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민·강기정·윤도한 청와대 ‘2기 소통팀’에 바라는 두가지···이해와 공감

노영민 실장 강기정 수석 윤도한 수석(왼쪽부터)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노영민 비서실장, 강기정 정무수석, 윤도한 국민소통수석 등 청와대 진용이 새로 짜였다. 이분들이야말로 대통령과 국민의 가교로 소통의 달인이 돼야 할 분이다. 아낌없는 축하와 함께 큰 기대를 보낸다. 정말 잘 해주시리라 믿는다.

우리 시대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일까? 필자는 사회는 물론 가정과 단체에서도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하면 풀 수 있을까 하는 문제라고 본다. 그 문제는 이해와 공감을 통해서 해소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살면서 많은 일을 겪고도 이해하지 못했던 순간 그리고 공감하려 하지 않았던 일들이 많았다. 쓸데없는 자존심 세우기에 바빴고, 아집(我執)으로 똘똘 뭉친 세월이 너무 아쉽고 후회된다.

영어로 ​‘이해(understand)’란 말 그대로 ‘낮은 곳에(under)’ ‘서는(stand)’ 일이다. 가장 낮은 곳에 서면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없고, 상대방의 고통을 이해하면, 누구와도 공감하게 된다. 이해하면 문제는 풀리기 시작하며 공감(共感)하면 하나가 된다. 바로 내가 상대방보다 한발 낮은 곳에 설 때, 이해와 공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해(理解)는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해 보는 것을 말한다. ‘황금률(Golden Rule)’이라는 것이 있다. 성서(聖書)에 나오는 교훈으로,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라는 도덕원리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이와 같은 인간관계의 황금률을 강조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내게 해로운 것으로 남에게 상처 주지 말라” 했고, 유교에서는 “내가 원치 않은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 했다. 이슬람교에서는 “나를 위하는 만큼 남을 위하지 않는 자는 신앙인이 아니다”라고 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 해결은 이렇게 하면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첫째, 이해다.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 공감이다. 자신과 타인이 한마음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셋째,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뜻이다.

 넷째, 용서(容恕)다.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주는 것이다.

논어(論語) ‘위령공’편에서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평생을 지켜나갈 만한 한마디 말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공자가 답하기를 “그것은 ‘서(恕)’이니,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베풀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다. 용서는 자기의 입장과 남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진정한 용서는 작게는 자신과 상대방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크게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사회 자체가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남을 용서하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한 용서로, 남을 용서함으로써 내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용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누군가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아 화를 내게 되면 그 순간 나에게서 행복은 사라지고 만다. 화는 복수를 부르고, 그 복수의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결국 복수를 행한 자 또한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원효(元曉)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이라는 것이 있다. ‘자기의 견해만 옳다고 해서는 화해와 통합이 불가능하다. 마음을 비워야 화해와 통합이 가능한 것’이라는 사상이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치유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지역과 계층, 이념과 세대, 여야 간의 갈등은 우리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데 큰 걸림돌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말로는 화해와 통합을 외치면서도 행동은 여전히 반목과 갈등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오랜 시간동안 반목과 갈등을 계속해 왔으니 하루아침에 이를 없던 일로 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하지만 정작 화해와 통합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반목과 갈등의 상대가 서로를 탓하며 자기 탓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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