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월드컵] ‘통쾌한 반란···호날두는 어떻게 스타가 되었나?

“스웨덴에 패했지만 한국대표팀 잘 싸웠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나는 젊은 시절 한때 권투프로모터를 한 적이 있다. 그 중에 아주 기억에 남는 시합 중의 하나가 일본복싱의 불세출의 영웅 구시켄 요코(63)와 우리나라의 김용현 선수와의 WBA 주니어 플라이급 세계타이틀매치였다. 오사카에서 벌어진 이 타이틀매치는 실로 통쾌한 반란이었다.

당시에는 권투가 가장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세계타이틀매치를 할 때마다 흥행은 최고를 기록했다. 당시 한국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 김용현 선수와 구시켄 요코의 대전은 누가 보아도 김 선수의 열세였다. 그런데 도쿄를 거쳐 오사카에 입성한 김용현 선수가 연습을 안 하는 것이었다. 기자들이 안달하는데도 마스크를 쓰고 감기가 걸렸다고 연막을 쳤다. 그리고는 몰래 호텔방에서 침대를 밀쳐놓고 맹연습을 했다.

시합을 이틀 앞두고 오사카 다이니치백화점에서 화려한 공개스파링이 펼쳐졌다. 먼저 링 위에 올라선 김용현 선수는 비실비실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반면에 구시켄 요코의 몸놀림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언론에서는 한마디로 김 선수가 한주먹거리도 안 된다는 예상을 실었다.

오사카체육관에서 구시켄 요코와 김용현의 15회전 타이틀 매치의 막이 올랐다. 1회전 공이 울리자 예상과는 달리 김용현 선수는 마치 불 맞은 너구리처럼 구시켄에게 달려들었다. 적잖이 당황한 구시켄요코도 사력을 다해 싸웠고, 김용현 선수는 15회 판정으로 지고 말았다. 나는 그 시합만큼 멋진 시합은 보지 못했다. 구시켄 요코는 손 등이 부러지는 상처를 입고 승리했으나 그야말로 유감없는 타이틀매치였다.

어제 밤 우리나라와 스웨덴과의 월드컵 경기가 펼쳐졌다. 누가 보아도 우리 팀이 열세라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왕년의 김용현 선수가 그랬듯이 통쾌한 반란을 이루었다. 2002년 광화문 네거리에서 얼굴에 태극기를 그려놓고 온 가족이 응원하던 기억이 새롭다. 어제 밤도 우리 식구는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시합 전, 스웨덴 언론은 스웨덴 대표팀이 F조에서 한국을 가장 쉬운 상대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오히려 자만심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시합 전에 우리 신태용 감독은 베이스캠프에서 마무리 훈련이 생각보다 잘 이뤄져 선수들의 자신감이 상승했다고 말했다. 자고 나면 대이변이 속출하고 있는 이번 월드컵에서 대표팀은 잘 싸우고도 지는 불운을 겪었다.

이번 러시아월드컵에서 우승후보인 포르투갈과 스페인과의 결전에서 세계적인 스타 호날두가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호날두는 위대한 축구선수다. 호날두는 이렇게 말했다. “어릴 적부터 가난이 너무나 싫었지만 도망치고 또 도망쳐도 결국 가난은 나를 잡아먹었다. 나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면 나는 너무 두려웠다. 형은 마약중독자였다. 형은 약에 취해 삶에 의욕도 없었다.”

“가난한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은 청소부 일을 하는 우리 어머니였다. 청소부 일을 하는 어머니가 난 너무 부끄러웠다. 어느 날, 빈민가 놀이터에서 혼자 흙장난을 치던 나는 멀리서 축구를 하는 동네 친구들을 보았다. 내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나를 축구에 껴주지는 않았지만 원망하지는 않았다.”

호날두는 우연히 날아온 축구공을 찼을 때, 태어나 처음으로 기쁨을 넘어선 희열을 느꼈다고 했다. “어머니, 저도 축구를 하고 싶어요. 축구팀에 보내주세요.” 철없는 아들의 부탁에 어머니는 당황했다. 자신들의 형편으로는 비싼 축구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꿈을 무시할 수 없었고, 이곳저곳 팀을 알아봐 주었다.

겨우 팀에 들어올 수 있었던 호날두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패스 한번 받지 못하고 조명이 꺼지고 모두가 돌아간 뒤에 혼자 남아 축구공을 닦아야 했다. 낡은 축구화를 수선하며 축구를 하던 호날두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호날두는 어릴 적부터 정상인보다 두 배는 빠르게 심장이 뛰는 질병이 있었다. 이것 때문에 앞으로 운동선수를 할 수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다행히 수술을 하고 재활치료를 하면 정상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호전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너무 가난했다. 값비싼 수술비를 지불할 수 없었다. 호날두의 소식을 들은 아버지와 형은 수술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취직을 하였고, 마침내 일년 후 호날두는 온 가족이 모은 돈으로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재활을 마친 호날두는 더욱 더 훈련에 강도를 높였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호날두는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자신은 다른 리그 축구팀 감독이라고 하면서 호날두를 이적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호날두는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니, 그것은 전율이었다. 그곳은 세계 최고의 구단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호날두에게 직접 전화를 건 사람은 최고의 축구감독이라 평가받는 퍼거슨 감독이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탄생된 순간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현재 최고 몸값의 축구선수가 되었다. 호날두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가 한 해 기부하는 금액은 한국인 5천만이 한해 기부하는 금액보다 많다고 한다. 공익을 위하는 광고는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출연하며, 소말리아에 300억 기부와 자기 팬의 수술비 전액을 지원해 주었으며, 아동질병 퇴치와 아동 구호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어제 밤에 한국축구는 지기는 했지만 ‘통쾌한 반란’을 이룩했다. 아예 내친김에 다음 시합은 16강, 8강을 지나 그 옛날 서울월드컵의 영광을 재현하길 바란다. 아울러 호날두 같이 전 세계의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베푸는 아름다운 선수도 많이 나오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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