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군·소련 강제노역·인민군이었다”···옛소련 억류피해자 김학범 선생 영전에

생전의 김학범 선생. 한많은 그의 삶이 남과북 유족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앞날에 ‘자유와 평화’를 가져다주리라 믿는다.

일제 징병, 그리고 해방후 소련 억류 피해자 모임 ‘삭풍회’ 김학범(1924~2018) 잠들다?

[아시아엔=문용식 ‘2차대전 후 옛소련 억류피해자’ 유족] 해방 후 영하 50도의 시베리아수용소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참혹한 포로생활을 했던 ‘삭풍회’ 회원 김학범 선생께서 지난 7월 6일 새벽 3시 향년 94세로 타계하셨다.

고인은 황해도 장연군 용현면 출신으로 일본 제국주의 말기인 1945년 6월 징병되어 중국 하이라얼(현 내몽고 자치구의 도시)에서 두달 뒤 일왕이 연합국에 항복하자, 귀국행 열차에 오르는 대신 소련군 포로가 되었다.

시베리아 중부지역 ‘크라스노 야르스크’에 이송된 선생은 그곳에서 3년 4개월간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1949년 2월 꿈에도 그리던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미소의 패권경쟁은 한반도를 38선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갈라버렸다. 이념이 충돌하고, 접경지역은 수시로 총격전이 일어나며 전쟁 직전 폭풍전야였다.

6.25전쟁이 발발하며 고인은 고향에서 다시 인민군에 징병되어 전선이 남하하자 남쪽으로 이동 중에 국군에 포로가 되었다. 또 다시 전쟁포로가 된 고인은 거제도수용소로 이송되어 3년간 포로생활을 해야 했다.

1953년 6월 연합군과 공산군의 일방적인 휴전협정 진행에 반발한 한국정부는 양측 진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수만명의 반공포로를 탈출시켰다. 고인도 이때 ‘반공포로’ 신분으로 거제도수용소에서 석방됐다.

갓 20세가 된 청년은 일본제국주의와 전후 냉전의 희생양이 된 김학범 선생. 선생은 자신의 의지와 아무 상관없이 총 한번 쏘지 못하고 역사의 소용돌이에 묻혀 6년이 넘는 시간을 소련과 한국의 포로로 살아야 했다.

오랜 포로생활로 만신창이가 된 고인은 북에 남겨둔 처와 자식들과 생이별 하고 남한에서는 신분상 제약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전북 진안에서 숯을 가마에 구워 생계를 꾸리던 그는 다시 전남 무안으로 거처를 옮겨 화전민으로 살아야 했다. 남한에서 결혼한 부인과 사이에 자식이 태어나자 대전으로 이사해 타계하기 전까지 살았다.

고인은 2016년 8월15일 MBC에서 방영한 광복절 특집스페셜 ‘아버지와 나-1945’에 출연했다. 고인은 방송에서 “포로생활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일본은 잘사는 나라인데 일본정부의 옹졸한 처사가 너무 야속했다”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나도 TV를 보는 내내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다.

선생은 가셨지만 고인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일본은 여지껏 보상은커녕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기구한 역사 속에서 한 많은 삶을 살다간 고인 앞에 삼가 이 글을 올린다. 고인이 내게 말씀을 걸어오는 듯하다.

“용식이 자네 아버님도 나처럼 일제때 강제징병을 갔다가 해방된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소련에 억류돼 강제 노역을 했지. 일본은 물론 한국정부도 나 몰라라 하는데 자네가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며 우리 ‘삭풍회’ 동지들의 억울한 삶을 세상에 드러내주어 뭐라 감사를 해야 할 지 모르겠네. 저 세상에 가서 자네 부친 문순남 선생을 만나 밀린 얘기 많이 나누겠네. 잘 있게나.”

2 comments

  1. 재작년 우연히 삭풍회에 대해 알게되었습니다 저는 이제서야 대학생이 된 무능력한 사람이라 sns로 예능pd분들한테 혹시 이런 사건은 알고계시냐면서 쪽지 보내는것밖에 하지못했어요 당시 무한도전에 군함도,우토로 마을 얘기가 나오면서 네이버가 도배 되었었거든요..
    제 기억상으로 그때는 ebs 특별기획 말고는 기사가 없었던것같은데 새로운 글들이 많아져서 몽땅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사 보고 울었어요 그간 알지못해서, 도와드리지못해서, 알고 난후에도 잊고지내서, 여전히 아무것도 도와드릴수 없어서 죄송합니다
    관련된 일을 하고싶어서 여러가지로 공부하고있습니다
    제가 나이가 좀만 더 많았더라면 지금쯤 작은 도움이라도 드릴수 있었을텐데 할수있는게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 쓰는것밖에는 없네요
    제가 정말 큰 어른이 되고 난 후에는 반드시 무언가 해내겠습니다 그 전까지 다시는 잊지않고 마음속에 새기고 있을게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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