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의 슬프디 슬픈 유래를 아시나요?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할미꽃의 전설이 오늘 따라 가슴을 후벼 판다. 엊그제 어느 못난 아들이 새로 사다 준 침대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아버지와 누이를 아령으로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자식이란 무엇이고 부모는 무엇인가? 할미꽃의 슬픈 전설을 알아보자.

어느 마을에 딸 셋을 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혼자서 딸들을 길렀다. 어머니는 아버지 없이 자라는 딸들이 가엾기만 했다. 그래서 아버지 몫까지 정성을 다해 딸들을 보살피며 고이고이 길렀다.

어느덧 딸들이 모두 시집갈 나이가 되었다. ‘벌써 우리 애들이 이렇게 컸구나!’ 어머니는 다 자란 딸들이 자랑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서운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모두 시집을 가버리면 어머니는 혼자 남을 테니까.

그래도 어머니는 서운한 마음을 누르고 딸들을 혼인시켰다. 딸들을 한명씩 시집보낼 때마다 땅을 팔고 소도 팔았다. 그렇게 시집을 보내자 어머니에게는 허름한 오두막 한 채만 남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딸들 걱정만 했다. 딸들이 잘 살 수 있도록 기원하며 지냈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다. 어머니의 머리는 서리가 내린 것처럼 하얗게 세었다. 이빨도 다 빠져 버렸다. 어머니는 너무나 늙어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끼니도 해먹기가 힘들었다. 어머니는 너무나 서글펐다. 곁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절로 나왔다.

외롭게 지내던 어느 날 어머니는 문득 오래 전에 시집간 큰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우리 큰애는 날 반갑게 맞을 거야’ 어머니는 큰딸의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 웬일이세요?” 큰딸은 어머니를 반갑게 맞았다.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를 위해 닭도 잡아 상을 잘 차렸다. ‘역시 내 딸이야! 왜 진작 딸과 함께 살 생각을 못했을까?’ 어머니는 큰딸 집에서 마음 편히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상을 차려온 큰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언제까지 계실 생각이세요?” 숟가락을 들던 어머니는 어리둥절해서 큰딸을 쳐다보았다. “그만 집으로 돌아가셔야 하지 않아요?” 어머니는 말없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이제는 내가 귀찮아진 게로구나’ 어머니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밥도 짓지 못할 만큼 늙은 몸으로 어떻게 혼자 살아갈 수 있겠는가? 어머니는 궁리 끝에 둘째 딸에게 가기로 마음먹었다. “둘째야, 둘째야!” “아니 어머니 웬일이세요?” 둘째도 어머니를 반갑게 맞았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날수록 둘째의 태도는 처음과 달라졌다. “어머니 왜 이렇게 밥을 흘리세요? 가만히 앉아 있지만 말고 마당이라도 좀 쓸어요.” 둘째는 이렇게 어머니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인데도 어머니 방에 불도 제대로 지피지 않았다. 어머니는 모두 잠든 밤에 소리 죽여 울었다.

금방이라도 눈보라가 몰아칠 것 같은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아이들 키우는 것도 힘든데 어떻게 어머니 시중까지 들어요? 제 생각도 해주셔야지요.” 둘째는 이렇게 말하며 어머니를 쫓아냈다.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지팡이를 짚은 손은 벌써 꽁꽁 얼어붙었다. 어머니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아! 이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어머니의 머릿속에 셋째가 떠올랐다. 하지만 어머니는 선뜻 셋째의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셋째도 제 언니들처럼 자기를 돌보려고 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냐, 셋째는 날 구박하지 않을지 몰라’ 이렇게 생각한 어머니는 셋째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셋째 집으로 가려면 높은 고개를 넘어야만 했다. 어머니는 힘겹게 고개를 오르기 시작했다. 고개를 넘던 어머니는 그만 쌓인 눈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어머니는 일어나려고 애를 썼지만 도무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 이 고개만 넘으면 되는데….’ 어머니는 몸을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다했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몸이 이미 추위에 꽁꽁 얼어붙었다. 어머니의 몸 위로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니의 몸은 차디차게 식어 갔고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어머니, 어머니!” 그때 어디선가 어머니를 부르는 셋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셋째는 어머니가 언니들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를 찾아 나선 것이었다. 셋째는 언니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동안 늙은 어머니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자신이 밉기도 했다. 셋째는 눈보라를 헤치며 고개를 올라왔다. 누군가 쓰러져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셋째는 마음을 졸이며 그 쪽으로 뛰어갔다. 그것은 눈이 소복이 쌓인 어머니의 시신이었다.

셋째는 어머니를 부여안고 울부짖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어떻게 키웠는지 알기에 셋째의 울음소리는 눈보라 사이로 슬피 퍼져나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어느 날 셋째는 어머니 무덤을 찾았다. 무덤엔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런데 무덤 앞에 처음 보는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꽃은 길고 하얀 꽃술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꼭 어머니의 새하얀 머리카락 같구나!’ 그 뒤부터 이 꽃을 ‘할미꽃’이라 불렀다.

할미꽃은 산과 들판의 양지쪽에서 자란다. 가장 한국적인 꽃으로 하얀 머리의 어르신이라는 뜻의 백두옹(白頭翁)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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