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살 청년] 오대산 샘골에 ‘외로운 양치기 소년’ 울려퍼지고

[아시아엔=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캠프나비 대표] 2018년 상반기를 마무리하는 30일 낮, 장마비가 오락가락 하는 경기도 양주 조그만 내 아파트에 낯선이 7명이 찾아왔다. 안산시청 지역사회과 직원들과 시 산하단체 직원들이다. 그들은 제종길 전 시장이 지은 책과 난 화분 선물이 손에 들려 있었다.

90이 넘은 노인이 혼자 사는 집을 찾아온 손님들은 해가 질 무렵에야 떠났다. 나는 그들에게 홍천 오대산 600고지의 샘골생활과 러시아 ‘다차’ 그리고 ‘비우고 떠나는 삶’에 대해 나지막히 설명해줬다.

저녁 7시쯤 집을 나서는 그들에게 나는 희망을 보았다.
‘공직에 있는 이들이, 휴일 반나절이나 시간을 내다니···. 무엇보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에 공감하다니, 아니 그들은 바로 생각을 실천해낼 수 있는 조직과 예산 그리고 인력을 갖고 있는 공무원들 아닌가?’

나는 일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어갔다.

홍천 오대산 600고지 샘골 캠프나비 <사진 박상설>

늙은 홀로의 삶을 위한 음악!

주말농원 샘골에서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봅니다.

한가롭게 책을 폅니다.
끊겼다 이어질 듯 가냘픈 들릴까 말까 하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뒤적입니다.

없으면 못 살 정도로 좋아하는 클래식과 집시의 팝입니다.

마이스키가 첼로로 연주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와 팬플루트의 제왕 루마니아의 잠피르가 연주한 ‘외로운 양치기 소년’이 주곡입니다.

트로이메라이는 어린 시절의 꿈으로 알려진 곡으로, 눈물 짓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로 서정적이며 감미롭게 마음을 파고듭니다.

이 곡은 내가 언젠가 이 세상을 뜰 때 연거푸 들으며 조용히 사라질 음률로 정해 놓은 장송곡입니다.

슈만은 정신착란병을 앓아 환상과 공상을 오가며 작곡에 몰입하다 마흔여섯에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트로이메라이, 이 곡을 꿈이라고도 합니다. 이 세상을 꿈속에서 헤매다 떠나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오지를 떠돌고 극지를 헤매며 길 위의 집시로 살아온 늙은 캠퍼의 메아리입니다.

‘외로운 양치기 소년’을 좋아하게 된 동기는 20여년전 동경의 신주구에서입니다. 도시의 황혼이 저물어 갈 무렵 칠레에서 온 뜨내기 악사 네명이 플룻으로 남미의 잉카음악을 구슬프게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배낭 위에 앉아 깊은 애수에 잠겨, 나도 모르게 하염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곤 혼잡한 길 위의 집시로 나앉은 행복에 젖어 울먹였습니다.

그 곡이 ‘외로운 양치기 소년’입니다.

코 눈물에 젖어 어두워지는 도심 하늘을 초점 없이 바라보는데, 한 여인이 슬픈 눈빛으로 내게 여행자냐며 속삭이듯 물어왔습니다.

순간적으로 자연스레 의기투합하여 그 일본여인과 우에노공원 벤치에 앉게 됐습니다. 우리는 일본문학과 세계문학을 줄다리기하며 밤을 하얗게 지새웠습니다.

‘외로운 양치기 소년’ 덕분에 그 여인과는 지금까지도 소식을 주고받는 인문학 동행 친구가 되었습니다.

인문학과 클래식 음악은 나를 상업주의 문화의 거품과 포퓰리즘에 물들지 않게 구출해주고 있습니다. 조악하고 혐오스런 속세에서 구해주는 유일한 구세주입니다.

인적 끊긴 골짜기 계곡 물소리와 바람소리 새소리···.
어떤 거리낌도 없이 나는 세상과 달리하고 사는 아나키입니다.
여기까지 읽다가 나는 다시 읊조립니다. 제목도 없고 운율도 맞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내 온몸을 타고 나오는 ‘나’이기에 나는 더욱 좋습니다.

 

내가 사는 고장은
생의 맨 아래 언저리
길 위의 노매드.

깐돌이를 형상화한 50년 된 수제 등산화
그리고 까만 고무신
길 없는 길 헤매는 시간 밖 자유인

마냥 흙에 뒹굴어야 살아나는 천덕꾸러기,
여한 없는 맑은 가난.

눈물이 나도록 살아온 나
살고 싶은 나날로 엮어온 나
이리도 많던 나날
이제 시간에 저항하고
앞서갈 기력 없어도
굳센 생명력으로 슬퍼하지 않아

머지않아 깐돌이 없는 날
신 두 켤레 너머에 보이는
그는 영원한 안식으로 쉬게
되리라

오늘도 걷고
내일도 걸으며
길섶 나팔꽃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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