사나 칼럼을 쓰는 기자는 매우 드물 것이다. 더욱이 박 선생은 현장을 직접 다니며 생동감 넘치는 글을 쓴다.

그의 연륜이 배어있는 칼럼과 기사는 많은 이들에게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선사하고 세속에서 벗어나 마음 따뜻한 자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 그에게 죽음에 관하여 여쭸다.

-20대 중반의 대학생으로서 죽음에 대해 선생님께서 갖고 싶은 생각이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것을 그저 한탄하고 죽으면 모든 게 다 끝났다 생각하지요. 어떤 이들은 부활과 천당과 지옥을 논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나는 죽음이 하나의 종결을 떠나 죽음은 우주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죽습니다. 그렇기에 죽음을 내 스스로 먼저 인지하고 받아들여야겠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했습니다.”

박상설 기자가 미리 골라놓은 자신의 영정사진, 1987년6월20일 덕유산 정상의 일출 <사진=박상설 제공>

-죽음을 인지한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요?

“먼저 ‘내가 살아온 길은 어땠나, 나는 잘 살았나’ 되돌아보며 후회가 없도록 살고 싶었습니다. 90살 넘도록 살았기에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나의 경우 내가 죽는 날짜를 내가 스스로 인지하고 죽을 예정입니다. 내가 죽기 직전 그러니까 내 생애 마지막에 내 스스로 살아갈 가망이 없다고 생각 들면 15일 내로 죽지 않겠나, 이렇게 맘을 먹었습니다. 일체의 식사를 중단하면 보름 안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목숨이 끊어집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일 거구요. 아직 정신이 흐릿하게라도 남았을 때 119나 병원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옮겨달라고 부탁을 할 겁니다.”

-병원으로 옮기시다니요?

“나는 이미 20년 전에 시신기증을 연세대병원에 했습니다. 내 사체는 해부학교실로 가게 돼 있습니다. 얼마 전 큰아들 내외를 불러 이런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줬습니다. ‘제사도 지내지 말고 누구한테 알리지도 말라. 가을날 벌판에 핀 들국화나 억새풀을 보면 내 아버지는 들국화를 무척 좋아했는데, 이런 생각이나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선생님께선 90이 넘으셨는데도 강연이나 <아시아엔> 원고 기고, 언론 인터뷰 등 여느 노인들과 다른 삶을 지속하고 계십니다. 비결이 뭔지요?

“60세 정년이 되면 벌써 팍 늙어서 어깨가 축 처져서 지냅니다. 불쌍하기 짝이 없어요. 내가 늙지 않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을 손에서 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는 일이 없으면 사람은 자연히 늙어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나는 아시아엔 전문기자이라는 버젓한 직업이 있습니다. 나는 81살에 황반변성으로 수십년 해오던 대기업 감리 직을 그만두고 직장을 그만두었어요. 하지만 그 이튿날 ‘일을 놓아선 얼마 못 살고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어요. 그래서 옛날 써온 글들을 다시 읽으며 정리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몇 년 후 <아시아엔>에서 나에게 글 쓸 기회를 주었어요. 이걸 보고 출판사에서 찾아와 책도 내게 됐지요. 아시아엔에 실린 내 글을 보고 국립공원관리공단·거창고등학교 같은 곳에서 특강 요청도 들어오고, KBS ‘사람, 사람들’이란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어요.”

-즐겨듣는 음악이 하나 있다고 들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외로운 양치기소년’입니다. 루마니아의 쟘블이 플릇으로 독주하는 현장에서 나는 하염 없는 눈물을 흘렸지요. 제가 마지막 곡기를 끊을 때 이 곡을 연거퍼 들으며 잘 살았다 하며 기꺼이 떠나는 거죠.”

-일은 언제까지 하실 계획이신지요?

“나에겐 죽는 날이 직장을 그만두는 날입니다. 내가 죽는 날이 아시아엔을 떠나는 날이구요. 나는 내가 마지막 가는 날까지 아시아엔에 글을 쓰다 죽는 게 가장 큰 소망입니다.”

이 글을 정리하며 <아시아엔>에 실린 박상설 전문기자의 유언장을 발견했다. 거기엔 이렇게 써있다.

1. 사망 즉시 연세대 의대 해부학교실에 의학 연구용으로 시체를 기증한다.
2. 장례의식은 일체 하지 않는다.
3. 모든 사람에게 사망 소식을 알리지 않는다.
4. 조의, 금품 등 일체를 받지 않는다.
5. 의과대학에서 해부실습 후 의대의 관례에 따라 1년 후에 유골을 화장 처리하여 분말로 산포한다. 이때 가족이나 지인이 참석하지 않는다.
6. 무덤, 유골함, 수목장 등의 흔적을 일체 남기지 않는다.
7. 제사와 위령제 등을 하지 않는다.
8. ‘죽은 자 박상설’을 기리려면 가을, 들국화 언저리에 억새풀 나부끼는 산길을 걸으며 ‘그렇게도 산을 좋아했던 산사람 깐돌이’로 기억해주길 바란다.
9. ‘망자 박상설’이 생전에 치열하게 몸을 굴려 쓴 글 모음과 행적을 대표할 등산화, 배낭, 텐트, 호미, 영정사진 각 1점만을 그가 흙과 뒹굴던 샘골농원에 보존한다.
10. 시신 기증 등록증(등록번호: 10-344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과 02-2228-1663)

박 전문기자는 “가족과는 오래전에 이미 쾌히 합의했고, 사람의 몸은 자기 몸이기도 하지만 생을 끝내면 자연으로 돌아간다”며 이 유언장을 작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세살 때 잃은 오른쪽 눈에 이어 왼쪽 시력도 거의 없지만 ‘점자로라도 글 쓰다 죽는 게 마지막 소망’이라며 그의 끝나지 않은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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