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여성노동②] 릴리아나 앙굴로, 스스로 ‘네그로’라 부르며 흑인차별 폭로

[아시아엔=알래산드라 보나노미 기자] 4월 15일 압구정동 코리아나미술관(관장 유상옥·유승희)에서 시작한 ‘히든 워커스’는 이번 주말(16일) 막을 내린다. 여성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통해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조명하고 있는 이 전시회를 <아시아엔> 독자들께 강추한다. 이제 닷새밖에 안남았으니 서두르셔야겠다. 전편에 이어 작가들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편집자>

임윤경 작 “너에게 보내는 편지”

◇ 임윤경

임윤경은 ‘너에게 보내는 편지’(2012-14)를 통해 ‘육아’를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노동시장에 진출한 여성들을 대신하여 아이를 돌봐주는 ‘아이돌보미’는 작가가 미국 유학시절 택한 파트타임 직업이었다. 본인을 비롯하여 다양한 국적의 돌보미들이 본인을 기억하지 못하는 0-3세의 아이들에게 영상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제작됐다.

작가는 여느 서비스 노동보다 강도 높게 작용하는 감정노동과 아이들을 대할 때 들어가는 고민과 노력을 돌보미들의 언어를 통해 매우 섬세하게 그려낸다. ‘지속되는 시간’(2014)은 하루의 다양한 시간대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서비스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을 릴레이 형식으로 제시한다.

임윤경은 퍼포먼스, 영상, 설치, 사운드, 텍스트 등을 통해서 참여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과 UCLA 미술대학원을 수학했고, 뉴욕 휘트니 미술관 독립연구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릴리아나 앙굴로 작 “유토픽 네그로”

◇ 릴리아나 앙굴로

콜롬비아에서 1974년 출생한 그녀의 ‘유토픽 네그로’(2001)는 작가의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과장하여 분장함으로써 백인 가정을 돌보았던 흑인의 뼈아픈 과거사를 들춘다. 흑인 비하의 의미가 강한 ‘네그로’를 제목으로 사용해 관객의 불편함을 극대화하는 한편, 몸을 벽지와 같은 패턴의 의상으로 가려 얼굴만 떠있는 투명인간처럼 보이게 했다.

그녀는 여성의 노동은 젠더의 구조뿐 아니라 인종의 권력구조에 의해서도 조작되고 숨겨졌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앙굴로는 인종적, 계급적, 유럽중심적, 식민주의적 질서에 도전하고, 민족성·성정체성·계급 등에서 나타나는 차별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드러내기 위해 흑인 커뮤니티와 협업한다. 흑인 신체를 매개로 보편화된 위계질서를 깨뜨리는 한편 거대 敍事를 통해 전달되는 권력구조를 비판한다.

그녀는 사진, 퍼포먼스, 설치,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하며, “‘작가’는 공공을 위한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브라질과 콜롬비아 등 중남미 지역을 중심으로 전시 외에 컨퍼런스, 워크숍, 기획 등에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마야 자크 작 “마더 이코노미”

◇ 마야 자크

이스라엘 출신(1976생)의 마야 자크의 ‘마더 이코노미’(2007)는 유대인으로서의 본인의 정체성을 작업으로 연결한다. 흔히 떠올리는 주부의 모습을 비껴가는 깡마른 여인이 집안 곳곳을 배회하며 이유를 알 수 없는 기록작업을 진행한다. 유대인 전통음식인 쿠겔(Kugel)을 만들어 식탁에 올리는데 집 안에는 가족 없이 여인뿐이다.

‘마더 이코노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집안에서 애쓴 유대인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혼란기를 견뎌낸 여성들의 숨은 노력을 조명한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야 자크는 혼란스러운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인간이 질서와 형식을 도입하는 과정에 관심을 갖는다. 또한 역사와 기억의 관계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기억의 과학’(science of memory)을 만들어 기억·기록·재구성의 대안을 제시한다. 벨기에, 이탈리아, 미국, 이스라엘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현재 텔아비브대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혜정&임숙현 작 “감정의 시대-서비스 노동의 관계미학”

◇ 조혜정 & 김숙현

이들의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미학’은 다양한 직종의 서비스 노동자들의 인터뷰가 각 직업에 해당하는 의상을 입은 무용수의 퍼포먼스 영상을 통해 선보인다. 늘 친절하고 순종적이어야 하며 눈치 빠르게 일해야 하는 서비스업계 종사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감정을 힘든 동작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조혜정과 김숙현은 16mm 퍼포먼스 필름 ‘Hold Me’(2013)를 시작으로 ‘Portrait’(2014),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미학’(2014), ‘리듬생산’(2015), ‘스크린+액션!’(2016)을 공동으로 제작하였다. 조혜정은 2000년부터 꾸준히 여성, 정치, 문화에 관한 비판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영상작업을 해오고 있다. 2017년 개인전 ‘밀실과 장치’는 故 박정희 대통령에게 성적으로 유린당했던 여배우 故 김삼화의 유령적 육체를 소환하는 영상 퍼포먼스 전시로 관심을 끌었다.

철학·사회학을 전공한 김숙현은 유연한 형식의 실험영화를 꾸준히 제작해오고 있다. ‘너는 어디에도 없을 거야’(2016)를 통해서 영상을 댄스 및 퍼포먼스와 결합해 선보였다.

◇ 김정은

김정은(48)은 뉴욕에서 활동하던 시절 손톱관리사 즉, ‘네일레이디’로 일했던 경험을 작업으로 끌어온다. 작가는 고객 대 서비스 제공자라는 수직관계 속에서 드러낼 수 없었던 단골들에 대한 판단과 감정을 글로 담담히 적어 내려간다. 네일케어 서비스업은 주로 여성이 맡고 있다. 가부장제 질서 안에서 여성성과 결부된 순종·꾸밈·도움 등의 이미지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정은 작가는 뉴욕 네일숍에서 만났던 단골 손님과 유사한 손을 찾기 위해 관람객에게 손톱 관리와 마사지 서비스를 제공했다. 작가가 찾는 손의 느낌과 비슷한 경우에는 컬러도 발라주고, 손 촬영도 했다. 진정한 프로답다.

김정은은 사회제도 안에서 마주치게 되는 여러 가지 불합리한 관계에 반응하는 작업들을 진행해 오고 있다. 이번에 소개된 ‘네일레이디’에서는 네일 살롱의 직원이라는 이유로 제한받았던 표현의 권리를 회복하는 시도를 감행한다. 작가는 2013년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으며, 서울과학기술대 조형예술학과에서 학사 학위 취득 후 뉴욕시립대 리만컬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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