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광운대 학생 노재헌의 꿈 “세계 최초 카멜레온박물관 건립”

22살 광운대생 노재헌(전자공학과 2년)씨는 카멜레온에 푹 빠져 산다.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척추동물, 파충강, 뱀목에 속하며 아시아·아프리카가 원산지로 숲속이나 나무 위에 서식한다. 파리나 귀뚜라미, 나비, 나방 등 육식을 하며 크기는 3~70cm까 다양하다. 몸 색깔을 바꾸는 능력이 탁월해 ‘변신의 귀재’로 불린다.”

카멜레온(Chamaeleon) 얘기다. 22살 광운대생 노재헌(전자공학과 2년)씨는 카멜레온에 푹 빠져 산다. 10월 20~21일 서울 강남역 인근 부띠크모나코에서 열린 ‘세계파충류전시회’에 세계 각국의 카멜레온 200여 마리를 내놓을 정도다.

그는 왜 카멜레온을 기르게 됐을까? “어려서부터 생물에 관심이 많았어요. 5살때쯤부터 <시튼 동물기>나 <파브르 곤충기> 같은 책을 읽었던 것 같아요. 저의 유일한 취미는 식물이나 동물 기르며 번식시키는 거거든요.”

2002년 한일월드컵 때도 TV 앞에 앉아있는 것보다 이런 책 읽는 게 더 재밌고 좋았다고 한다. 삼남매 막내인 그는 어릴 적 성격이 소심하고 자격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 시절 제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것이 열대어와 새 같은 생물이었죠. 이들을 키우면서 우두커니 바라만 봐도 맘이 그렇게 편해질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는 “키우던 생물들이 사육상 부주의나 수명이 다 돼 죽으면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리던 기억도 많다”며 “그러던 중 중학교 1학년 때 카멜레온이라는 파충류를 처음 기르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어린 중학생이 카멜레온을 기르는 건 생각처럼 쉽진 않았다.

“처음 길렀던 카멜레온이 제 잘못으로 몸이 쇠약해지더니 죽더라구요. 얘가 좋아하는 환경이 어떤 건지 잘 몰랐던 겁니다. 내가 좋아한다고 그애들한테 필요한 환경조건은 생각하지도 않고 무작정 키우다 그렇게 된 거죠.”

그는 이 일로 미안한 마음에 죄책감까지 느끼게 됐다고 했다. “아름다운 생물을 저의 이기심의 울타리에 가둔 채 알맞은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게 카멜레온이 죽게된 거거든요. 그때 배운 게 생물 자체가 인간이 기르기 어려운 게 아니라 게으름과 무지함 때문에 사육환경을 제대로 맞춰주지 않은 게 문제란 사실을 깨달았지요.”

‘중학생 노재헌’의 아픈 경험은 그로 하여금 3~4년간 카멜레온을 멀리 하게 만든다. 그러나 카멜레온은 그의 머리와 가슴 속까지 떠나지 않고 있었다. 대학 입학 후 1학년을 마치고 공군에 입대한 지 1년쯤 지난 뒤였다.

“상병이 되던 어느 날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언제였나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카멜레온을 기르던 때였더라구요. 제 추억 속에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고, 제가 가장 좋아하던 게 카멜레온이었더라구요.”

그날로 카멜레온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제대 날이 가깝고, 공군이어서 일과 후 개인시간에 대한 제약이 거의 없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카멜레온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중요한 건 ‘사육의 어려움’이 아니라 ‘사육환경에 대한 정보부재와 잘못된 관리방법’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카멜레온의 서식환경과 식이습성 등에 대해 자료조사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이 살던 아프리카 현지의 환경을 상상하고 느껴보곤 했다”면서 “그러면서 카멜레온의 습성과 좋아하는 생태환경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그뿐 아니다. 인터넷을 통해 카멜레온 관련 외국자료를 검색하고 외국의 카멜레온 사육자와 판매자들에게 궁금한 점을 묻고 또 물었다고 한다. 이렇게 이론적인 뒷받침이 되니 중학시절, 그냥 좋아서 몇 마리 사서 기르다 죽이곤 죄책감에 빠졌을 때와는 전혀 다름 느낌이 들었다. 자신감도 생겼다.

그는 제대 후 본격적으로 카멜레온 사육에 나선다. 나무와 철제를 주문해 사육장을 제작하고 그 안에 카멜레온이 좋아하는 식물들을 함께 심었다. 전기설비와 물공급 및 배수 시스템도 갖췄다. 그리고 나서 해외의 카멜레온 판매처를 알아내 직접 수입해 기르기 시작했다.

“주변에선 수입해온 카멜레온이 못 견뎌 많이 죽을 거라고 걱정해주셨는데, 실제론 단 한마리도 죽지 않고 알을 낳으며 번식도 잘 해주었습니다. 군대에서 사전에 충분히 공부한 덕을 본 거죠. 그때 또하나 확인한 게 바로 물공급이 잘돼야 한다는 거였죠.”

과거 국내에서는 카멜레온 사육 때 물공급 관련 이해가 부족해 사육장 내에 살아있는 식물 대신 나뭇가지를 넣어둔 채 가끔씩 스프레이 분무기로 물을 뿌려줬다. 죽은 나뭇가지에 맺힌 물방울은 곧 말라 카멜레온의 수분섭취가 어려웠던 것이다. 또 열대동물은 카멜레온이 따뜻한 환경을 좋아할 것으로 생각해 사육장 온도를 높여놔 수분증발을 가속화시킨 점도 카멜레온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게 된 원인이었다.

“그때 깨달은 게 카멜레온 사육장에 식물을 많이 넣어 수분을 오래 잡아주고 온도를 낮춰 물 증발을 적게 하는 것이었죠. 또 자동 분무시스템으로 물을 분사해 물공급을 충분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수입이 성공하면서 욕심이 생기더란다. 국내에 한번도 들어온 적이 없는 종류들을 수입해 직접 사육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다양한 종류의 카멜레온을 수입해 대중화해보자는 생각이 그의 머릿 속을 드나들었다.

“이번에도 주변에선 말렸습니다. 그런 종들은 아프리카 야생에서 채집되는 개체라 무사히 공항에 도착하더라도 너무 쉽게 죽고 관리가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사기당할 확률도 매우 높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고, 의지는 뚜렷했지요. 카멜레온 사육에 가장 중요한 점은 물공급이라는 제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수입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약 200마리의 카멜레온을 수입해 도중에 죽는 녀석 없이 사육에 성공했다. 그 가운데는 정말로 키우기 어렵다는 소형종들도, 한쌍에 1000만원이 넘는 것들도 있다. 이들도 알을 낳고 잘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자 여러분들이 제 주장을 믿기 시작하고 인정해주셨습니다. 저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사육하는 게 아닙니다. 카멜레온이라는 생물이 사랑받고 건강하게 길러지고 자라도록 사육 관련 글을 인터넷에 쓰고 싶은 거죠. 수백명, 수천명의 동호인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 해도 기쁩니다.”

그는 “여러 희귀한 카멜레온들을 모으고 그가 고안해낸 사육방법을 통해 카멜레온을 번식시켜 개체를 보존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카멜레온은 두 발이 벙어리장갑처럼 두 갈래로 나뉘어 나무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사람 손이나 팔에 올려놔도 천천히 발을 움직이며 이동하는데 그때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차분하고 온순한 성격에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아름다운 색은 불과 2~3분만 쳐다봐도 그 매력에 금세 빠져듭니다. 정말 신비롭고 멋진 생물입니다. 그래서 제 목표도 조금 거창해요. ‘카멜레온 브리딩센터’를 만들고 세계 최초의 ‘카멜레온박물관’을 세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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