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살에 부인과 ‘해혼’ 마하트마 간디 이후 행적은?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해혼(解婚)이란 말은 인도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서른일곱 살에 아내에게 해혼식(解婚式)을 제안했고, 아내는 많은 고민을 하다가 해혼에 동의했다. 그 해혼을 성사시킨 후에야 간디는 고행의 길을 떠났다.

혼인이 부부의 연을 맺어주는 것이라면, 해혼은 혼인 관계를 풀어주는 것이다. 해혼은 부부가 불화로 갈라서는 이혼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해혼은 하나의 과정을 마무리하고 자유로워진다는 뜻이 많다.

인도에서는 오래전부터 해혼문화가 있었다. 해혼이란 부부가 자식들 키우며 열심히 살다가 자녀가 결혼하면 각자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꽤 오래 전 인도의 타지마할을 다녀온 적이 있다. 타지마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라고 한다.

인도 무굴제국의 황제 샤자한이 사랑하는 아내 뭄타즈가 세상을 떠나자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22년간 지었다. 묘지가 아니라 대리석으로 빛나는 천상의 궁전 같다.

샤자한과 그의 아내 뭄타즈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인도에서는 이생과 내세(來世)가 둘이 아니었다. 도대체 어떤 인연이기에 죽은 아내를 떠나보내는데 그토록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 아내와 함께 묻힐 묘지를 짓는 데 평생을 바치는 황제의 사랑이 참으로 대단하다. 타지마할 인근에 ‘간디 아쉬람’이 있다.

‘간디 아쉬람’은 마하트마 간디가 독립운동 본부로 이용하며 거주했던 곳이다. 1915년 5월 간디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생활공동체’인 아쉬람을 세웠다. 그리고 1917년 7월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간디의 비폭력 운동이 탄생한 이곳은 1930년 3월12일 시작된 ‘소금행진’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필자는 거기서 간디의 해혼 이야기를 들었다. 인도에서 해혼은 그리 낯선 문화가 아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결혼의 굴레를 풀어주고, 자유인이 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샤자한과 뭄타즈처럼 영원한 사랑의 원형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해혼식을 하고 자유인으로 사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인도는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힌두의 땅이고, 브라만의 땅이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문화적·종교적으로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의미다. 그들이야말로 인도문화의 정수인 명상수행이 삶이 될 수 있는 자유로운 계층이다. 브라만의 아이들은 어린 시절에는 충분히 배우고, 청년이 되면 좋은 가문의 배우자를 만나 혼인을 한다.

부모가 그랬고, 조상들이 그랬듯이 그들은 가정을 충실히 꾸린다. 돈을 벌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브라만 계급에 맞게 잘 교육해 혼인까지 시킨다. 자식이 혼인하면 자연스럽게 평생 동반자로 살아온 배우자와 해혼을 해도 되는 것이다.

간디의 해혼식은 머리 좋은 사람의 기발한 착상이 아니라 인도문화가 용인하는 것이었다. 인도인들이 ‘해혼식’이라는 형식이 필요했던 것은 그것이 결혼식만큼이나 의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남편으로서, 아내로서의 의무를 끝내고, 자유인으로 돌아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겠다는 의지를 낸 사람의 삶은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브라만의 남자들은 해혼 후 대부분 숲으로 들어가 수행을 한다. 죽음이 멀지 않은 나이 든 한 인간으로서 죽음을 마주하며 삶과 죽음의 의미를 반추(反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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