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 5주기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 어록 “불황은 경쟁력 강화의 계기···불굴의 의지로 극복을”

[아시아엔=편집국] 11월 8일은 고 우정 이동찬(牛汀 李東燦)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별세 5주기가 되는 날이다. ‘이상은 높게, 눈은 아래로’를 늘 강조한 그는 목표를 향하는 등산식 경영과 아래를 살피는 공동체 책임을 경영철학의 중심에 뒀다. 1947년부터 신은 가죽 슬리퍼를 50년간 신었다. 비서실에서 슬리퍼를 새것으로 바꿨다가 야단을 맞고 쓰레기통에서 찾아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10년 넘게 입은 맨스타 트렌치코트, 등산갈 때 타던 9인승 승합차가 고인의 생활을 보여줬다고 코오롱 사람들은 기억한다. 그는 산업화 격변기를 거치며 대한민국의 화학섬유산업의 최선두에서 의생활 혁명을 일으킨 장본인이며 개척자였다. 고 이동찬 회장이 남긴 어록을 다시 읽어본다. <편집자>

*평사원은 크리스마스트리에 매달린 작은 전구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주임이 되고 대리가 되면 작은 전구여서 되겠느냐. 전구는 올라갈수록 촉수를 더해야 주위를 밝힐 수 있다.(1977년 승격자 사령장 수여식)

미수(米壽. 88세)를 맞아 2009년 4월 2~6일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며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한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사진=코오롱그룹)

*기업은 나 개인의 것이 아니다. 종업원 모두의 사회생활의 터전이며 원천인 것이다. 기업의 부실은 사회에 대한 배신이며 배임이다.(1981년 KBS 방송강연)

*불황은 기업으로 하여금 호황 때보다 더 큰 번영을 가져오게 하는 경쟁력 강화의 계기가 되는 것이니 모든 사원은 합심하여 불굴의 의지와 인내로 슬기롭게 이를 극복해야 한다.

*현상유지란 퇴보와 일치되는 개념이다. 혁신적 사고로써 창의력을 발휘하여 어려운 경영여건의 탁류를 헤어날 수 있는 집념이 요구된다.

*기업가는 우선 종업원과 그들의 가족을 생각해야 되고 일반 소비대중도 생각해야 되며 나아가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기업의 사회성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기업의 사회봉사정신이야말로 오늘날 한국적 사회풍토에서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기업가의 윤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수익이 부진한 원인을 불황이나 자금부족에 전가하는 안이한 버릇을 버리고, 계수를 정확히 분석하고 예측함으로써 흑자를 내는 여건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자세의 차이가 잘하는 회사와 못하는 회사를 구분하는 요소가 된다.(이상 1982년 자서전 <이상은 높게, 눈은 아래로>)

*나의 신념은 한 마디로 ‘기업은 곧 사람이다’라는 것이다. 지금은 기업이 사회 다른 분야로부터 인재를 스카우트해오던 과거의 달리 기업 내에서 양성된 인재들이 사회 각 분야로 진출해 활약해야 하는 시대이다.(1982년 한국경영학회 강연)

*남이 장에 간다고 거름지고 장에 간다는 속담 식으로 어떤 업종이 호황을 이룬다고 무턱대고 뛰어드는 방식은 지양돼야 한다(1986년 고려대 경영대학원 초청 강연)

*기업은 국가경제의 주체이며 사회발전의 원천이고 직장인의 생활터전입니다. 후손에게 풍요로운 정신적·물질적 유산을 남겨놓아야 한다는 건 기업가의 사명입니다.(1987년 중앙대 정경대학 강연)

*노도 없고 사도 없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존경하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며, 대우도 좋고 임금과 생산성도 높아서 직원들이 노조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 회사가 가장 바람직한 회사.(1989년 8월 코오롱 구미공장 서바이벌 보고 대회 특강)

*절대 무리하지 않고 분수에 맞는 경영을 펴왔으며 이상은 높게 갖되 겸허한 자세로 이를 정복해 나가는 등산식 경영과 목표를 향해 쉼 없이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해가는 마라톤식 경영으로 코오롱을 이끌어왔다(1991년 리쿠르트 인터뷰)

*마음의 평안과 건강 유지를 위해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해왔지만 배낭을 메고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마음에 비춰진 자연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 것이야말로 나의 최고 여가.(1992년 자서전 <벌기보다 쓰기가 살기보다 죽기가>)

*마라톤은 일정한 페이스를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 사업에서 신속하고 과감한 결정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전체 흐름 속에 모든 요인을 놓치지 않는 게 훨씬 중요한 일이다. 마라톤이 그런 가르침을 주곤 했다.(1992년 황영조 올림픽 금메달 축하만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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