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떼방북’ 정주영과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아시아엔=이상기 발행인] 팔순 노인이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가던 장면이 있다. 꼭 20년 전 1998년 6월16일 아침의 일이다.

김준태 시인은 ‘정주영 할아버지’ 제목을 붙여 이렇게 읊었다.

“우리 나이로 여든세살이랬지”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이/ 흰구름 두둥실 머리에 이고

배꼽 내민 소년처럼 하냥 웃으며/?500마리 한우 암놈 수놈 소떼 이끌고

판문점 넘어가는 모습을/?MBC TV가 생중계할 때

나는 화장실에 앉아 똥을 누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내 평생 처음으로 화장실 변기통에 앉은 채로 울었다

그랬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은 소 500마리 끌고 북한방문을 방문한 것이다. 1992년 대통령선거에 나와 실패한 그가 5년반 만에 소떼를 몰고 고향이 있는 이북땅으로 넘어간 것이다.

당시 ‘소떼방북’은 냉전해체로 상징되는 ‘20세기의 마지막 전위예술’이란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오월 광주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김준태가 한국 자본주의의 정점에 서있는 정주영 ‘왕회장’을 칭송한 것을 두고 누가 탓하고 욕할 수 있을까?

“임자 해봤어?”란 입에 달고 다녔다는 정주영 회장이 아니었더라도 가능했을까? 정 회장과 소떼는 2년 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분단 후 첫 남북정상회담의 싹을 틔웠다. 그리고 7년 뒤 노무현-김정일 회담과 2018년 문재인 대통령-김정은 위원장의의 4·27, 5·26 남북정상회담으로 결실을 맺는다.

정주영 회장이 생존해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

“임자 해보니 못할 거 없지?” 그게 아닐까.

정주영 회장의 소떼방북은 나에게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떠올려준다.

단풍?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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