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LG 구본무 회장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베풀며 살아라.” 어머니의 뜻을 평생 지킨 화담(和談) 구본무(具本茂) LG그룹 회장이 5월 20일 7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우리나라 재계를 대표하는 그는 지난 1년간 뇌종양(腦腫瘍, brain tumor)으로 투병하면서도 연명(延命)치료는 하지 않겠다고 한 자신의 뜻에 따라 평화롭게 영면했다고 한다.

장례도 22일 화장을 한 후 경기도 곤지암의 ‘화담숲’ 인근 소나무 아래에 수목장으로 엄수됐다. 마지막 가는 길도 소탈했다. 신문에 게재된 부고도 일반 기업체 부고와 달리 LG그룹 명의가 아닌 유가족 일동 명의로 되어 있다.

구본무 회장의 부친인 구자경 명예회장은 LG창업주 구인회(具仁會, 1907-1969)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나 2대 회장이 되어 LG의 전신인 금성전자와 럭키화학을 국내굴지의 기업으로 키웠다. 70세가 되던 1995년 LG그룹을 큰아들(구본무)에게 물려주고 퇴임한 뒤 회사 경영에 일절 간여하지 않고 천안 농장에서 생활하였다.

2008년 아내를 먼저 보냈고, 이후 큰 아들도 자신보다 먼저 보낸 아픔을 겪었다. 노환으로 아들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구본무 회장은 지도층의 사회적 책임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몸소 실천한 대기업 오너다. 그는 “자기를 속이는 사람은 더 이상 속일 데가 없다”면서 정직을 강조했으며, “신용을 쌓는 데는 평생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라는 말을 자주했다. “편법과 불법을 해야 1등을 할 수 있다면 차라리 1등을 안 하겠다”는 것이 고인의 지론이다.

고인은 공식 행사든 사적 약속이든 항상 20분 정도 먼저 도착하여 상대방을 기다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탈한 성격과 온화한 인품으로 직원들의 귀감이 됐다. 저녁 자리가 늦어지면 운전기사를 먼저 보내고, 택시로 귀가하기도 했다. 직급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존댓말로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었고, 경조사에는 수행비서 없이 홀로 행사에 참석하는 등 훈훈한 일화가 많다.

고인은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힘쓴 의인(義人)에게 기업이 보답한다”는 철학으로 ‘LG의인상(義人賞)’을 제정하여 △화재현장에서 생명을 구하려다 숨진 소방관 △남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진 경찰관 △약자를 지켜낸 시민 등이 이 상을 받았다. 고인의 아름다운 행적이 SNS를 통해 널리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애도하였다.

구 회장은 조류와 숲, 자연환경에 애정이 깊었으며, 특히 ‘새 박사’란 별칭이 붙을 정도로 조류에 조예가 깊어 조류도감인 <한국의 새>를 펴냈다. 구본무 회장은 아호(雅號)인 화담(和談,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다)을 따서 경기도 곤지암에 생태수목원인 화담숲을 조성했다. 1997년 자연 환경과 생태계 보존을 위한 공익재단인 LG상록재단을 설립했다.

구본무 회장은 집무실을 벗어나 경영을 구상하고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가장 즐겨찾던 곳이 ‘화담숲’이다. 구 회장은 지난해 뇌수술을 받은 뒤 요양을 위해 이곳을 자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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