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의 범죄사회학] 성공한 간첩은 이름이 없다

정보는 늘 빼낸다

[아시아엔=김중겸 전 경찰청 수사국장] 소련이 러시아가 되고 소련 위성국이 나토에 가입했다. 중국이 자본주의시장에 뛰어든 지 오래다. 그런데 스파이라니 무슨 소리냐고 한다.

첩보전이 소멸된 걸로 착각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말 함부로 한다. 자랑스럽게 늘어놓는다. 수집해서 정리하면 비밀 수두룩하다. 첩보시장에 내다 팔면 돈벌이 된다.

메드베데프가 데려간 러시아 간첩 10명이. 워싱턴 정계와 월스트리트 등 미 상류사회에 침투했다. 러시아에 불리한 미국 국내외 정책 빼냈다.

스파이 인재는 교환한다

성공한 간첩은 이름이 없다. 본국에서 은둔생활 한다. 노출시키지 않는다. 연금 받고 잘 산다. 실패한 간첩은 체포돼 재판받는다.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다. 실패자 중에서도 살려야 할 사람 있다. 공을 세운 첩자다.

사형당하거나 교도소에서 썩게 놔두지 않는다. 전쟁 때 포로교환 하듯 기회 봐서 협상한다. 스파이를 교환하자고 제안한다.

스파이활동 평균수명은 10년. 대부분 이 기간 전후로 잡힌다. 만약 구해주지 않는다면 누가 목숨 바쳐 일하겠는가. 가족은 뭘 먹고 사는가. 스파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스파이 확보를 위해서도 스파이 교환이 필요하다. 법적으로는 국외추방이다. 통치자의 결단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냉전시대 스파이 교환은 그리니케 다리(Glienicke Bridge)에서 이루어졌다.

구 서베를린과 구 동독의 포츠담을 연결했다. 스파이들의 다리라 불렸다. 1962년 2월 10일 미국 CIA 소속 스파이 비행기 U-2기 조종사 프란시스 게리 파워즈와 소련 KGB 요원 루돌프 아벨 대령은 이 다리 한 가운데서 교환됐다.

아벨은 9년간 미국에서 활동하다 잡혔다. 간첩수명이 10년 정도라는 가설 역시 입증했다. 1957년 체포돼 간첩죄로 30년 형을 받았다.

파워즈는 1960년 5월 1일 소련 상공에서 격추됐다. 추락하자마자 체포돼 간첩죄로 10년 형.

1대1 교환이었다. U-2기 격추로 미소정상회담이 취소되는 등 어수선한 환경에서 성사됐다.

스파이 비행기 이륙

1960년 5월 1일 파키스탄 파샤와르 비행장. 미군이 빌려 쓰는 비행장이다. 히말라야산맥에 막 해 올라오려 할 때였다.

파워즈가 모는 U-2기 이륙 후 소련상공 진입 30분 후 사라졌다. 이날은 메이데이 기념일로 소련 최대 경축일의 하나다. 새벽 서기장 흐루쇼프 침대 머리맡 전화기 울렸다.

국방장관은 “아메리카 스파이 비행기가 아프가니스탄 쪽에서 또 들어 왔습니다”라고 했다.

흐루쇼프는 수치스럽다며 무슨 수단 써서라도 격추하라고 했다.

그 시각, 미 국가보안국(NSA, National Security Agency)의 터키 청음초소(聽音哨所, listening post)는 소련의 MiG기 출격과 지대공미사일 발사음을 도청했다. U-2기는 침묵, 무선통신 교신이 되지 않았다. 본국 관계기관에 즉보했다.

비상 걸렸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앞에서 담배 파이프 손에 쥔 채 망연자실한 알렌 덜레스 중앙정보부장이 입을 열었다. “격추 당할 리 없습니다.” 반복해 말했다.

그는 거듭 말했다. “격추되더라도 조종사와 기체가 산산조각 납니다. 소련의 간첩증거 확보는 절대 불가능입니다.”

아이젠하워가 받아쳤다. “그거야, 조종사가 독약 먹고 비행기 폭파해야 가능한 거 아니요?” 덜레스는 조종사가 지침대로 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할 말을 잃었다.

이럴 때 사용할 거짓말 standard cover story가 있다. 언론용이다. 준비되어 있었다. 항공우주국(NASA)가 제 몫을 하러 전면에 나섰다. 기자 브리핑을 통해 “기상연구용 비행기가 실종됐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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