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혼돈과 위기의 악순환 ‘엔트로피’···리프킨 “세계관 확 바꿔야 개선돼”

[아시아엔=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캠프나비 대표] ‘엔트로피’(Entropy)에 대하여 자연과학과 인문학적 지성으로 새로운 세계관인 우주와 인간에 대한 퍼즐게임을 함께 풀어보자.

우주와 자연, 생명의 신비 그리고 우주창조주에 대하여 생각하며 실타래를 풀어가자. 경이로운 세상만물의 존재에 대하여 인간은 경외심으로 인도주의를 통섭하여 삶의 전환점을 찾는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사의 모든 재액(災厄)은 ‘엔트로피’가 근원적 주범이다.

엔트로피란 용어가 처음 나온 것은 1865년 독일 물리학자 클라우시우스에 의해서다. 그 후 1877년 보츠만은 통계학적 기본식을 이용해 엔트로피의 물량을 열역학 학술공식으로 발표했다. 이어 톰슨은 에너지 발산의 법칙과 지구의 냉각이론을 들어 지구가 언젠가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상태로 될 것임을 시사했다. 태양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거대한 열에너지를 매일 발산하여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미국의 문명비평가 제레미 리프킨은 엔트로피로 인해 에너지를 쓴 만큼 인류는 벌금을 내야하고 종국에는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의 <유럽피언 드림>을 보면 엔트로피를 통하여 이룩한 서구 산업사회의 전성기는 끝났다. 그는 엔트로피 재해가 적은 자연친화적인 아시아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진단한다.

사람들은 엔트로피와 공감사회를 잘 구분하지 못하면서 이를 걱정하지 않는 반면 에너지와 엔트로피는 잘 구분하면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구상 인간이 만든 모든 사물은 열 즉 에너지를 이용해서 만들었다. 쌀 한 톨, 물 한 방울, 바늘 한 개, 휴지 한줌 그 어는 것도 에너지를 이용해 만들어졌다. 그러니 산업 현장을 시작으로 건설, 영농, 교통, 학교, 직장, 군대, 가정 등에서 에너지를 이용하고 폐기하는 공해물량은 천문학적 수치다. 그 살인적인 공해 화학물질을 열역학적 표기용어로 ‘엔트로피’라고 한다.

인류에게는 손짓 몸짓 냄새가 언어였던 한가로운 시대도 있었다. 문화와 감성의 발달로 공감사회의 이기적 문명을 거치면서 인간은 숱한 낭비와 이에 따른 부작용이 엄청났다. .

톰슨이나 리프킨 등의 엔트로피 원전을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엔트로피 이론은 그만치 심오하고 난해하다. 때문에 원전에 충실하되 엔트로피를 잘 모르는 독자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허구와 사실을 넘나들며 그 경계선을 무너트린다. 엔트로피를 공부함으로서 삶의 방식을 바르게 변화시킬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한다.

권력을 쥔 기득권자, 학자 그리고 경영자들은 개척과 발전이라는 발칙한 상상력으로 경쟁을 부추기며 우주의 질서를 파괴했다.

엔트로피 법칙이란 무엇인가? 물리학에서 말하는 열역학 제2법칙이다. 엔트로피 법칙인 제2법칙은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변화한다고 규정한다. 즉 유용한 상태에서 무용한 상태로 획득 가능한 상태에서 획득 불가능한 상태로, 질서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만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게 제2법칙이 의미하는 본질이다.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일정한 구조와 가치로 시작해서 무질서한 혼돈과 낭비의 상태로 나아가며 이 방향을 거꾸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엔트로피란 우주 내 어떤 시스템에 존재하는 유용한 에너지가 무용한 형태로 바뀌는 공해의 정도를 재는 척도다.

엔트로피 법칙에 따르면 지구상이든 우주든 어디서나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더 큰 무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열역학 제1법칙은 우주 안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불변하며, 따라서 창조될 수도 없다. 단지 그 형태만 바뀔 뿐이다.

이제 어느 정도 엔트로피가 이해됐을 것이다. 알듯 모를듯 헛갈린다. 나의 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나? 잘 모르겠다. “당신은 톨스토이를 아십니까?”라고 묻는다면 그 질문한 사람에게 얼굴을 붉히며 불쾌히 생각할 것이다. 모욕을 당한 것같이 생각하는 그 사람에게 “열역학 제2법칙을 아십니까?”라고 질문하면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손사래를 치는 화이트컬러가 의외로 많다.

어떤 면에서는 문학가 이름은 몰라도 이 시대에 살면서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는 알아야 한다. 이 시대는 高에너지 시대로 인간의 마음은 조각났고 삶의 뿌리가 거덜날 지경에 이르렀다.

산업혁명 이후 줄곧 고속화·대형화·고도산업화·사치화· 편리성만을 추구하며 달려왔다. 고에너지 산업화는 인류가 쌓아올린 또 하나의 돌이킬 수 없는 바벨탑이 됐다. 40년마다 세계인구는 두배로 늘어나니 그들이 먹고 활동하며 소비할 에너지의 엔트로피로 지구는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에딩턴은 엔트로피 법칙을 자연계의 최고법칙이라며 ‘시간의 화살’(Time Arrow)이라 불렀다. 아인슈타인은 ‘붕괴되지 않을 유일한 고전열역학의 물리법칙’이라고 했다. 리프킨은 엔트로피 법칙이 물리학뿐 아니라 ‘세상만사의 모든 본질적 깨우침의 철학’이라고 알려준다.

초동학생도 이해할 정도로 엔트로피 법칙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한번 달구어진 쇠 파이프는 식으면 다시 열에 달구지 않고는 제 스스로는 달구어지지 않는다. 열은 고열에서 저열 쪽으로만 이동하고 그 반대로는 절대로 이동 못 한다. 엎질러진 물은 제 스스로는 다시 담아지지 않는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은 제 스스로 거슬러 원래 높은 곳으로 못 간다.

석탄이나 나무 한 조각 태우면 연기, 재, 탄산가스, 아황산가스 등이 발생하고 그 타고남은 물질은 절대로 원상복구가 안 된다. 열을 가한다는 것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다. 자동차를 시작으로 헤아릴 수 없는 엔트로피 증가 괴물로 지구는 아우성이다.

엔트로피 법칙은 불가역(不可逆)의 철학이다. 우주 안에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자연을 포함해 모든 사물은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영원히 되돌아올 수는 없다. 자동차 연료를 시작으로 라면 한 봉지 만드는데 소모되는 에너지를 포함해 선박·비행기·기차 그리고 모든 생산공장에서 방출하는 에너지와 각 가정에서 쓰는 에너지 등 이 모든 에너지 소모에서 발생하는 엔트로피가 지구의 인력권 안에 갇혀 대기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지구의 포로로 잡혀있다.

이제 감옥은 따로 없다. 적도가 뿜는 열사와 엔트로피 망에 겹겹이 갇힌 가련한 인간들…. 어디 그뿐인가? 식물은 말라 타들어가고 닭·돼지는 허덕이며 죽고, 양어장 물고기는 허옇게 떠있고, 수박 한 덩이에 1만원 하던 게 2만5천원 하고, 배추한포기에 8천원이다. 호박 오이 밭을 갈아엎고 하늘을 우러러 보며 땅을 친다. 식당은 텅텅 비고 그래도 철없는 시민들은 물장구치며 엔트로피는 아랑곳 없다. 할 말은 아니지만 감옥에 있는 사람이 상팔자 일 수도 있다.

이제 사계절의 의미는 없어졌다. 1994년에는 대가뭄과의 전쟁이었고 2018년은 대폭염과 전력과의 싸움이었다.

<아시아엔> 독자 여러분. 우리는 무릎 꿇고 자괴하여야 한다. 엔트로피의 피해는 이런 것만이 아니다.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의 문제다. 어느 지방단체장이 겨울 빙어축제를 열었다고 치자. 몇 만명이 모여든 차량기름 값은 고사하고 그 차량에서 방출된 엔트로피와 먹고 자고 쓰레기를 버린 엔트로피의 해악과 그 행사에서 얻는 형이상학적 고품위의 가치는 무엇인가? 그냥 먹고 잡담으로 지새우는 놀이한마당을 도처애서 보며 한숨짓는다.

엔트로피의 해악으로 여기 기술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글을 쓰는 하나하나 속에 엔트로피를 생산하는 근원이 그곳에 있다. 즉 동해안을 왕복하며 엔트로피를 길 위에 뿌린다. 어디 그 뿐인가. 권력층의 갑질 한마디에 1000그루의 소나무가 베어진다. 그의 입에서 한 컵도 안되는 탄산가스와 함께 튀어나온 말한마디에 1000그루의 소나무가 주는 산소를 맞바꾼 꼴이다. 이를 ‘감성의 엔트로피’라고 필자는 이름 지었다.

인간들이 지각없이 벌이는 감성의 엔트로피는 올 여름 찜통폭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사회를 휘졌고 있다.

리프킨의 <엔트로피> 서론을 인용하며 마친다.

“세상은 갈수록 엔트로피로 인해 혼돈의 와중에서 헤매고 있다. 어떤 일도 엔트로피와 상관없는 문제는 없다.(중략)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진다. 관련된 사람 모두들 힘을 합쳐도 사태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정치적 지도자나 사상가 어느 개인이 이 만연된 문제를 풀 수는 없다. 붕괴로 몰고 가는 냉혹한 엔트로피의 힘이 세계를 좀 먹고 있는 지금 우리는 현존하는 세계관을 바꾸어야 한다. 세상을 병들게 하고 모든 것을 오염시키는 주범은 엔트로피를 마구잡이로 발생시키는 고질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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