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 날 110주년’ 종교적 신념 지켜나가는 여승들 이야기

1908년 이래로 인류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기리고 있습니다. 이날은 전세계 여성들이 지구적인 축제를 여는 날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여성들은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 소리 높이고 있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아시아엔>은 전세계 여승들의 사연을 전합니다. -편집자

[아시아엔=알레산드라 보나노미 기자] 불교는 한국의 주요 종교 중 하나로, 인구의 약 15.5%가 불교 신자다. 불교는 4세기경 중국을 통해 한반도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오늘날 서울을 돌아다니다 보면 밝은 회색 빛 승복이나 수도승 옷을 입은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 중 다수는 여성이다.

불교 초창기, 석가모니는 그의 이모를 비롯한 500명의 여성이 수도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실제로 불교는 남성 성직자와 여성 성직자가 공존하는 종교 중 하나이며, 석가의 가르침에 따라 성차별 또한 없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수세기에 걸쳐 침투한 가부장적인 사회문화는 종교의 성 평등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불교여성연구소의 조은수 소장에 따르면 한국 불교 최초의 여승은 삼국시대 신라의 사씨다. 이후 고려 왕조(918~1392)가 들어서며 불교는 더욱 주요한 역할을 맡았고 승려들도 요직에 앉게 됐지만, 반대로 여승들은 배제됐다.

조선 왕조(1392~1910) 시대에는 억불정책까지 선포되며 불교의 입지는 더욱 나빠졌다. 국가의 이념으로 성리학이 채택되면서 불교는 차별당하기 시작했다. 수도승과 여승들은 수도 한양에서 벗어나 산 속에 절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불교는 승려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한 왕실의 여성들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불교의 여성들은 남존여비에 물든 성리학적인 이념과 왕조의 억불정책에 의해 탄압받았다. 때문에 조선왕조 후기 들어 불교는 무속신앙과 뒤섞여 겨우 명맥을 유지하기도 했다. 그 후 일제가 들어서며 상황은 반전됐다. 불교가 국교였던 일본은 불교 교리를 배우고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것을 허가했다.

아이러니하게 일제 치하 시절 불교의 전반적인 위상은 높아졌다. 한국전쟁 이후 많은 여승들은 대규모 사찰 재건사업에 합류했고, 또 ‘승려가 혼인할 권리’를 주장하기도 했다.

현대 한국의 여승은 자연주의 채식요리로 유명하다. 그 중 백양사 천진암 주지스님 정관은 넷플릭스 ‘셰프의 식탁’에 출연한 유명 셰프다. 그녀는 일부 불교 신자들이 성욕을 불러일으킨다고 여기는 마늘과 양파를 사용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그녀는 ‘건조’ ‘발효’ ‘계절성’에 초점을 맞춘 요리를 선보인다. 그 맛에 흠뻑 빠진 뉴욕타임즈는 “정관은 사찰음식의 화신이다. 그녀의 음식은 한국의 문화를 관통하는 듯하다”라는 극찬을 보냈다.

아시아 국가를 여럿 경험한 여승 마르틴 배철러는 “한국 여승의 사회적 지위는 아시아에서 대만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고 강조했다. 한국 불교는 여승을 존중하는 경향이 있고, 여승들도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몇 세기 전만 하더라도 여승의 처우는 열악했지만 한국 사회에서의 여권 신장, 핵가족의 출현 등이 여승의 지위를 향상시킨 배경으로 꼽힌다. 그러나 한국의 여승은 여전히 남성 승려에 비해 다소의 불평등을 감내하고 있다.

조은수 소장의 논문 ‘Korean Buddhist Nuns and Laywomen: Hidden Histories, Enduring Vitality’에 따르면 한국 여승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여승들은 남성 승려의 절보다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는 곳에서 종교적 신앙을 이어가고 있다.

다른 아시아 국가의 여승들은 이보다 더 열악한 처우 속에 살고 있다. 1928년 태국의 ‘승가최고회의’는 여성의 수계를 금한다고 발표했다. 결국 많은 여성들은 비구니(여승)가 되기 위해 스리랑카로 떠났다. 저명한 비구니 담마난다 스님도 스리랑카로 건너가 뜻을 이룰 수 있었다. 그녀는 2003년 스리랑카에서 수계를 받았지만 그때까지도 보수적인 태국 불교계는 여승을 인정하지 않았다. 여성을 차별하는 태국 사회의 분위기는 2011년 잉락 친나왓이 최초의 여성총리로 뽑힌 이후에도 그다지 변하진 않았다.

불교의 성 평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티벳에서도 제기됐다. 2016년, 세계에서 가장 큰 티베트 불교아카데미인 라렁갈의 여승들은 연구회를 열어 여승의 권리를 주장했고, 관련 서적을 출판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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