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에 기억해야 할 것들···가칠봉·18연대·상록수부대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휴전회담이 막바지에 달했을 때 동부전선의 고지전투가 혈전이었다. 이 승전이 없었다면 설악산은 우리 땅이 아니다. 설악산이 없는, 내린천이 없는 강원도가 하늘이 내린 고장이 될 것인가?

38선은 정확히 설악산의 최남단 가칠봉을 지나간다. 이 지역에 2사단 17연대가 주둔한다. 17연대는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부대다. 육군에서는 17연대가 유일하게 참전했다. 이밖에도 연대 단위로 전승의 공이 뛰어난 부대는 영천전투로 유명한 18연대가 있는데 영천 전투 때는 8사단 소속이었지만 그 후 3사단으로 소속이 변경되었는데 현지에서는 ‘일팔연대’로 불린다.

동부전선의 요충 인제를 확보한 결정적 전투는 1951년 5월, 9사단 30연대에 의한 매봉·한석산 전투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하고 원통하고 서러워라”는 말은 장병이 올라가는 족족 전사한 격전지 인제군 원통면 서화리(麟蹄郡 元通面 瑞和里)에서 유래한 것이다. 러일전쟁 당시 여순 203고지 전투를 연상하면 된다. 장병의 피로 얻어진 이 땅이 없이는 우리 산천의 경관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서울에서 속초에 이르는 구간은 대부분 이 지역을 지나게 된다. 주변 경관에 탄성을 올리는 학생들에게 “이 경관이 없었더라면 우리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라는 질문 하나로 족하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문을 연 전쟁기념관은 삼국시대부터 6·25전쟁에 이르는 기간을 포괄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유엔 참전국과 중국, 북한에서도 6·25전쟁에 대해 나름의 기념관을 건설하고 있지만, 우리 전쟁기념관은 세계적이다. 멀리서 바라보고, 밖에서 들어본 한국전쟁에 대해서가 아니라 우리 땅에서 우리 기억이 가장 많은 6·25전쟁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6·25전쟁의 원인, 경과, 결과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대한민국 역사는 온전할 수 없다. 대한민국역사기념관이 ‘4·3이 우리 역사’라는 기획전시를 하고 있다. 해방 후 건국과정에서 남로당 폭동을 제압하는 가운데 안타까운 일들이 있었던 것은 두고두고 기억해야 한다. 앞으로 남북이 통일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에 특히 그러하다.

4월 학생혁명의 성공은 송요찬 계엄사령관의 절제 있는 계엄군 운용이 결정적이었다. 1980년 광주에서 군의 행보는 비극적이다. 그러나 6·29 이후 군은 정치에서 멀어지고 본연의 임무와 국력에 맞는 세계평화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 걸프전 이후 이라크 평화재건 작전에 참가한 자이툰 부대의 성공과 활약은 오래 기억되어야 한다. 동티모르에서의 상록수부대의 활약도 널리 기억되어야 한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와 호주가 서로 겨냥하는 단도로 보는 지정학적 의의를 가진 외에, 가진 것은 별로 없는 나라다. 동티모르에서 나오는 백단목이 유럽에서 고급가구를 만드는 데 쓰인다. 서구 식민제국의 첨병 포르투갈이 이를 노리고 들어왔다. 구스마오를 비롯한 일련의 지도자들이 독립운동을 이끌었으며 1999년 한국군 상록수 부대가 국가 건설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군의 지원과 봉사는 깊은 인상을 주었다. 마음을 사는 지원과 봉사는 현지인의 깊은 마음을 울리게 마련이다. 곳곳에서 트러블을 일으키고 있는 중국이 우리에게 배워야 할 것이 이점이다.

한 치의 땅도 피와 땀으로 지켜지지 않은 땅은 없다. 대한민국역사기념관은 이를 기념하고 선양하는데 모든 정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내일은 6월 6일, 현충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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