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남북통일의 ‘최고 기반’···올해 세종 즉위 600주년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금년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 되는 해다. 태종이 후계로 장자 양녕이 아니고 셋째인 충녕을 선택한 것은 건국 초기인 조선의 국운을 반석에 앉히려는 결단이었다. 세자를 충녕에 양보한 양녕의 아량도 돋보인다.

세종대왕의 업적 가운데 으뜸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한글 창제다. 신임했던 집현전 학자 최만리의 반대가 있었던 이 작업에 세종 자신이 직접 참여했다. 한글 창제로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독자의 문자를 갖게 되어 민족적 정체성이 정립되었다. 앞으로 남북통일의 기반이 될 것이 틀림없다.

둘째는 김종서와 최윤덕에 의한 4군 6진의 개척이다. 이로써 신라 흥무대왕이 당을 몰아낸 이래 국토가 정리되었다. 남북통일이 되어도 을사늑약으로 일본이 중국에 넘긴 간도를 제외하고는 이 판도가 기본이 될 것이다.

셋째 법전을 정비하였다. 법은 통치수단이 아니라 백성의 생활규범이 되어야 하므로 백성의 믿음과 뜻에 들어맞아야 한다는 기본정신을 강조했다. 이러한 뜻을 받들어 국초의 <경세대전>과 <속육전> 등을 기초로 황희 등이 완성한 <신찬경제속육전>(新撰經濟續六典) 등은 후일 경국대전의 모체가 되었다.

넷째는 광범위한 편찬사업이다. 이는 명의 영락제가 이룩한 사서대전, 오경대전, 청의 강희제가 만든 강희자전에 비길 수 있는 업적이다. 그 범위는 마치 오늘날 민족문화백과사전과 같이 광범위하다.

세종은 또 독자적인 조선의 의례를 완성하고 궁중의식인 아악을 집대성하였으며, 발달한 이슬람 曆法을 도입하고 장영실의 혼천의, 자격루 그리고 앙부일구 등의 발명에 힘입은 역법을 정비하였다.

세종이라는 왕명은 중국에서도 쓰였다. 대표적으로 청의 세종 옹정제다. 성조 강희제(聖祖 康熙帝)가 최초로 산해관을 넘어 중국에 들어와 삼번을 평정하고 중국을 장악했다면, 세종 옹정제(世宗 雍正帝)는 중국의 내적 통일을 완성하여 세종으로 추존되었다.

우리나라는 2007년 최초의 이지스함을 세종대왕함으로 명명했다. 세종대왕함은 현재 세계 최강으로 평가되고 있는 구축함이다. 이 외에도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세종특별자치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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