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범죄칼럼] 미국 최초 총기감정사는 사기꾼

[아시아엔=김중겸 전 경찰청 수사국장, 인터폴 전 부총재] 사격에서 접사(接射)는 총과 총 맞은 사람과의 거리가 0.5cm 이하이다. 근사(近射)는 0.5~30cm의 거리다. 이 둘을 합쳐 지근거리 발사라 한다.

탄환구멍에 흔적 다섯이 생긴다. 첫째 좌쇄륜(挫碎輪)은 탄환이 들어갈 때 피부를 돌파한 사입구(射入口, 구멍) 크기는 피부의 탄력성으로 인하여 탄환보다 조금 작아진다. 관통하면 아예 메워진다.

둘째 좌멸륜(挫滅輪)은 좌쇄륜을 둘러 싼 부분으로 탄환에는 발사 때 열과 불꽃에 의해 생긴다. 연소한 화약의 검댕이 묻는다. 피부를 변색시키며 크기는 탄환 크기와 대략 일치한다.

셋째 소훈(燒暈)이 있다. 이는 좌멸륜 바깥 주위에 난 고리로 폭은 2~3mm. 화상으로 손상된 피부다. 머리카락이 타기도 한다. 주의해서 관찰해야 놓치지 않는다.

넷째 분립흔(粉粒痕)은 소훈의 바깥에 생긴 화약가루로 미처 연소하지 못한 화약가루를 말한다. 문신과 같아서 씻어도, 문질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초연(硝煙)은 화약의 연기로, 맨 바깥에 생기는 자국으로 피부에 화약연기가 묻는다.

먼 데서 쏘는 원사(遠射)는 총과 총 맞은 사람과의 거리가 30cm 이상 떨어진 경우다. 이때 피부에 화약륜(火藥輪)이 생긴다. 가스 구름으로 운반된 미립자가 문신과 같은 흔적을 만든다.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으면 미립자는 공기 중에 퍼지며 사출구에 좌쇄륜은 생긴다. 좌멸륜이나 분립흔은 없다.

탄환이 나온 사출구

피부에는 탄력성이 있다. 총알구멍의 형태를 변형시킨다. 구경 추정은 대개 불가능하다.

사출구 구멍크기는 사입구 구멍보다 크다. 때문에 들어오고 나간 곳은 쉽게 알게 된다. 사출구 근처 뼈는 탄환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종종 균열골절(龜裂骨折)로 뼈가 갈라진다.

좌쇄륜의 구멍크기는 탄환크기에 따라 다르다. 탄환속도도 영향을 미친다. 초속 200~300m 정도가 보통이다. 빠를수록 파괴력 크다.

맞는 부위에 따라

배와 같은 부드러운 조직 이외에 뼈 있는 부분에 총을 갖다 대고 쏘면 상처가 별 모양으로 난다. 둥근 상처 입구 주위로 방사선으로 찢긴 선이 생긴다. 폭력단이 뒷머리에 대고 발사하는 처형의 전형이다.

뇌, 간, 콩팥 등은 대부분 물로 되어 있다. 탄환이 날라 와 닿으면 내부압력이 급상승해 파열한다.

특히 뇌의 경우 탄환이 두개골을 파괴하며 뇌에 들어가면 뇌척수액(腦脊髓液)에 압력이 가해지며 대뇌와 두개골이 날라간다.

두개골에 탄환이 부딪친 순간의 충격은 맞은 부분만 상처 입는 몽둥이 같은 흉기와는 전혀 다르다. 다른 부분도 엄청난 압력을 받는다. 조직적 파괴가 일어난다.

1897년 인도 캘커타의 영국 포병공장에서 만든 dumdums(담담탄)는 인체에 맞는 순간 조각으로 나뉘어 파고든다. 자연 손상범위가 넓다.

총에 개성 있다

탄환이 발사되면, 접촉하거나 마찰하게 된다. 흔적을 만든다. 현장에서 탄환과 탄피 모아 분석하면 몇 명의 범인이 총을 쐈는가도 나온다.

발사된 탄환으로 권총의 구경이 확인된다. 선조(旋條)의 수와 깊이와 폭으로 탄환의 선회방향을 알게 된다. 탄약을 회전시키는 선조의 기울기를 측정하면 탄환 한번 회전에 필요한 길이가 나온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 어떤 특성을 지녔으며 어느 모델의 총인지 판명된다. 이렇게 발전된 탄도학을 오늘날 과학수사관들이 이용한다. 엉뚱한 사기꾼의 허황된 주장과 진실한 연구가의 노력이 있었다.

미국 최초 총기감정사는 사기꾼

1915년. 농장 노동자가 농장주 사살한 사건을 다루는 법정. 가짜 학위로 의사행세를 한 자칭 a ballistics expert(탄도학 전문가)인 Dr. Albert Hamilton이 증언에 나섰다.

그는 범행에 사용된 총알과 피고인의 권총총알 두 개를 높이 들고 같다고 주장했다. 배심원들은 잘 모르고, 골치 아프니까 전문가라는 말 듣고 유죄평결,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수는 줄곧 무죄를 주장했다. 1916년 재수사. 그의 권총에 윤활유가 잔뜩 묻어 있었다. 오래 동안 사용치 않아 골동품 같았다. 보통 사람의 눈에도 살인무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절차를 거치며 무죄석방은 1918년에서야 이뤄졌다.

해밀턴은 1923년 Sacco and Vanzetti 재판 때도 개입해 속임수 쓰려다가 들통 났다.

웨이트와 고다드

Charles E. Waite는 해밀턴 밑에서 배웠다. 이후 독립하여 미국의 총기 1500정을 수집해 도면을 뜨고 사양을 정리했다. 1922년. New York’s Bureau of Forensic Ballistics(뉴욕 탄도학 연구소)를 설립했다.

Calvin Goddard는 웨이트와 함께 일한 연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History of Firearms Identification(총기감식역사)를 1932년 출간했다.

미국의 총기감정관은 연봉 5만2055~7만7029달러. 자격은 과학수사학, 법과학, 화학, 생물학 중에서 학사학위 소지자 이상이어야 했다.

도구흔(道具痕, tool-marks)은 범행에 사용한 도구가 가구와 같은 딱딱한 물체의 표면에 남긴 흔적을 감식하는 것으로 총기감정관의 직무다.

석고, 고무, 실리콘으로 형을 뜬다. 스쳐서 벗겨진 찰과흔(擦過痕)과 타격한 자국이 있는 타각흔(打刻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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