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조오현의 선시조⑪] 신흥사서 49재···큰스님 떠나다

‘평등·평화’ 껴안은 ‘대자유인’의 세상을 열다

[아시아엔=배우식 시인] 깨달음은 나를 부러뜨리고 지우고 나를 썩히고 비우는 데서부터 또한 시작된다. “속은 으레껏 썩고/곧은 가지들은 다 부러져야”(「고목 소리」) 나는 “가진 것 하나 없어도 나도 웃는 허수아비”(「허수아비」)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신의 속을 다 비울 때라야 “새떼가 날아가도 손 흔들어주고/사람이 지나가도 손 흔들어주는”(「허수아비」) 무욕과 해탈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다. 자기를 버리고 비울 때라야 비로소 연기의 진리를 알 수 있고 이타의 시선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바라본다. 이런 것들이 조오현 선시조를 이루는 구성원리로 작동한다. 깨친 자만이 이룰 수 있는 경지를 보인 것이 큰 특징이기도 하다.

또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돈오몰입의 화두선시조’다. 조사선의 유명한 화두에 기대어 분별심을 가로막아서 분별망상 등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분별망상이 활동할 수 없는 곳에서 깨달음은 일어난다. 화두는 다른 말로는 “화칙(話則), 고칙(古則), 공안(公案)”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깨달음으로 가는 지름길로, 언어의 논리를 뛰어넘어 절명(絶命)의 경지까지 몰아 돈오(頓悟)의 순간으로 이끄는 방편이다.

조오현은 무의자혜심과 경허의 화두시와는 전혀 다른 형식과 내용으로 개척하여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유하고도 독창적인 화두선시조를 선보인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으로는 선적오도의 개오선시조(開悟禪時調)와 격외도리의 격외선시조(格外禪時調)와 함께 독자 경지의 심우선시조가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독자경지의 심우선시조(尋牛禪時調)’는 정말 특기할 만하다. 심우도(尋牛圖)는 대승불교의 진리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후세의 많은 구도자들에게 좋은 시적 소재가 되어왔으며, 새로운 「심우도」가 계속 쓰여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조오현의 「무산심우도(霧山尋牛圖)」는 성속이 하나가 되고 시와 선이 하나가 되는 지점까지 나아간다. 이로 인해 오현의 「심우도」가 경허나 만해와 다른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한다. 곽암사원의 ‘심우도’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무산(霧山)만의 심우선시조(尋牛禪時調)다. 조오현은 「무산심우도」를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심오한 시적 성취를 이룬다.

조오현 선시조의 특징 중 다른 하나는 ‘청정감성의 서정선시조(抒情禪時調)’다. 조오현의 서정선시조는 주체의 정서 표출을 목적으로 하며, 주로 그의 초기 작품들이 이에 해당된다. ‘나’를 노래하는 이런 서정선시조는 시적 화자가 한 사람이며, 언어가 가지런하다.

종교적 차원의 목적을 떠나 서정시조 자체로 존재하면서도 선적 함축성을 내포하여 자연스럽게 선이 표출된다. 이런 서정선시조는 청정감성으로 드러나는 시적 세계의 형상에 분열이 없다. 그의 서정선시조는 함축적인 문장과 시적인 리듬으로 충만하여 문학적 서정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언어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묘오한 표현들이 우리의 정서를 건드려 감동 속으로 몰아넣는다.

조오현이 도달한 시적 경지 중의 하나는 「산창을 열면」이다. 이 「산창을 열면」에는 조오현 선시조가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특징적인 것이 담겨있다. 불교 수행의 궁극적인 목표는 해탈과 열반, 즉 깨침에 있다.

마음의 창이기도 한 산창을 열고 바라보는 일체의 모든 존재들, 즉 새들과 풀벌레, 푸나무들, 산들, 짐승들이 깨달은 조오현의 눈에는 평등하게 보인다. 분별사량이 끊어진 그 평등한 자리가 깨달음의 세계이다. 하나로 어우러지고 하나로 어우러진 불이의 세계이다.

몸을 다 드러내고 나타내 다 보이는 환하게 열린 평등한 세계, 그 깨침의 세계에서 저마다 머금은 빛인 본래면목을 서로 비춰주는 ‘하나’인 세계를 조오현은 선시조 「산창을 열면」을 통해 그림처럼 펼쳐 보이고 있다.

조오현의 선시조에는 평등과 평화의 세계가 깃들어 있다. 모든 속박을 벗어난 대자유인의 모습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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