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첫 발간 100주년①] 90살 자연주의자 박상설, 헤르만 헤세 영전에 ‘육필수기’ 바치다

“PC 작업 중에 두번이나 바아러스로 애를 먹었는데 현재도 불안하여 좀 미완의 원고를 보내니 양해하고 정독하여 교정바랍니다. 이런 사정으로 큰 제목이나 중간 제목을 기사화할 수 있게 못 적었습니다. 하도 오래 전에 읽은 책이지만 워낙 제가 헤르만 헤세를 좋아하는 열성 팬이라 힘드는 가운데 신명나게 정리해 봤습니다. 내용이 시사할 점은 많지만 워낙 방대한 헤세의 글이라 미진한 점 양해하여 바쁘더라도 세밀히 교정바랍니다. 특히 독자의 가슴을 울리게 하는 자극적인 중간 중간 제목을 넣어 독자들에게 구미가 당기도록 하였으면 합니다. 사진은 PC 문제로 카카오로 보내겠습니다. 거듭 미안합니다. 박상설 드림.”

한국에서 가장 널리 읽힌 외국 소설을 꼽으라고 하면 아마도 <데미안>이 가장 앞쪽에 놓일 것이다. 중장년층에서는 특히 압도적으로 이 책이 꼽힌다.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데미안>이 올해 출간 100년을 맞는다. <아시아엔>은 이에 맞춰 박상설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께 데미안 독후감을 부탁했다. 올해 91세인 박 전문기자는 한쪽 시력을 어려서 잃은데 이어 3~4년전부터 나머지 한쪽 눈도 거의 실명단계에 놓여 어렵사리 이틀에 걸쳐 독후감을 완성해 보내왔다. 박 전문기자의 독후감을 세차례에 나눠 싣는다. <편집자>

헤르만 헤세와 윤동주

[아시아엔=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 저자, 캠프나비 대표] 헤르만 헤세의 시집이나 소설은 누구나 한번쯤은 펼쳐보았을 것이다. 그의 대작 <데미안>이 올해로 100년을 맞는다. 이 기념비적 헤르만 헤세의 거작을 논하면서 우리의 시성 윤동주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왜일까. 1919년에 데미안이 탄생했고 그 2년 전인 1917년 윤동주 시인이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으니 탄생의 시차는 있지만 동시대의 개화기 문학사조를 조명하며 이 ‘수기’를 쓴다.

필자 박상설. 그는 평생을 자연과 함께 하고 있다.

데미안 100주년을 기념하는 뜻을 담아 이 수기를 헤르만 헤세 영전에 엄숙히 바친다.

시인 윤동주를 저항시인이라 부른다. ‘저항’이란 순수예술의 한 속성이다. 흔히들 저항예술과 순수예술을 이원론(二元論) 적으로 분리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예술이란 그 순수성 자체가 가장 강력한 저항이다. 예술적 창조란 개성의 표현이다. 이 개성이란 곧 타아(他我)와의 조화와 갈등을 동시에 지닌 것이다. 이는 바로 ‘자기 개성’의 모든 반대자에 대한 조화를 위한 저항이 되는 것이며, 이것이 순수예술의 본질이다.

이런 점에서 개화기의 격동하는 세계사관 속에서 헤르만헤세와 윤동주의 문학예술 세계는 맥을 같이하고 있음이 흥미롭다.

내가 데미안을 접하게 된 것은 6·25 전란 후 한창 사회혼란을 겪을 때이다. 여태껏 나를 둘러싼 외부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다 나만의 고유한 내적 세계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할 무렵에 데미안을 만났다. 다시 태어나는 심정으로 윤동주 詩篇과 번갈아가며 탐독했다. 이 세상을 한 인간으로 살아갈 때 외부세계와 마주하는 정황에서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자신에게로 귀착시키는, 내 안에 숨어있는 데미안을 찾는 불꽃으로 피워 올렸다.

헤르만 헤세는 인도와 중국 여행을 통해 불교에 심취하였고 데미안과 가장 잘 어울리는 서양소설에 동양철학이라니? 그는 “다른 누구도 말고 오직 스스로를 등불로 삼으라”고 말한 석가모니 가르침을 교서로 삼았다. 이쯤에서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있는 시인 헤세의 시 한 구절을 읊는다.

자정 후의 한 시간

한밤 자정에 시계소리 산골을 울리고

달은 헐벗고 하늘을 헤매고 있다.

길가에 그리고 눈과 달빛 속에

나는 홀로 내 그림자와 걸어간다.

시계소리 산골에서 자정을 울리고

오, 달은 저 하늘에서 차갑게 웃고 있다.

헤르만 헤세는 1895년 18세 때에 헤켄하우어 서점에 들어가서부터 괴테에 열중한다. 그의 詩作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1899년 ‘낭만적인 노래’ 첫 작품은 시선을 끌지 못했지만 이어 발표된 ‘자정 후의 한 시간’은 동경과 향수, 비애와 우수의 시정을 그려내고 있다. 릴케는 이 작품을 “그의 사랑은 위대하며 그 속에 나타나는 모든 정서는 경건하다”고 칭찬했다.

무명시인이던 헤세는 세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작품 속에서는 용감하고 조금은 감성에 젖은 혁명을 시도하면서 세계와 사회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의지를 통해 시인이 되어가는 한 인간으로 묘사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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